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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평균적인 분들의 보통 삶과는 너무나 다른 의사선생님들이 있다. 혼자서 봉사하는 것이 아니고 부부가 같이 봉사를 한다. 이분들은 내 것을 내 것이라고 하지 않는 주님의 심복들이다.낙도에 의료를 받을 수 없는 곳에 두 분의 의사선생님 부부는 파트너가 되어 같이 움직이신다. 우리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하여 한 달에 두 주일을 함께 봉사를 하신다. 외과 전문의 이영만장로님과 이향숙권사님 부부, 그리고 한승엽치과 선생님과 최경미집사님 부부이시다.이영만장로님은 67 세이시지만 장로님의 성함을 영어로 표기하면 Young Man 이 되어 그야말로 영맨 즉 젊은 청년의 넘치는 기백을 느끼게 된다.이영만 장로님 부부 는 젊은 시절부터 60 세부터는 전적으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하시겠다고 늘 계획하며 지내다가 실천을 하신 것이다. 의료가 필요한 곳을 찾아 가서 장로님께서 진료해 주시면 간호사 출신인 이향숙 권사님은 처방전을 가지고 약을 싸는 작업이 바빠지신다. 약을 모두 자비로 사오시기에 친구 의사선생님들이 그 돈을 어떻게 다 감당하느냐고 질문하셨다고 한다. 돈은 나누기 위해서 버는 것이라는 것이 두 분의 명답이시다. 장로님의 넉넉한 미소와 손길은 외국인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기에 편안한 자세로 자신의 몸을 보인다. 우리는 늘 산소 같은 아름다운 분들과 같이 지내기에 행복의 고백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장로님께서는 전도도 정말 잘 하신다. 우리 부부가 장로님을 따라 우리나라 남단의 끝에 위치하는 백일도에 의료 전도를 갔을 때 섬 전체 주민들에게 진료와 뷔페잔치를 베푸시며 복음을 전하는 장로님의 모습을 보았다. 그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복음을 전하니 의사선생님께서 직접 하시는 그 말씀에 모두 마음 문을 열고 경청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장로님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면 정말 예수 믿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권사님은 주중에는 고아원에 가서 9 년째 봉사를 하고 계시기에 늘 기쁨이 넘치신다. 일주일에 두번은 호돌이, 곰돌이 같은 옷을 입고 유치원에 가서 동화 구연을 해 주신다. 그리고 두 번은 노인 복지관에 가서 반찬 담는 일을 도와 주시고 고아원에서 아이들 밥 먹여 주는 일을 하면서 낙도에 갈 때는 잠시 중단했다가 다시 그 일을 하신다.환한 미소를 지으시는 권사님은 “우울하거나 외로울 틈이 어디 있어요? 그리고 가는 곳마다 나보고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해요.”장로님의 모습을 보시고 같이 출석하는 교회의 치과 선생님도 따라서 주님 원하시는 길을 걸어가신다. 낙도에 며칠 가실 때는 치과 문을 닫고 진료를 가신다고 한다. 최경미 집사님은 옆에서 간호사 역할을 아름답게 한다. 만삭이 되어 해산하기 전주까지 선교회에 오셔서 봉사를 하신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감동을 주었다.최미리 선생님의 치과 봉사도 지속적이고 꾸준히 이어가신다. 거리도 먼 곳에서 몇 년째 봉사를 이어나가신다. 정말 감사할 뿐이다.전정호선생님은 한번도 빠지지 않고 진료를 오신다. 일년에 한번은 모든 외국인들에게 자비로 독감예방약을 사오셔서 공급해 주시기를 몇 년째 하고 계시다. 한 주일은 힐피플 선생님들께서 우리 선교회에 진료를 오신다.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 찬양을 하면서 쓰나미 피해지역이나 제 3 세계가 이분들의 휴가 장소가 된다. 부부가 의사 선생님인 경우에도 동반하지만 의사선생님이 아닌 부부도 같이 가서 다른 일을 돕는다.이분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주로 자신이 방문할 나라와 그곳의 영혼들을 위한 기도제목들이 나열해 있다. 매주 하루는 모여서 중보기도를 한다. 세계 여러 나라에 나가있는 선교사님들과 같이 협력하여 현지인들을 치료해 주며 선교를 돕는 일이 이분들의 본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외국인들은 치질 환자도 참으로 많은 편이다. 야채나 과일을 잘 먹지 않고 주로 양고기 닭고기에 기름을 넣고 만든 음식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여러 명이 치질 수술을 하게 되었다.치질 수술은 보통 다른 곳에서 의료 보험이 없는 경우 150만원 정도가 필요한 수술이다.이현구 선생님은 우리가 치질 환자를 데리고 가는 개인의원이다. 처음 인도사람 수술을 받았을 때 한국인 의료보험 수가로 50 만원 정도를 받았다. 다음에 다른 환자를 데리고 갔을 때 5 만원 밖에 받지 않으시며 전에 너무 많이 받아서 마음이 아프셨단다. 그러기를 여러 번 하였는데 이번에 인도사람 제람이 수술을 받을 때는 한푼도 받지 않으시는 것이다. 참으로 송구하며 감사했다. 퇴원을 하는 제람에게 악수를 권하시며 음식을 조심할 것을 권하시는 선생님을 보며 과연 현대사회에 돈을 먼저 생각하는 다른 분들과 비교되며 정말 의사 선생님 맞어? 라고 반문했다.화정에 연세 가족사랑의원의 권기범선생님도 우리에게 얼마나 소액을 받으시는지…… 하루는 우리가 여쭈어 보았다.“이렇게 받으셔서 병원 유지 되세요?”“밥 먹고 살면 됐지 무엇을 더 바래요?”우리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는 즐거움으로 넘친다. 그분들의 격려가 (사실은 구름때 같은 많은 분들) 로 인하여 이 사역을 계속 쉽게 기쁘게 해 나가고 있다. 권기범 선생님은 같은 동료 선생님들을 모시고 와서 의료 서비스를 한주 담당해 주신다. 뿐만 아니라 여러 병원을(강서송도병원, 호수 비뇨기과, 하나 정형외과, 서울 이비인후과)_ 소개 해주셨는데 그분들 모두 소망구 행복동에 주민들이라 외국인에게 아주 적은 비용만 받으셨다.적십자병원에 계시다가 지금은 시립병원으로 옮기신 김현성 선생님도 힘을 다해 우리 외국인들을 도와 주셨다. 우리가 두 번 병원에 가야 되는 일을 한번 가도 될 수 있게 배려해 주실뿐만 아니라 입원하는 경우에도 선생님의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환자들을 도울 수 있었다.늘 변함없이 소액으로 외국인을 치료해 주는 원부부치과, 샘안양병원, 일산복음병원, 예이비인후과 선생님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전에 말레이시아에서 살 때 서울 신대원 강당에서 금요 철야 때 간증을 한적이 있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귀국을 한 후 다시 같은 장소에서 간증을 하게 되었다. 그때 한 분이 내 이름이 적힌 기도수첩을 주머니에서 꺼내 보여주며 늘 기도 하고 있었다고 말씀해 주셔서 참으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분이 지금도 함께 옆에 계시면서 기쁘게 동역하고 계시는 손광수 집사님이다.손집사님은 선교회에서 얼마나 기쁘게 헌신을 하시는지 늘 든든하다. 25 개국이나 되는 각 나라 깃발을 제작하여 만들어서 주일 예배 시에는 오색찬란한 여러 나라의 국기가 외국인들에게 기쁨을 준다. 늘 기도하면서 변함없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월드컵 경기때는 구하기 힘든 입장권을 구입해서 외국인들과 같이 관람을 하면서 그들과 교제를 나누었다.선교회에서 상품이 필요하면 손집사님은 기도를 하시면서 좋은 물건을 저렴한 값으로 대량 구해 오시곤 한다. 그것도 기쁨으로 달려가신다. 외국인 신학생들이 부천에 있는 서울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실어 나르는 일도 집사님의 몫이다.동시 통역시설도 배워서 다 설치 하셨을 뿐 아니라 매주 예배 전에 준비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 일찍 교회에 오신다. 싱글벙글 하시면서 말이다. 행복동에 있으면 그렇게 모두 싱글벙글 하게 되는가 보다.가장 섬김을 많이 담당하는 윤난호집사님을 처음 만나게 된 동기부터 주님의 중재였다. 가구공장을 하시던 남편이 그 사업을 정리하고 다른 것을 구상해야 할 시기에 그 공장에는 가말이라는 이집트 사람을 한명 고용하고 있었다. 집사님은 그 공장이 그를 고용했고 사업을 그만 두었지만 가말이 다른 곳에 직업을 구하는 동안 한 집에서 그를 살게 해 주었다. 자신의 일도 정신이 없을 시간에 그를 먹여주고 잠자리를 제공하며 그의 편리를 제공하다니. 나는 참으로 감동스러웠다. 가말이 팔이 아프다고 하여 치료를 해 주고 있는 가운데 우리 선교회에서 모든 환자를 치료 해준다는 소식을 듣고 윤집사님이 내게 전화를 하게 되어 우리의 만남이 이루어졌다.가말 때문에 만나게 된 후 선교회에 여러 가지로 일이 많은 것을 본 집사님이 자신이 도와 줄일 이 없느냐고 시작한 동역이 귀한 하나님이 보내신 동역자로 우리 선교회에 버팀 나무 같이 되었다.우리는 참으로 많은 곳을 같이 다녔다. 외국인들이 잡혀가면 화성보호소에 그들의 짐을 챙기고 여권과 비행기 표를 가지고 달려갔다. 수 많은 병원에도 같이 동행했다. 때로는 수원까지도 안양까지도 병원을 병명에 따라 여러 군데 가다 보니 그렇게 여러 곳을 가게 되었다. 승용차로는 많은 인원을 태워 올 수가 없다고 윤 집사님이 일종 면허를 따서 교회 봉고를 운전하고 다니는 모습은 얼마나 씩씩하지 모른다. 그래서 씩씩한 아줌마 라고 하면서 함께 웃었다.쉼터에서 오분 거리에 사시기에 남이 모르는 많은 일들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 밤 12 시에 애기를 출산 시킬 때나 늦은 밤에 환자를 응급실에 데리고 간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더군다나 위급환자가 생겨 밤에 병원에 가서 링거주사를 맡게 되는 경우 그 시간 내내 기다리고 있어야 되는 일도 집사님이 다 담당하셨다. 쉼터에 시장 보는 일뿐 아니라 전도하고 쉼터에서 성경 읽히기 등. 정말 많은 섬김을 하는 집사님이 선교회에 있기에 홀리네이션스 선교회가 아름답게 진행이 되지 않겠는가…이 모든 일을 다 열거 할 수도 없을 정도이지만 집사님이 이러한 섬김을 기쁨으로 감당하고 있으니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