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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슈랜드라간증-서북교회에서나는 이렇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자는 누구든지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복음 8:12)저는 네팔에 있는 크샤트리아라고 하는 무사계급 가문에서 태여난 슈랜드라카키입니다. 크샤트리아는 힌두교에서 가장 높은 카스트 계급중의 하나로서 저의 아버지는 네팔 왕실 군대에 근무하였고 엄격히 힌두교 의식을 따랐으며 저도 그 영향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의식에 흥미가 없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저희집은 경제적으로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많은 우상신을 의지하였지만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그후 저는 대학에 진학하였고 대학시절 내내 경제적으로 어렵게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같은 방 친구의 책상앞에 붙여져 있는 잡지한면을 보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대충 훑어 보았어요. 그런데 거기에 간증문 한편이 실려있더군요. 점점 자세히 보게 되었는데 그 간증이 저의 인생을 바꿔놓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 간증내용에 감동을 받아 밑부분에 적혀져있는 주소대로 그 잡지사에 편지를 보냈고, 그 잡지사로부터 두세번 답장을 받아 보게 되었습니다.그 잡지사는 ccc순매거진이였는데 답장이 오기를 카트만두에는 교회가 많이 있으니 혹시 기회가 되면 교회에 나가보라고 했습니다. 그때 마침 제가 갑자기 병이 들어 네팔 수도인 카트만두로 치료받으러 가게 되었는데 입원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토요일은 병원휴무이기에 저는 밖에 바람쏘이러 나가면서 어떻게 교회를 찾을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중에 마침 손에 성경을 들고 가는 분을 만났는데, 저는 그를 따라 교회로 갔습니다. (참고로 네팔은 주일이 없고 토요일이 공휴일입니다.) 교회에 갔지만 들어가기가 두려웠습니다. 그리하여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 보았는데 목사님이 저를 보고 안으로 불렀습니다. 목사님은 저의 사정을 들으시고 저 자신과 저의 병을 위해 기도해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고쳐주신다면 제가 하나님을 따르겠습니다”라고 서원했습니다. 주님은 저에게 신실하셔서 저의 병을 낫게 하셨고 저는 저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그 분을 구세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좋은 직장을 가지는 축복도 받았습니다.그런데 이때부터 저는 가족과 친척들의 핍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온 가족과 일가친척 모두는 반대했고 할수 있는 한 방해했습니다. 배척하고, 유혹하고 협박도 했지만 저는 결코 변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식구들이 ‘다른 사람에게 크리스챤이라는것을 말하지 말고 다니면 괜찮지만 집에서는 힌두교의 의식을 따라야 한다’고 하면서 조금 양보했습니다. 저는 교회에 다니면서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성경을 읽고 또 잠자리에 들 때면 부모님과 친척들과 나라와 여러 가지 내용의 중보기도를 했는데, 저의 생활은 아주 역동적이고 생기있었습니다. 새로운 소망이 생기기도 하구요... 혹시라도 제가 교회가는 시간이 늦어지면 가족들이 오히려 왜 교회 가지않느냐고 물어보는데 그들의 생각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고 저를 바라보는 시각도 변해가고, 저는 이런 달라진 환경으로 인해 감사하게 되였지요.저의 교회 목사님과 리더들은 저를 점점 더 자주 찾기 시작했으며 영어성경도 얻어주면서 읽으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얼마후 교회는 리더들 사이의 분쟁으로 찢어지게 되었는데 양 쪽 목사님 모두 자신들의 교회로 오라고 요청했지만 저로서는 아무런 결정도 할수없었어요. 그때 제가 성경을 잘 알지도 못했고 교제도 별로 없던 상황이였는데 교회가 갈라진것이 마음에 상처가 되어 아예 1년 정도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한 서원이 늘 마음에 걸려서 다시 전에 갈라진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그 맘 때 교회는 영적으로, 수적으로 성장하였는데 저에게 청년리더의 일을 맡겨주었기에 1년정도 리더로 섬기다가 경제적인 문제로 교회는 끝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계속 신자들과 친교를 나누고 청년들의 모임에도 나가고 몇몇 청년들과 같이 하나님께 영광드리는 목적으로 기도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모임은 점점 활성화되고 성장하였으며 우리는 경배와 찬양과 워십 댄스와 드라마를 배웠는데 많은 교회들을 방문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대로 선 보이군 했지요. 그때 우리 팀에 선교사님 한분이 오게 되었는데 나중에 그분을 통해서 제가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었지요.제가 예수를 믿은후 저의 삶에서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가 회사에 출퇴근할 때면 많은 소년 소녀들을 길거리에서 보게 되는데 어느날 출근할 때 건물 구석에서 나는 슬픈 울음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늘 접하는 일이여서 그냥 지나치려는데 울음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와서 저는 그 울음소리나는 쪽으로 갈수밖에 없었지요. 거기에서 저는 두 소년이 강추위로 얼어죽은 충격적인 장면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 죽은 아이들은 사무실근처에서 자주 봐서 얼굴도 알고 가끔 밥 사먹으라고 돈도 주곤 했던 아이였답니다. 그런데 그 아이두명은 너무 추워서 서로가 꼭 껴안고 죽었더군요...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옷이 없어서 추위로 서로 꼭 붙어 있었는데, 저는 할말을 잃고 무거운 심정으로 사무실로 갔지만 아무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들도 하나님이 지으시고 사랑하는 자녀들인데 어느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친구들과 교제하면서 이야기 했더니, 다들 “우리가 그 아이들을 돕는다고 우리한테 무슨 유익이 있겠어?”라고 하였지요. 그러나 제 마음에는 그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불붙듯 해서 먼저 기도부터 시작했습니다.네팔에는 17000-20000명정도의 사람들이 공산당지지자와 정부사이의 내전으로 죽었기에 수많은 굶주린 아이들이 부모와 친척을 잃게 되어 거리에서 유랑할수밖에 없지요. 이 아이들은 집도 없고 부모도 없는 불쌍한 고아가 된거지요. 또 많은 아이들이 지뢰를 밟거나 전쟁으로 인하여 다리, 손 또는 몸의 어떤 부위를 잃어서 장애아가 되었는데 이런 아이들은 자기 눈앞에서 부모가 칼에 난도질 당하거나 엄마나 누나가 강간당하는것을 본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또한 많은 여자들이 아이를 낳았지만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불행한 일들도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이 다 전쟁이 가져온 결과지요.그리고 또 테러리스트들이 임무수행 때문에 아이들을 붙잡아가기에 부모들은 차라리 인도에 노동자로 보내군 하였는데 인도에는 또 아이들의 신장을 떼내는 일과 관련된 무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이들의 신장을 요구하는곳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신장하나의 가격이 2천달러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일하다가 병이 나서 병원에 가면 그때 병원에서는 가혹한 방법으로 신장을 떼여내서 팔아먹는데 이것이 나중에 발각되여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지만 지금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지요. 이런 일들은 저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고 그 아이들에 대한 불쌍한 생각이 강렬했습니다.그 때 저는 신문사의 기자로서 비교적 명성이 있는 직업이기도 하고 봉급도 많았고 편의시설도 제공받았기에 행복했지요. 그러나 예수믿기로 작정할 때 하나님께 드린 서원과 제가 받은 축복이 생각나군 했지만 그냥 무시했지요. 그리고 교회에 나가는 것도 게을리하게 되었구요. 왜냐하면 저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였기에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억울하게 공안부대에 체포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제가 반란군의 활동에 관하여 쓴 기사를 읽고 제가 반란군 즉 테러리스트와 내통한다고 고발했던것입니다. 저는 빛도 없고 음식도 없는 무시무시한 방음 장치가 된 지하 감옥에 들어갔는데, 듣기로는 그 감옥에서 살아서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저는 심문받을 때 제가 크리스챤이라고 선포하면서 크리스챤은 전쟁 또는 파괴적인 어떤 일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지요. 저는 감옥안에서 하나님께 드린 서원을 갚지 않은것에 대해 회개를 하면서 다시 감옥에서 나가게 되면 꼭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두 번째로 서원했습니다. 그들은 저의 1년 동안의 행적에 대하여 조사한후 삼일만에 저를 석방했습니다. 할렐루야..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결정을 했는지 저는 지금도 모르지만 분명히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믿습니다.그후 하나님은 제가 서원한것을 이루시기 위하여 저에게 한국의 신학교에 유학올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가족부양문제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의 가족은 제가 부양했던 것입니다. 결국 저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고 믿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며 그분의 사랑이지요.금년까지 저의 신학공부가 끝나게 됩니다. 공부를 마친후 네팔에 돌아가서 시골에 교회를 세우고, 전쟁으로 마음에 상처를 안고있는 사람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치유해주고 싶습니다. 또한 고아들을 위해 고아원을 세워 하나님의 아가페사랑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 아이들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권리가 있을 뿐만아니라 앞으로 예수님의 군사가 되어 네팔을 위해 변화를 가져올 사람들이 거든요.하나님을 믿고 또 성경을 읽을수록 하나님의 말씀의 새로운것들을 깨닫게 되어 모든 날들이 멋지고 새로운 모험이 되었지요. 모든 사람들이 이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올 자격이 있지요. 저는 사역을 위하여 신학공부하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저의 간증을 마치려고 합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누구든지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라” (요한복음 8장12절)감사합니다.문과 샨 이야기파키스탄에서 온 문이 처음 교회를 찾은 것은 2년 전 요로 결석 수술을 하기 위해서 왔다. 수술비용이 많이 든다니까 교회에 가면 도와준다는 소문을 듣고 왔던 것이다. 수술을 하기 위해 '안양샘병원'으로 가는 중 언제나처럼 권사님은 문에게도 예수님 이야기를 했다."문, 예수님 믿어. 예수님은 널 많이 사랑하신다" 고 했더니, 문이 버럭 화를 내며 "나는 모슬렘이에요, 나한테 예수님 말하지 말아요. 다른 사람한테나 말해요!" 하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당황했는데 권사님은 너무 태연하게 그리고 또렷하고 단호하게 말했다."그래, 알아. 네가 모슬렘 사람이니까 예수님 이야기 하지, 예수님 사랑 아니면 네가 지금 병원에 갈 수도 없고 예수님 사랑 때문에 너를 도와 줄 수 있는 거야" 라고 하자 문은 그 후부터 조용히 듣고 있었다.문의 결석은 커서 일주일 간격으로 3차례 수술을 받았고, 샘안양병원으로 가는 3차례 동안에도 예수님 이야기를 문은 조용히 들었다. 이 일은 모슬렘의 굳게 닫힌 철 대문의 빗장을 여는 시작이었다.문이 버럭 화를 냈던 예수님 이야기는 같이 일하는 동료 샨이 같은 병에 걸리면서 샨에게 이어지고 건선에 잘 걸리는 알리에게 이어지고 나중에 그들의 방에서 그들의 말로 된 성경을 통해 보고 읽고 듣게 되는 무궁한 발전을 하게 된다.어느 날 문은 같이 일하는 동료 샨을 데리고 교회에 왔다. 자기와 같은 증세라고 했다. 진료 결과 요로결석이었고 샨은 2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았다. 샨에게 처음 예수님을 소개할 때 샨이 문에게 “무슨 말하는 거냐?" 라고 물으니까 문이 대답하기를 "예수님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니까 그냥 들어" 라고 했다는 것이다.그들은 그들의 말처럼 만날 때 마다 그냥 듣고 있었다. 이슬비에 옷 젖는 줄은 모르고 말이다. 샨은 요로결석 수술 후에도 위가 안 좋아서 또 교회에 오게 되었고 두 차례 병원을 오고 갔고 복음의 이슬비는 그들의 옷깃을 적셔 나갔다.문과 샨은 어느 날 건선 환자 알리를 데리고 왔다. 한번 걸리면 평생 간다는 건선이다. 이리저리 알아보니 인터넷에서 건선 환자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들로부터 정보를 얻고 비싸다는 사해 소금을 무료로 얻게 되었다. 알리에게 소금 샤워와 얻은 정보를 말해주고 해보라고 했더니 조금씩 좋아진다고 하며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점심시간에 그들의 숙소에 가서 문은 알리에게 "예수님 믿어! 예수님은 죽은 사람도 살리시는 분이야! 건선은 아무것도 아냐!" 라고 함께 기도한다. 장족의 발전이 아닌가? 빗장이 열리고 예수님은 저들의 방을 방문하시고 저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셨다. 그렇다고 그들이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아니다.아픈 것도 없고 문제가 없으면 슬슬 교회를 안 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우리의 만남은 계속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샨은 허리가 아프다며 주일날 교회 나타났다. 병원에 갔더니 디스크라고 했다."너희들은 교회 안나 올 수가 없다. 끊임없이 교회 올 일이 생기잖아. 예수님께서 너희들을 아주 많이 많이 사랑하시는가 보다. 자, 이제부터는 성경을 읽어보자."이렇게 해서 병원을 오가는 동안 뒷좌석에서 성경을 읽게 되었다. 샨은 여러 번 병원을 오갔고 그때마다 성경을 읽고 얘기했다. 그들이 한국말을 잘한다 해도 복음을 이야기 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러나 자국말로 된 성경이 직접 말해주시니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읽고 나서는 무슨 말인지는 이야기 하도록 해서 기억하게 했다.그 후, 성경은 그들의 방에서도 함께 읽게 되었던 것이다. 문과 샨은 3월 4일 본국으로 돌아갔다. 샨은 돌아가기 전날인 3월 3일까지도 치료를 받으러 다녔고 성경을 읽었다.샨이 말했다. "예수님 내 맘에 있어요, 나 진짜 믿어요. 그런데 모슬렘이 크리스천 되면 문제 있어요.” 걱정스런 그의 눈빛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샨, 예수님은 샨의 마음을 다 알고 계셔. 기도하는 것 잊지마! 예수님 이름으로 꼭 기도해!"그리고 함께 기도하고 그는 떠났다. 그들이 읽고 듣고 했던 복음이 그들의 나라에서도 잊지 않고 기억되어 살아 역사하는 복음으로 증거 되기를 소망하며, 우리의 기도는 계속되고 있다파키스탄에서 국제전화가 그렇게 비싸다고 들었는데 알리가 전화를 했다. 자기네들 셋이 모이면 크리스천이 보여준 사랑을 감사하고 있다고.꿈나무 (김영훈형제-중국동포)하나님 구원의 계획지금부터 10여년전의 어느 한 여름이었습니다.. 저는 거의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집 근처에 있는 중고시장을 구경하러 갔습니다. 중고 시장에는 일용품 외에 제가 좋아하는 옛날우표, 화폐, 그리고 중고책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한참 구경을 하는 중에 성경책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도 한국말로 된 성경책이었습니다.그 당시만 하여도 중국에서는 성경을 마음대로 접할수가 없었던 때였으며 또 그전까지 저는 한번도 성경을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 성경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저도 모르게 약간의 긴장감과 흥분감에 쌓여 있었습니다. 성경에 대한 호기심과 보고싶은 마음이 생긴것이지요. 저는 상인과 값을 흥정하다가 좀 더 싸게 사려고 다른 것을 구경하다가 다시 와서 사려고 지나갔습니다.돌아와서 다시 그 성경책을 사려고 하는데 한 사람이 이미 그 성경책을 손에 들고 돈을 지불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도 아쉬운 마음이 들어 그 사람한테 이 성경책을 양보할수 없는가 물었더니 안된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한족이었는데 자기는 크리스챤이고 또 조선족 크리스챤 친구가 있는데 이 책을 사서 그 친구한테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쉽지만 할수 없었어요. 그 후에도 여러번 시장에서 성경을 찼았지만 다시는 찾지못했습니다.지금 돌이켜 볼 때 이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새로운 인생의 길로 인도하고 구원하시려는 첫 번째 계획임이 분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무엇보다 귀한 성경책(하나님의 말씀)을 더 싸게 사려고 흥정하다가 그만 기회를 놓쳤습니다. 하나님과의 첫 번째 만남은 이루지 못했습니다.저는 다시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또 몇년이 지나갔습니다. 저의 가족중에서 장모님이 다른 사람의 전도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여 저는 성경책을 다시 볼수 있어 처음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하나의 신화이야기로만 여기고 처음부터 읽었는데 노아방주후에부터 족보에 관한 기록이 나와서 지루하기에 거기서 끊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두 번째 만남은 또 이렇게 지나갔습니다..하지만 하나님은 저에 대한 구원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획을 바꿔서 저를 한국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한국에 도착하여 인천항구를 나올때 어느 교회에서 주는 중국어 성경책을 받았습니다. 그 성경책을 받으면서 저는 왜 또 성경책인가고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가끔 성경을 읽었는데 읽는 도중에 족보가 나오면 뛰여넘고 제사장복장에 관한 내용을 뛰여넘고 제사에 관한 내용을 뛰여넘고 성막에 관한 내용을 뛰여넘고 민수기에 가서 인구조사에 관한 내용이 나오기에 거기서 멈추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세번째 만남은 또 이렇게 무산되고 또 1년이란 시간이 지나갔습니다.2000년 11월 하나님께서는 저를 우리 홀리네이션스선교회로 인도하였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목사님의 설교도 들으면서 또 예배후의 성경공부, 새벽 성경공부를 통해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차츰차츰 이해가 되고 또 그 말씀이 진실임을 알게 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홀리네이션스선교회에서 일어난 수많은 기적과 감동적인 사건들을 보고 듣고 경험하면서 저는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또 우리 외국인 형제들의 고통을 위로해 주시고 간절히 기도해 주시고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식당봉사, 의료봉사, 그리고 열정적인 찬양으로 수고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 성도님들이 언제나 천사같은 미소로 형제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이분들의 삶이야 말로 세속적인 삶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분들이야 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여러분들도 알다싶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외국인 형제들을 위하여 아름다운 쉼터를 마련해주셨습니다. 몸이 아픈 형제들, 오고 갈데 없는 형제들이 여기에서 무료로 숙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오는 형제들은 돈 한푼없어도 따뜻한 방에서 잘수도 있고 음식도 배불리 먹을 수도 있고 쉴 수도 있습니다. 왜 이럴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느낄 수 있습니다.매번마다 우리를 위하여 식사를 마련해주시는 성도님들, 이발을 해주시는 성도님들, 그분들은 묵묵히 뒤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우리를 위해 열심히 봉사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을 까요? 이분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행동으로 가르치고 있는 분들입니다.또 매번 자비로 의약품을 가지고 의료기계들을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무료로 병을 봐주시는 의사선생님들 저는 이분들의 친절한 모습에서 우리형제들이 저와 같이 이분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느꼈으리라고 믿습니다.또 매주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시는 목사님, 전도사님들, 그리고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 열정적으로 찬양을 해주시는 분들, 이분들 모두 자기의 가정이 있고 자기의 사업이 있고 자기의 사역지가 있고 바쁘신 분들이지만 곳곳에서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얻고 또 예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가를 가르치기 위한 것 밖에 없습니다. 이분들 모두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성경을 읽으면서 그 안에 있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알지 못한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2). 성경이 다시는 지루하게 느끼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저의 생명의 양식이고 생명수가 되었습니다. 저도 주님이 원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을 내렸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2001년 11월 세례를 받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영접하고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하였습니다.하나님은 저에게 또 새로운 비젼을 주셨습니다. 저로 하여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하여 저는 주님의 은혜로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신학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이 선지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칩니다. 그 속에서 새로운 삶의 희망과 지혜를 얻고 살아갑니다.저의 길지 않고 평범한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 대한 구원의 계획이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 번이나 성경을 통하여 저와의 만남을 시도하셨고 제가 깨닫지 못함으로 인하여 저를 한국으로 인도하시고 교회로 인도하시고 또 신학대학으로 인도하셨습니다.저는 확신합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현존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그 분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심을. 또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며 또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위한 구원의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바로 하나님의 말씀속에 그 놀라운 비밀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구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줄수 있는 기쁨이 있고. 평화가 있습니다.“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언16:9)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다 자기의 인생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또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 만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비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비밀을 발견하므로 우리는 구원을 얻고 축복받는 삶을 살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것이니라(마7:7)여러분 우리함께 찾읍시다. 우리함께 구합시다. 우리함께 두드립시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히심이 크도다”(시편145:8)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릴때 우리가 진심으로 경배드리며 소리높여 찬양할 때 우리가 간절히 먼저 하나님의 의를 구할 때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저는 확신합니다. “그러면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것이나라”(마7:8)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을.꼬멧의 하나님Born again in Jesus Christ이렇게 저의 간증을 나눌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저는 2001 년 6 월에 한국에 와서 4 년 동안 일을 했고 태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합법적으로 2006년 3 월에 같은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어 앞으로 3 년도 한국에서 머물 수 있게 되었습니다. 8 개월 반 만에 돌아왔어도 사장님은 저가 쓰던 방을 그대로 잠 구어 두었다가 사용하게 해 주어서 전혀 낯설지 않게 다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같은 경우는 거의 드물고 특히 저의 나이가 한국나이로 44 세가 되었기에 한국 법에 노동자는 40 세 미만으로 올 수 있게 되어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만 말할 수 있겠습니다.I’m much honored to share my testimony with you all today. I first came to Korea in June 2001, worked for 4 years and returned to my home country, Thailand last year. I was very lucky to return to Korea few weeks ago with “legal work permit.” Not only did I return with legal work permit, I returned to the same factory and to the same room that I used to use. All of this could not have happened without God’s blessing as the Korea’s labor regulation only allows those workers under 40 years old to come to Korea to work.저가 떠나고 공장에 인력이 부족하여 유공자 자녀로 귀국하여 한국 귀하를 기다리고 있는 중국동포를 공장에서 채용하였다고 일년 동안 저의 사장님은 외국인 초청자격이 정지되어 있었습니다. 한데 저가 다시 한국으로 올 수 있는 6 개월이 되자 한 국법이 바뀌어서 사장님은 저를 다시 초청했고 나이가 40 세 미만으로 정해졌지만 사장님이 직접 좋다고 초청하여 모든 장애물을 없게 하고 한국에 돌아올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After I have left Korea, my sajangnim had to invite another Chinese worker as our factory was short-staffed, which restricted him from inviting myself or any other person for 1 year. However, through God’s amazing works, this regulation changed and Sajangnim was able to invite me again. Although my age didn’t qualify the requirements (as I’m 44 years old), Sajangnim’s personal invitation allowed me to return to Korea.처음 2001 년 한국에 왔을 때 다른 외국인처럼 돈을 벌려고 왔습니다. 처음에 한국에 적응하기는 저가 생각한대로 쉽지가 않았습니다. 한국어도 못할뿐더러 처음 가진 직장에서는 월급도 제대로 주지 않았을 뿐더러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친구도 없고 여러 가지로 너무 힘들어서 집으로 되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에 어떤 사람이 저를 교회로 데려가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마마킴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그분은 제게 용기를 심어 주었고 평안한 마음을 갖게 해주면서 예수님과 성경말씀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한국을 오기 전에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예배 후에 저는 성경책을 숙소로 가지고 와서 읽기 시작하였고 계속해서 주일날이면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골로새서 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는 말씀과 같이 저는 기도를 배웠고 기도 하면서 사는 삶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또한 감사하면서 신앙으로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Just like any other foreigner, my intention for coming to Korea in 2001 was to make a living. However, when I first came, it wasn’t as easy as I thought to adapt to the life in Korea. Not only did I not speak Korean, the first factory that I used to work for did not pay me on time, and I didn’t know anybody in this country. As I wasn’t able to put up with all these pain, I was thinking of returning to my home country. Just when I was in great distress, somebody suggested in going to church where I met Mama Kim for the very first time. She gave me a lot of encouragement and helped me realize what “peace at heart” was through meditating God’s words. I started to read the bible when I returned to my room after worship service and attending church on Sundays became part of life. As it says in Corinthians 4:2, “Devote yourselves to prayer, being watchful and thankful” I have learned how to live through the power of prayer. Additionally, my faith in God grew day by day by knowing how to be thankful.저의 삶은 날마다 변화되어 가고 있고 예수님을 저의 인생에 가운데 모시고 살기에 더 이상 외롭지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성경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영적으로 아직 어리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사랑하는 것을 느꼈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My life has changed and I am no longer alone as Jesus is beside me now. Although my faith in God is still at an early stage, I can feel God’s love and I have accepted God as my savior.저는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후에 영광스럽게 세례도 받았습니다. 아직 완전한 성숙한 모습은 아니라도 주님을 따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열망이 저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I was born again in Jesus Christ and I was also privileged to be baptized in this Church. Although my faith needs to grow, my mind is set to obey God, follow his guidance, and glorify his name.마마킴은 제게 좋은 사장님이 있는 공장으로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곳은 월급도 잘 주고 6 시 30 분이면 일이 끝나는 좋은 곳이었습니다. 한데 그곳은 저를 시험하는 훈련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젊은 한국인이 매일 저를 때리고 멱살을 붙잡고 소주 사오라고 괴롭히는 것이었습니다. 작업 도중에도 무릎을 발로 차고 괴롭혔습니다. 저는 태국사람 중에서 키도 크고 체격이 좋은 편이라 같이 싸우면 그 한국인은 작고 어려서 얼마든지 때려줄 수 있었습니다. 마마킴은 같이 기도하면서 이겨나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한국인이 공장을 떠나서 좋아했더니 다시 들어와서 전과 같이 괴롭혔습니다. 어린 나이의 사람에게 그렇게 당하는 것은 참으로 모욕적이었습니다.Mama Kim introduced me to a factory with good working conditions. I could get off work at 6:30pm and Sajangnim always paid us on time. However, it was also a place where I had to go through a testing period. There was a young Korean worker who kept on harassing me by hitting me and ordering me around by telling me to go and buy soju for him. Even when I was busying working he would come by and kick my knee. I was the tallest and biggest among the Thai workers and if I wanted to, it was very easy for me to beat up this young Korean guy. However, Mama Kim suggested strongly that we fight through this through prayer. Then few days later, I was happy to find out that he had left the factory but he came back and harassed me again like before. It was harder for me as this guy was much younger than myself.인격이 참으로 좋으신 사장님은 제게 사장님을 믿고 신뢰하며 참아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제게 주님이 안 계셨더라면 참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인내와 용서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때 참지 못하고 그 공장을 나갔더라면 나이가 많은 저를 사장님이 다시 초청해 주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그때 얼마 기간이 지난후 그 한국인은 여기 저기 떠 돌다가 다시는 그 공장에 오지 않았습니다.Our sajangnim, of noble character, requested that I trust in him and be patient. If it wasn’t for God, I wouldn’t have been able to go through this situation, but he helped me learn what “patience” was. If I had not trusted in sajangnim, then he wouldn’t invite me back especially considering my age. I truly thank God for making all impossible things possible, and I do believe that God has his reasons for everything. In addition, that young Korean worker left the factory after few months later.처음 저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을 때는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었습니다. 그러나 세례를 받고 얼마 후에 담배를 먼저 끊게 되었습니다. 술은 조금씩 마셨는데 그런 결과로 혈압이 200 까지 올라가서 하루는 헛소리를 하고 물체가 몇 개가 보여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그 이후로 술도 완전히 끊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후 혈압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건강한 몸을 가지게 되어 영과 육이 구원을 받은 것을 감사했습니다.When I first started to go to church, I still smoked and drank alcohol. However, shortly after I was baptized I quit smoking right away. I still drank but this caused me to have high blood pressure, almost up to 200 level, which by then I was carried to a hospital. That incident caused me to quit drinking as well. Now I am very healthy both physically and spiritually.2005 년도에 태국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저를 구원하신 예수님과 한국에서 생긴 모든 일들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의 아내는 같이 교회에 나가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전혀 경험이 없는 저의 아내가 저가 하는 대로 따라 와 주었습니다. 우리는 신앙으로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공급해 주셨고 앞으로도 그렇게 인도하실 것을 믿으며 우리 가족은 서로 더 뜨겁게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When I returned to Thailand in 2005, I was very eager to tell my family about my encounter with God. My wife started to attend worship service with me and learned how to pray and read the bible. My wife had no idea who God was, but thanks to the Lord, she followed my foot steps to Church. There is nothing impossible in God’s hand and he has provided me with everything that I need. God has also helped my family to become more loving and cheerful towards each other which I’m also thankful about.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Corinthians 5:17 “Therefore, if anyone is in Christ, he is a new creation; the old has gone, the new has come!”저의 간증을 듣는 모든 분들은 오늘 이 시간에 마음 문을 여시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 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준비하신 새로운 풍성한 삶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아멘My brothers and sisters, through my testimony, I hope this has helped you to open your mind to accept the Lord as our saviour. By accepting the Lord, you’ll be able to experience the abundant life that I’m experiencing now. Amen.스테판의 한국생활준비중보레이가 말하는 하나님.준비중꿈나무 (나라자매-몽골)저희 부모님은 아무 종교도 믿지 않는 무신론자 가정에서 저는 태어났습니다. 그전에 몽골에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들의 다수는 미신에 젖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1990년부터 우리나라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 열린 문으로 여러 외국인 선교사들이 우리나라로 복음을 들고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신앙에 자유가 생겼습니다. 1991년부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지만 그때 저는 복음을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그 당시 우리나라에 불경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여러 선진국에 노동자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신앙의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서 한국에 올 때까지 관심이 없었습니다.저는 한국에 오기 전에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남편은 중국에서 몽골에 잘 팔리는 물건을 사가지고 와서 장사하는 자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남편과 아이들이 2명 있고 작은 아파트지만 저희 집을 소유한 평범한 삶을 살았습니다.그런 우리 가정에 풍파가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7년 전에 여동생이 한국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딸이 한 명 있습니다. 동생 아기가 두 살 때 높은 곳에서 넘어져서 간질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 했는데 의사 선생님들이 몽골에서 치료 받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동생의 하나 밖에 없는 딸이 치료 받을 수 없는 병에 결렸기 때문에 저희 가족들이 모두 마음이 아프고 슬펐습니다. 동생이 남편과 딸을 데리고 한국에 가기로 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치료 받으면 병원비가 비싸기 때문에 경제적인 새로운 문제가 다시 생겼습니다.저는 동생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동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같이 생각 해 보기로 했습니다. 저의 남편과 함께 의논하고 우리가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아서 도와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검사를 해 보니까 그 병이 별로 심각하지 않아서 저희 아파트를 팔지 않아도 됐습니다. 치료 받고 병이 나서서 몽골에 돌아 왔습니다.어느 날 동생 남편이 하는 사업에 돈이 더 필요해서 같이 살자고 했습니다. 사업 이 잘되면 제일 먼저 우리에게 아파트를 사 주겠다고 약속을 해서 아파트를 팔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반대 했지만 저는 동생 남편을 신뢰했으며 그 돈을 갚을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파트를 팔고 같이 살게 됐습니다, 그 후 남편은 노동자로 일본으로 가게 되었습니다.그러나 동생남편이 계획한대로 사업이 잘 되지 않았고 실패했습니다. 다시 아파트를 살 수 없어져서 너무나 속상했습니다. 동생을 도와주려고 아파트를 팔고 돈을 빌려 주었는데 그런 결과가 나올지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계속 함께 살수가 없어서 저도 일본으로 가려고 했지만 비자 받기가 어려워서 갈수가 없었습니다.그래서 2002년 11월 달 한국에 왔습니다. 그 사이에 남편이 삼 개월 먼저 한국에 와 있었습니다. 처음 한국에 올 때 한국말도 모르고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정말 어려운 나날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슬퍼서 울면서 남편을 따라 갈 뿐이었습니다. 2003년 4월 달 아는 사람이 소개 해줘서 식사동에 있는 판지 공장에서 남편과 함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공장 일이 너무 힘들고, 날씨가 더워서 땀을 쏟으면서 일을 했습니다. 겨울에는 공장 안에 보일러를 가동하면서 하는 작업이라 괜찮았지만 한 여름 더운 날씨에 보일러에서 내뿜은 열기는 정말 참기가 힘들었습니다. 하루에 14시간 이상 하는 작업도 몽골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고된 작업이었습니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해 볼 여유조차 없는 그야말로 군대 훈련소 같은 시간들이었습니다.그런 어려운 시간 가운데 내가 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사람인 윤집사님이 찾아 왔습니다. 그때 한국말도 몰랐지만 집사님이 쉬운 말로 하나님, 예수님 이야기 해주셨고 교회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에도 몇 번 우리 공장에 오셨지만 우리는 그렇게 쉽게 교회에 가지 않았습니다.그러자 어느 날 갑자기 아파서 출근을 못 했습니다. 그 날 윤 집사님이 오셔서 저를 데리고 병원에 갔습니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외국인한테 아주 친절 하시고, 병원비를 다 내 주신 것을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그래서 다음주에 교회에 갔지만 그것은 집사님의 도움에 감사의 표시로 갔습니다. 그렇지만 일주일에 하루 밖에 없는 일요일에 교회에 매주 가기는 어려웠습니다. 모처럼 일요일에 집에서 푹 잠자고 싶고 집안일도 있을 뿐더러, 동대문에 가서 집으로 돈도 송금하고, 친구들을 만나서 놀고도 싶어서 교회 갈 생각이 별로 없었습니다.처음 드리는 예배에서 윤집사님의 그 친절 한 모습을 다시 보고 또 교회 모여 있는 성도들의 밝은 모습과 친절함을 보면서 감동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그 종교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고 영어와 한국어 몰라서 목사님이 하신 말씀 들어도 못 알아듣고 그냥 교회에 갈 뿐이었습니다.하나님의 은혜로 윤집사님과 일주에 한번 한 시간 정도 성경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조금씩 믿음이라는 것에 눈이 뜨게 되었고 기도는 어떻게 할 줄 몰라서 주기도문을 많이 읽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저희 믿음이 점점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편과 함께 2004년 4월 11일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2004년 3월 1일 세례를 받기 전에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술과 담배를 딱 끊었습니다. 제가 남편에게 술 마시지 마라 담배 피우지 말라고 말 한 적이 없는데 남편이 스스로 자기가 예수 믿으면 술 담배 안 하는 거라고 하면서 끊었습니다. 나는 너무 놀라고 감동스러워서 그런 큰 은혜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렸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가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4년 8월 달 둘이 열심히 번 돈으로 다시 몽골에 아파트를 살수가 있었습니다. 이런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에 참 감사합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한국에 오기 전에 저는 집이 없어져서 너무 슬프고 고통스러워서 동생과 동생 남편을 용서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동생 남편이 옛날에 살았던 집을 팔지 않았으면 저희들이 한국에 노동자로 올 기회가 생기지 않았을 것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한국에 노동자로 오게 된 저희 가족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축복의 시간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 32절 말씀 같이 동생남편을 용서할 뿐 아니라 오히려 감사할 뿐입니다.(엡4:32) “친절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십시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한 것같이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오늘 이 글을 쓰면서 지나간 시간들을 생각 해 보니까 저희 삶이 정말 많이 변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3년 전에 저도 많은 외국인들이 돈을 벌러 한국에 온 것 같이 한국에 왔습니다. 행복한 삶의 열쇠는 돈이라고 생각해고, 이 세상이 행복을 소유하기 위하여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행복은 언제나 만족할 수가 없는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행복을 소유하기 위해서 분노, 질투, 욕심, 교만 등의 죄악이 저에게 있었습니다. 저는 그 죄를 회개 하였고 대신 의의 열매를 맺으려고 기도 하고 있습니다. 세상 행복 찾으려고 수고했던 저는 이제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통해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 났습니다.하나님 믿기 전에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자신의 생각 되로 해결 하였던 제가 요즈음은 그때마다 기도 하면서 하나님이 방법 되로 하려고 배우고 있습니다.우리 홀리네이션스 선교회는 항상 하나님이 은혜로 가득 찬 곳입니다. 많은 외국인 들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 해 주고, 아픈 사람들을 치료 해 주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외국인을 사랑하기에 그 사랑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주일날에 교회에서 몽골 사람들을 위해 예배 통역을 하면서 너무 기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으면 이런 좋은 일들이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전에 예수님 누구 인지 모르고 이 세상 행복을 찾으려고 가는 저를 이 모든 것을 알게 하시고 인도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저를 전도해주고, 예수를 통해서 성숙한 믿음에 이르기 까지 오래 참아 주시고 기도 해 주신 윤집사님께 너무나 감사합니다.며칠 전에 저의 부모님께서 교회에 가셨다고 했습니다. 저는 부모님에게 예수님을 깊이 알 수 있도록 부모님을 위해서 계속 기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한국에 노동자로 왔고 공장 생활을 하고 있었던 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서울신학대학교 학생이 된 것은 정말 하나님이 놀라운 일입니다. 한번도 외국에서 공부 하려고 꿈도 꾸어 보지 못한 저에게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몽골에 귀국하였다가 다시 학생신분으로 오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그렇지만 이 모든 것을 이루어질수록 기도 해주신 홀리네이션스 선교회의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께 감사드립니다. 서울신학대학원 학생으로 선택하여 하나님의 종으로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전심으로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리고 수많은 몽골에 있는 영혼들을 주 앞에 인도하기를 기도드리고 있습니다.꿈나무 (소누형제-인도)소누는 자신이 한국에 노동자로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교를 나오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인도에서 아주 상류층은 아니더라고 중상층에 가정에서 반듯한 가정교육도 받아서 인품이 항상 다른 외국인들하고는 달랐다. 인도에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가장 안정된 직장이기에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전에도 한국에 태권도 챔피언십에 참여하기 위하여 온 적이 있었다.소누에게는 남동생이 있었는데 사업을 한다고 3500 만원의 은행 대출을 받아 시작을 하였다. 동생에게는 이미 결혼하여 어린 조카도 있었다. 대가족제도인 인도에서 동생이 사업에 실패하여 집이 날라가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소누는 애기와 아내가 있는 동생은 집에 있게 하고 자진하여 대학원을 중단하고 한국에 노동자로 왔다. 처음 공장생활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런 가운데서 목표는 오직 한가지였다. 빨리 이 돈을 갚고 노동자라는 신분을 벗고 한국을 떠나 인도로 돌아가야겠다는 각오아래 자신이 속해있는 공장에서 작업이 끝나면 밤에도 한 군데 내지 두 군데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 달에 하루나 쉴까 오직 빚을 갚기 위해 옆도 뒤도 보지 않고 일을 했다.공장에서는 춥고 힘든 상황이라 많은 외국인들은 다치고 병드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외국인들은 한국에 싼 소주에 현혹되어 술을 마시고 돈을 받고 관계를 해 주는 여자들을 찾기도 했다. 부모님이 멀리 떨어져 있기에 아무도 재제를 가하는 사람이 없기에 청춘의 나이에 탈선하기도 쉬운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다.그런 소누에게 복음을 전하고 새벽에 성경공부를 일주일에 한번씩 하자고 권했다. 내가 새벽 6 시에 공부를 몇 명 뽑아서 공장을 방문하여 복음의 씨앗을 심었는데 낮에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고 밤에는 끝나는 시간이 일정치 않아 새벽을 택한 것이다. 외국인 선교회에서는 일주일에 한번 주일에 예배를 드리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에 그렇게 시도를 했다. 소누는 교회에 처음에 나온 동기가 교회에 오면 어려운 일 있을 때 도와 준다고 하여 찾아왔지만 주일에도 아르바이트 일이 있으면 일이 우선이지 교회에 잘 나오지 않았다.그러나 성경공부를 매주 해나갔다. 복음의 씨앗은 그의 심령 밭에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세례를 받고 소누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갔다. 주일 예배를 빠진 적이 없을뿐더러 인도사람들을 위한 통역을 담당하였다. 모든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자마자 휴대폰을 사는데 소누는 떠날 때 까지 휴대폰을 사지 않은 유일한 외국인중에 한 명이었다. 세례 받자마자 십일조를 자진하여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밤에 다른공장에서 일을 하지 않아도 임금이 올라 믿을수 없는 기적으로 3 년 반 만에 동생 빚을 모두 갚게 되었다. 떠날 때는 연금 86만원을 받은데다가 보태서 100 만원의 감사헌금을 하고 가는것이다.뿐만 아니라 자신이 다니던 송학식품 회장님께 감사하다고 감사의 편지와 선물까지 하는 신사도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신학공부를 하여 주의 종이 되겠다고 소누는 인천공항을 떠났다. 그 후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현재 신학대학원에 입학 수속 중이다.떠나기전 이곳의 생활의 간증을 한국교회 성도님들 앞에서 하여 많은 감동을 주었다.저는 한국이나 인도에서 챔피온쉽 경기를 많이 했지만 한번도 떨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러 성도님 앞에서 간증을 하니까 떨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를 간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4 년 전에 저도 많은 외국인들이 돈을 벌러 한국에 온 것같이 한국에 왔습니다. 여기 계신 성도님들 중에 공장에서의 어려움, 예를 들면 멸시를 당한다든지 불공평한 대우, 체불임금, 질병, 사고, 더럽고 힘든 작업장 같은 일들을 정확하게 아시는 분들이 몇 분이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다가 이 모든 어려움들이 가족과 멀리 떨어져서 가족의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생기는 일들입니다. 같은 공장에 외국인 친구들이 이런 어려움을 교회에 가면 도와 준다고 하여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교회에 가볼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교회는 기독교인들이 예배를 드리는 장소로만 알았습니다.그래서 친구들과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였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단지 말로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닌 것을 발견했습니다. 일반 종교와 아주 다른 예배를 보게 되었는데 주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예수님을 닮아 가는 삶 속에서의 예배를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였습니다. 이 구원은 순수한 사랑과 조건이 없는 사랑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외국인들의 문제를 그분들이 아플 때도 자신을 돌보지 않고 도와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만약 제가 그렇게 도움을 받은 것 같이 해야 된다고 하면 계속 교회도 나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랑은 마치 엄마가 애기를 키우는 것과 같은 사랑과 같았습니다. 처음으로 감동 받은 부분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남을 사랑하는 것이 주께 예배 드리는 것과 같이 사랑을 한다는 것 이었습니다.사년 전에 가족과 멀리 떨어져 왔을 때 저는 참 슬펐습니다. 지금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여기서 받은 사랑을 그리워하면서 슬퍼집니다.저는 가족의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제 동생이 사업을 하다가 큰 손실을 보았고 3500 만원의 부채를 지게 되었고 동생은 이미 결혼을 하여 애기까지 있는 처지라서 저는 대학생이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근로자로 오게 되었습니다. 전에 한국에 태권도 경기를 하러 온 적은 있었지만 처음 이곳에서의 공장생활은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마태복음 17 장 20 절에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 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을 믿는 능력으로 산이 옮겨 지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삼 년 반 동안 3500 만원의 빚을 모두 갚았습니다. 의심에 여지없이 저는 열심히 일을 했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외국인들은 어떤 때는 일어 없거나 혹은 임금을 받지 못했거나 혹은 병이 나서 대부분은 그 액수의 반도 저축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모든 발걸음마다 예수님께서 저의 길을 분명하게 인도하신 것을 절대적으로 믿습니다.앞에 말씀 드린 바와 같이 한국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은 여러 가지 종류의 신체적 육체적 스트레스로 인하여 술을 마시거나 흡연 또는 다른 건전하지 못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극복하려고 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가족들과 사회로부터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런 일들을 하기가 더 자유롭습니다. 처음 저 자신도 한 인간의 본능으로 예외가 아닐 것이라는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를 그러한 죄로부터 지켜 주셨습니다. 저는 마음이 허전하거나 외롭다는 느낌을 가지지 않았고 오히려 성경공부를 통해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새로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처음에는 성경을 일반적인 책을 읽는 기분으로 왜 성경이 보석과 같고 꿀보다 달으며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 있다고 하나를 알기 위하여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사 년이 지난 지금 성경은 저의 삶에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었고 성경을 더 읽을수록 주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느낍니다.이년 전에 저는 물과 성령으로 예수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나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에는 친구들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가끔 인생은 정말 힘든 것이야 라고 말했지만 이러한 생각은 물질주의에서 나온 생각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저 자신이 달라지면서부터 가치관이 달라지고 우선권과 성공적인 삶의 정의가 달라졌습니다. 그런 이후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풀렸고 긍정적으로 되었습니다.저는 돈을 벌러 한국에 왔지만 그 당시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예수님 안에서 신앙의 보화를 얻게 되었습니다.꿈나무(와기 형제-이집트)성부, 성자, 성령 유일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아멘.사도바울을 디모데전서 1장 16절에 기록하였습니다. (딤전1: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사랑의 주님이 저를 오래 참음으로 사랑하셨고 제게 어떻게 해주신 것에 관하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아주 부자도 아주 가난하지도 않은 크리스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1991년에 우리 마을에 있는 아름다운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나는 다섯 명의 자녀 중에서 장남이었고 아버지는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병을 앓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나는 공부를 빨리 끝마치고 가족을 부양해야 했습니다. 나의 주님께서는 나에게 길을 인도하셔서 1997년부터 큰 병원의 혈액 실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그때에 내가 탄 인생의 항해는 잘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불어 닥치는 경제적인 문제로 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나는 불란서나 이태리로 돈을 벌기 위하여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그곳으로 가는 것을 막으시고 그 대신 2001년 9월에 한국으로 오게 하였습니다. 한국에 도착할 때 나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친구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랬듯이 주님은 나를 어느 이집트 형제에게로 인도해 주셨고 그 형제는 나를 김포에 있는 공장으로 소개해 주었습니다.나는 공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6개월을 그곳에서 일을 하였는데 주님은 내게 매일 새 힘을 주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곳에서 일을 하면서 예배드릴 교회를 찾던 중 삼위교회에 관하여 듣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전파하고 늦은 밤이나 낮이나 상관없이 외국인들의 문제를 도와준다는 말을 듣고 가서 우선 보기로 작정하였습니다.그래서 2001년 12월에 처음 식사동에 오게 되었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났을 뿐 아니라 홀리네이션스 선교회에서 어떻게 매주일 교회에서나 공장에서 모슬렘 이집트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내가 놀란 것은 어떻게 주님께서 크리스천뿐 아니라 국적이나 종교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그때 성령 충만한 한 사람을 만났는데 바로 마마킴이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같이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고 뿐만 아니라 엄마가 아들에게 하듯이 매일 스스로도 성경을 읽도록 격려해주었습니다.나의 삶은 변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이름만의 크리스천에서 충성되고 살아있는 크리스천으로 바뀌게 되었고 윤집사님의 지도 하에 이집트 모슬렘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나님께서는 큰 은혜의 소명을 주셨습니다.지금 나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 된 모습을 느낍니다.사랑은 기적을 이뤄냅니다.사랑은 믿지 않았던 사람을 강한 전사로 세웠습니다. 4년 전 제 모습은 마치 아버지 손에 이끌려 복잡한 거리에 나온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비록 제게 힘은 없지만 제게 무슨 일이 있어도 제 손을 꼭 잡은 아버지에 대한 믿음으로 걱정이 없었습니다. 매일 어려운 환경가운데서도 제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 주시고 제가 다가 갈수 있도록 사다리를 놓아주신 아버지였습니다.(이사야43:1~3)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네 구원자임이라”그처럼 조건 없이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서 제가 침묵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결심했습니다. 제 모든 삶을 바쳐서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겠다고. 모든 이들에게 외치고 싶습니다. ‘와서, 보십시오! 사랑의 주님께서 얼마나 당신을 사랑 하시는지. 그리고, 당신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버리신 예수님을 보십시오!’사랑의 주님, 저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제가 감사함은 저를 충성되이 여겨 저로 하여금 당신의 포도원에 같이 일하게 하여 주심입니다. 저는 이제 알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오게 된 것은 이곳 삼위교회를 통해서 저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다는 것을요.지미가 하나님을 만난 이야기준비중에디의 간증1. 성장과정 및 교육배경(해외수학과정을 중심으로)저는 1973년 5월 17일 생으로 아버지는 큰 철물제작회사의 회계이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인 평범한 이슬람가정의 4남매중 맏아들로 태여나서 이슬람문화속에서 성장하였습니다. 독서를 즐기는 저는 어려서부터 이슬람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많은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슬람국가에서는 남자아이는 15세부터, 여자아이는 9세부터 기도를 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게 됩니다. 저는 이러한 이슬람교에 거부반응을 갖게 되었고 다른 종교에 관심이 갔지만 어쩔수 없었습니다.고등학교를 졸업한후 2년간 군대에 입대하여 군인생활을 하였는데, 한번은 면도를 하지 않았다고 48시간동안 감옥에 갇힌 적도 있었습니다. 일년에 두달 동안 슬퍼하라는 모하람 기간에는 검은색 옷만 입고 기도해야 하며 또 그 기간 동안에는 집안에 음악을 틀거나 오락하는것은 금지되여 있고 라마단 금식기간에 음식을 먹으면 사람들 앞에서 매질하는 강제적인 종교가 제 마음에 많은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제대후 5년동안 전자제품가게를 운영했는데 우리나라 경제상황이 나빠서 돈이 벌리지 않기에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2. 인생관의 변화 및 신학교 지원동기한국에 와서 처음 두달 동안은 매일 다섯 번씩 모슬림식 기도를 했으나 곧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일년동안 다른 사람과 교제가 없다보니 사단의 유혹으로 소주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게 되었는데 그 무렵 한 친구를 우연히 알게 되어 교회를 알게 되었고 여러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재미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설교를 들을수록 예수님을 알고 싶어져서 성경을 달라고 했습니다. 성경책을 선물 받은후 읽으면서 코란과 비교를 하게 되었고 교회내의 성도들을 보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되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후에 세례를 받았습니다.얼마후 저는 탈장이 생겨 수술 받아야만 했습니다. 당장 수술비도 없었고 병원도 모르고 말도 안되여서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그때 저는 홀리네이션스의 윤권사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선교회의 도움으로 아무걱정없이 수술받게 되었고 건강도 바로 회복되였습니다.그때 저는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외국인인 저에게 무료로 치료를 해주는 선교회의 분들을 보면서 많이 감동 하였고 또 이런 사랑이 많은 예수님에게 내 생명을 바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회복하면서 휴식하는 저에게 권사님은 신학공부를 하고 싶지 않느냐고 물어왔습니다. 저는 근 5개월동안 기도하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신학교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3. 장래포부저는 병원에 있을 때부터 외국에서 온 의지할데 없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선교회의 분들을 보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신학공부를 마치고 앞으로 이란에 돌아가서 이란의 무슬림들에게 예수님을 전해서 예수님의 사랑이 이란에 전해지고 이란에서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되고 어렵고 슬픈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기위해 내 생명을 바칠것입니다. 그것은 이슬람교도가 기독교로 개종하는것도 위험하지만 예수를 전하는 일은 법적으로 금지되여 있기에 알려지면 감옥이나 생명에 위험이 있습니다. 제가 즐겨 읽었던 이슬람역사서적들, 또 제가 즐기는 과학실험들, 미술, 음악 등을 활용하여 이슬람나라에 예수님의 빛이 비춰지게 하기 위하여 저의 일생을 바칠것입니다.--성결신학교 입학 간증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