매일의 은혜, 매일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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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모델 우리 주님 1. 삶과 기도 기도는 우리 삶 전체는 세상 적으로 살고 하나님 앞에서는 또 기도하는 따로 따로 노는 이원론적인 것이 아니다.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삶속에서 전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순종을 함으로써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다. 롬5:17-18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기도의 모델 우리 주님 시16: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생명의 길을 보여주시는 주님을 찬미합니다. 성령님은 전에 깨닫지 못하는 말씀의 진수를 깨닫게 함으로써 죄악으로 달려가는 우리의 본성을 제지시켜 주십니다. 그 생명의 길에는 충만한 기쁨이 주의 앞에 있으며 주의 오른
기도의 열쇠 -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하나님을 경외 허자 않으면 우리는 어떤 기도 제목도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는 것을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자기 자신을 소개할 때 스스로 자신은 하나님을 경외 하는 자라고 소개 하였습니다. 창42:18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성경에 묘사하는 인물
작년 11 월에 영국에 갔을때 우리의 동역자인 김영웅집사님이 온 가족이 그날 런던 조선족교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때 백경아 선교사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걷는 거리에 집도 있고 신실하신 그 분들이 같이 동역자로 오시도록 우리 같이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기도를 응답하십니다. 아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나 구하는것보다 넘치게 하십니다. 오늘 그 소식
마음에 수납장을 열어라 어제 오래전에 읽은 책이 생각났습니다. 1988 년 대학부를 맡았을 때 읽은 책이니까 22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책은 소책자 인데 오랜 세월이 흘러서 갑자기 그 내용이 더 깊이 떠올랐습니다. 그 책의 제목은 “내 마음의 작은 방”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주님은 한 사람의 영혼 속으로 들어가서 그 영혼과 같이 더불어 먹고 마시며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롬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라는 말씀이 참 기가 막힌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물”은 원하지만 하나님 그분에게는 관심이 없고 마음에 두기를 싫어합니다. 하나
영성 훈련 2 - 기도생활 지난주 토요일에 이어 지난주에는 성경을 어떻게 읽을것인가를 묵상해 보았고 오늘은 우리의 기도생활을 살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주에는 인터넷이 고장이 났지만 오늘은 인터넷이 잘 되었습니다. 인터넷으로 들어오시는 분들은 다음주에 들어오시면 되겠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자 마자 얼마 있지 않으면 한 단어씩 말을 배우고 몇 년있으면
딸에게 가르쳐 주는 기도 허드슨 테일러의 생애를 기록한 그의 아들은 맨 마지막 맺는 글에서 “아버지의 기도하는 모습에서 기도에 관한 어떤 책에서 보다 기도를 배웠다” 이렇게 끝을 맺는 표현이 참으로 감동스러웠던 것을 기억합니다. 자녀에게 가르침이란 눈으로 보는 대로 행동하기에 더 행동이 조심스럽습니다. 딸이 곧 출산을 앞두고 먼저 애기를 출산 한 친구들이
행복동의 이야기들 오늘 새벽 두시 삼십오 분에 웬디의 아들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감사하게도 첫 아기인데 진통을 세 시간 반 정도밖에 하지 않고 순산을 헌것입니다. 산모와 애기도 건강했을 뿐더러 애기가 얼마나 예쁘게 생겼는지 우리 모두를 황홀한 눈으로 보게 하였습니다. 남자 애기는 3.1 kg입니다. 그렇게 예쁜 아기가 한 달도 채 안 되는 시간에 멀리 필
촤고의 기쁨 - 귀한 만남 그저께 밤에 운목사님이 어제 생명의 말씀사 황전무님과 함께 새로 출판할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하여 일산에 오시겠다는 것입니다. 제게 시간과 장소를 묻는데 저 같은 사람을 만나기 위하여 먼 곳에서 오시는 분께 저희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시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새벽에 눈을 뜨면 하루의 스케쥴을 생각하며 과연 저녁 음식을 기도회
수박 겉핧기에서 수박맛으로 지난 주일날 아침 교회 가기 전에 성경을 마저 읽으므로 금년에 삼독을 마쳤고 이제 56 독을 제 생애 마쳤습니다. 이번에 56 독을 마치고 57 독으로 들어가면서 제 눈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여태껏 보지 못하던 저 자신에 대해서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태껏 솔직한 고백이 저 자신이 몰랐던 부분입니다. 그 눈이 뜨이면서부터 예수님
한 영혼으로 가슴 아픈 날 어린 생명이 두 살이면 많은 것을 느끼고도 남았을 그 시간에 길에서 버려졌을 때 그 애기는 얼마나 두려움과 무서움으로 떨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교회 앞에 버려졌고 그것을 마치 영원히 잊지 말것 같이 이름도 길에서 태어났다고 “길태”라는 이름을 왜 붙였을까요? 그 악몽을 잊을 다른 이름을 지었으면 더 좋았을 터인데 말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