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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풍성한 삶은 존재한다.

마마킴||조회 6,921

이 글을 올려 달라는 요청에 의해 올려 놓습니다.

 

더 풍성한 삶은 존재한다.

우리는 회심할 때 성령의 체험이나 구약시대에 가끔 역사하시는 성령의 체험정도에서 우리가 다 받은 것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모두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다음 성경구절을 읽어보면 사마리아에는 많은 표적과 기쁨이 있었던것을 봅니다.

행8: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행8: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행8: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행8: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행8: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이들을 성령충만을 받았을까요? 다음 성경말씀을 잘 살펴 봅니다. 그렇게 왜형적으로 기쁨을 맛보았지만 아직 성령받지를 못해서 제자들이 가서 안수했을때 성령을 받았습니다.

행8: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행8:15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행8: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행8: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바울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행9: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행9: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행9: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행9: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행9: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행9: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행9: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행9: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행9: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위의 성경구절에서 그는 주님을 만났고 이미 회심을 했을까요? 아니면 여전히 살기 등등하여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다니는 사람이었을까요? 이미 주님을 직접 만나고 음성을 들었으니 성령 세례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까요?

성령은 사마이라인들에게도 그랬고 바울에게도 전적으로 항 영혼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그 영혼 속에 거하기 위하여 안수하고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성령의 권능으로 받아야만 하나님의 뜻을 행할수도 있고 세상속으로 나아가서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 줄수 있기에 위로부터 덧입혀져야 했습니다.

행9: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행9: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행9: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이러한 은사에는 그들을 회심으로 인도하고 믿음으로 인도하고 에수님 안에서 기쁨으로 인도했던 성령의 역사와는 아주 다른 그 무언가가 있습니다. 이것은 보다 더 차원 깊은 일이었습니다.

성령은 사람들의 마음을 거룩하게 하며 충만하게 채워주기 위해 그들 곁에 안에 거하시면서 능력을 나누어 주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새로운 경험이 주어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사마이라에 새로 기쁨을 맛본 사람들은 여전히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단지 그들은 잠시 기뻐했지만 연약한 채로 살아 있었을 분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성령의 은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많은 교인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교인들은 사람 속에 선하고 경외 할 만한 많은 것들, 심지어 많은 진지함과 열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연약함, 실수, 그리고 절망으로 인해 방해를 받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는 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부터 오는 능력과 함께 활력을 북돋워 주는 체험을 결코 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영혼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우리에게 맡겨지고 충만하게 되어 졌던 오순절 성령의 은사와 같은것을 받아아만합니다.

주님은 제자훈련의 최고의 목표를 오순절 성령충만에 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반한 제자들을 찾아가서 하시는 부탁이 성령을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요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사도바울도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최고로 필요한 것이 바로 성령을 받는것이라고 했습니다.

엡5: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을 받으라

성령이 믿는 자들을 인도하고 그 삶이 어떠한것인가를 보여주며 그들 속에 있는 많은 부족함을 주님의 능력으로 입혀져야만 합니다. 그 한계를 뛰어 넘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성령의 능력은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묵동워 주고 믿음의 터널을 만들어 줍니다 왜냐하면 이론이 아닌 주님의 임재를 볼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