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부모님은 아무 종교도 믿지 않는 무신론자 가정에서 저는 태어났습니다. 그전에 몽골에 많은 사람들이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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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저희 부모님은 아무 종교도 믿지 않는 무신론자 가정에서 저는 태어났습니다. 그전에 몽골에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들의 다수는 미신에 젖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1990년부터 우리나라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 열린 문으로 여러 외국인 선교사들이 우리나라로 복음을 들고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신앙에 자유가 생겼습니다. 1991년부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지만 그때 저는 복음을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그 당시 우리나라에 불경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여러 선진국에 노동자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신앙의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서 한국에 올 때까지 관심이 없었습니다.저는 한국에 오기 전에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남편은 중국에서 몽골에 잘 팔리는 물건을 사가지고 와서 장사하는 자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남편과 아이들이 2명 있고 작은 아파트지만 저희 집을 소유한 평범한 삶을 살았습니다.그런 우리 가정에 풍파가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7년 전에 여동생이 한국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딸이 한 명 있습니다. 동생 아기가 두 살 때 높은 곳에서 넘어져서 간질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 했는데 의사 선생님들이 몽골에서 치료 받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동생의 하나 밖에 없는 딸이 치료 받을 수 없는 병에 결렸기 때문에 저희 가족들이 모두 마음이 아프고 슬펐습니다. 동생이 남편과 딸을 데리고 한국에 가기로 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치료 받으면 병원비가 비싸기 때문에 경제적인 새로운 문제가 다시 생겼습니다.저는 동생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동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같이 생각 해 보기로 했습니다. 저의 남편과 함께 의논하고 우리가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아서 도와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검사를 해 보니까 그 병이 별로 심각하지 않아서 저희 아파트를 팔지 않아도 됐습니다. 치료 받고 병이 나서서 몽골에 돌아 왔습니다.어느 날 동생 남편이 하는 사업에 돈이 더 필요해서 같이 살자고 했습니다. 사업 이 잘되면 제일 먼저 우리에게 아파트를 사 주겠다고 약속을 해서 아파트를 팔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반대 했지만 저는 동생 남편을 신뢰했으며 그 돈을 갚을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파트를 팔고 같이 살게 됐습니다, 그 후 남편은 노동자로 일본으로 가게 되었습니다.그러나 동생남편이 계획한대로 사업이 잘 되지 않았고 실패했습니다. 다시 아파트를 살 수 없어져서 너무나 속상했습니다. 동생을 도와주려고 아파트를 팔고 돈을 빌려 주었는데 그런 결과가 나올지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계속 함께 살수가 없어서 저도 일본으로 가려고 했지만 비자 받기가 어려워서 갈수가 없었습니다.그래서 2002년 11월 달 한국에 왔습니다. 그 사이에 남편이 삼 개월 먼저 한국에 와 있었습니다. 처음 한국에 올 때 한국말도 모르고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정말 어려운 나날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슬퍼서 울면서 남편을 따라 갈 뿐이었습니다. 2003년 4월 달 아는 사람이 소개 해줘서 식사동에 있는 판지 공장에서 남편과 함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공장 일이 너무 힘들고, 날씨가 더워서 땀을 쏟으면서 일을 했습니다. 겨울에는 공장 안에 보일러를 가동하면서 하는 작업이라 괜찮았지만 한 여름 더운 날씨에 보일러에서 내뿜은 열기는 정말 참기가 힘들었습니다. 하루에 14시간 이상 하는 작업도 몽골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고된 작업이었습니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해 볼 여유조차 없는 그야말로 군대 훈련소 같은 시간들이었습니다.그런 어려운 시간 가운데 내가 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사람인 윤집사님이 찾아 왔습니다. 그때 한국말도 몰랐지만 집사님이 쉬운 말로 하나님, 예수님 이야기 해주셨고 교회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에도 몇 번 우리 공장에 오셨지만 우리는 그렇게 쉽게 교회에 가지 않았습니다.그러자 어느 날 갑자기 아파서 출근을 못 했습니다. 그 날 윤 집사님이 오셔서 저를 데리고 병원에 갔습니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외국인한테 아주 친절 하시고, 병원비를 다 내 주신 것을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그래서 다음주에 교회에 갔지만 그것은 집사님의 도움에 감사의 표시로 갔습니다. 그렇지만 일주일에 하루 밖에 없는 일요일에 교회에 매주 가기는 어려웠습니다. 모처럼 일요일에 집에서 푹 잠자고 싶고 집안일도 있을 뿐더러, 동대문에 가서 집으로 돈도 송금하고, 친구들을 만나서 놀고도 싶어서 교회 갈 생각이 별로 없었습니다.처음 드리는 예배에서 윤집사님의 그 친절 한 모습을 다시 보고 또 교회 모여 있는 성도들의 밝은 모습과 친절함을 보면서 감동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그 종교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고 영어와 한국어 몰라서 목사님이 하신 말씀 들어도 못 알아듣고 그냥 교회에 갈 뿐이었습니다.하나님의 은혜로 윤집사님과 일주에 한번 한 시간 정도 성경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조금씩 믿음이라는 것에 눈이 뜨게 되었고 기도는 어떻게 할 줄 몰라서 주기도문을 많이 읽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저희 믿음이 점점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편과 함께 2004년 4월 11일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2004년 3월 1일 세례를 받기 전에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술과 담배를 딱 끊었습니다. 제가 남편에게 술 마시지 마라 담배 피우지 말라고 말 한 적이 없는데 남편이 스스로 자기가 예수 믿으면 술 담배 안 하는 거라고 하면서 끊었습니다. 나는 너무 놀라고 감동스러워서 그런 큰 은혜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렸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가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4년 8월 달 둘이 열심히 번 돈으로 다시 몽골에 아파트를 살수가 있었습니다. 이런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에 참 감사합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한국에 오기 전에 저는 집이 없어져서 너무 슬프고 고통스러워서 동생과 동생 남편을 용서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동생 남편이 옛날에 살았던 집을 팔지 않았으면 저희들이 한국에 노동자로 올 기회가 생기지 않았을 것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한국에 노동자로 오게 된 저희 가족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축복의 시간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 32절 말씀 같이 동생남편을 용서할 뿐 아니라 오히려 감사할 뿐입니다.(엡4:32) “친절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십시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한 것같이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오늘 이 글을 쓰면서 지나간 시간들을 생각 해 보니까 저희 삶이 정말 많이 변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3년 전에 저도 많은 외국인들이 돈을 벌러 한국에 온 것 같이 한국에 왔습니다. 행복한 삶의 열쇠는 돈이라고 생각해고, 이 세상이 행복을 소유하기 위하여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행복은 언제나 만족할 수가 없는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행복을 소유하기 위해서 분노, 질투, 욕심, 교만 등의 죄악이 저에게 있었습니다. 저는 그 죄를 회개 하였고 대신 의의 열매를 맺으려고 기도 하고 있습니다. 세상 행복 찾으려고 수고했던 저는 이제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통해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 났습니다.하나님 믿기 전에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자신의 생각 되로 해결 하였던 제가 요즈음은 그때마다 기도 하면서 하나님이 방법 되로 하려고 배우고 있습니다.우리 홀리네이션스 선교회는 항상 하나님이 은혜로 가득 찬 곳입니다. 많은 외국인 들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 해 주고, 아픈 사람들을 치료 해 주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외국인을 사랑하기에 그 사랑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주일날에 교회에서 몽골 사람들을 위해 예배 통역을 하면서 너무 기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으면 이런 좋은 일들이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전에 예수님 누구 인지 모르고 이 세상 행복을 찾으려고 가는 저를 이 모든 것을 알게 하시고 인도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저를 전도해주고, 예수를 통해서 성숙한 믿음에 이르기 까지 오래 참아 주시고 기도 해 주신 윤집사님께 너무나 감사합니다.며칠 전에 저의 부모님께서 교회에 가셨다고 했습니다. 저는 부모님에게 예수님을 깊이 알 수 있도록 부모님을 위해서 계속 기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한국에 노동자로 왔고 공장 생활을 하고 있었던 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서울신학대학교 학생이 된 것은 정말 하나님이 놀라운 일입니다. 한번도 외국에서 공부 하려고 꿈도 꾸어 보지 못한 저에게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몽골에 귀국하였다가 다시 학생신분으로 오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그렇지만 이 모든 것을 이루어질수록 기도 해주신 홀리네이션스 선교회의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께 감사드립니다. 서울신학대학원 학생으로 선택하여 하나님의 종으로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전심으로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리고 수많은 몽골에 있는 영혼들을 주 앞에 인도하기를 기도드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