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네이션스
간증 목록

소누는 자신이 한국에 노동자로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교를 나오고

익명
소누는 자신이 한국에 노동자로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교를 나오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인도에서 아주 상류층은 아니더라고 중상층에 가정에서 반듯한 가정교육도 받아서 인품이 항상 다른 외국인들하고는 달랐다. 인도에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가장 안정된 직장이기에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전에도 한국에 태권도 챔피언십에 참여하기 위하여 온 적이 있었다.소누에게는 남동생이 있었는데 사업을 한다고 3500 만원의 은행 대출을 받아 시작을 하였다. 동생에게는 이미 결혼하여 어린 조카도 있었다. 대가족제도인 인도에서 동생이 사업에 실패하여 집이 날라가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소누는 애기와 아내가 있는 동생은 집에 있게 하고 자진하여 대학원을 중단하고 한국에 노동자로 왔다. 처음 공장생활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런 가운데서 목표는 오직 한가지였다. 빨리 이 돈을 갚고 노동자라는 신분을 벗고 한국을 떠나 인도로 돌아가야겠다는 각오아래 자신이 속해있는 공장에서 작업이 끝나면 밤에도 한 군데 내지 두 군데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 달에 하루나 쉴까 오직 빚을 갚기 위해 옆도 뒤도 보지 않고 일을 했다.공장에서는 춥고 힘든 상황이라 많은 외국인들은 다치고 병드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외국인들은 한국에 싼 소주에 현혹되어 술을 마시고 돈을 받고 관계를 해 주는 여자들을 찾기도 했다. 부모님이 멀리 떨어져 있기에 아무도 재제를 가하는 사람이 없기에 청춘의 나이에 탈선하기도 쉬운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다.그런 소누에게 복음을 전하고 새벽에 성경공부를 일주일에 한번씩 하자고 권했다. 내가 새벽 6 시에 공부를 몇 명 뽑아서 공장을 방문하여 복음의 씨앗을 심었는데 낮에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고 밤에는 끝나는 시간이 일정치 않아 새벽을 택한 것이다. 외국인 선교회에서는 일주일에 한번 주일에 예배를 드리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에 그렇게 시도를 했다. 소누는 교회에 처음에 나온 동기가 교회에 오면 어려운 일 있을 때 도와 준다고 하여 찾아왔지만 주일에도 아르바이트 일이 있으면 일이 우선이지 교회에 잘 나오지 않았다.그러나 성경공부를 매주 해나갔다. 복음의 씨앗은 그의 심령 밭에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세례를 받고 소누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갔다. 주일 예배를 빠진 적이 없을뿐더러 인도사람들을 위한 통역을 담당하였다. 모든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자마자 휴대폰을 사는데 소누는 떠날 때 까지 휴대폰을 사지 않은 유일한 외국인중에 한 명이었다. 세례 받자마자 십일조를 자진하여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밤에 다른공장에서 일을 하지 않아도 임금이 올라 믿을수 없는 기적으로 3 년 반 만에 동생 빚을 모두 갚게 되었다. 떠날 때는 연금 86만원을 받은데다가 보태서 100 만원의 감사헌금을 하고 가는것이다.뿐만 아니라 자신이 다니던 송학식품 회장님께 감사하다고 감사의 편지와 선물까지 하는 신사도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신학공부를 하여 주의 종이 되겠다고 소누는 인천공항을 떠났다. 그 후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현재 신학대학원에 입학 수속 중이다.떠나기전 이곳의 생활의 간증을 한국교회 성도님들 앞에서 하여 많은 감동을 주었다.저는 한국이나 인도에서 챔피온쉽 경기를 많이 했지만 한번도 떨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러 성도님 앞에서 간증을 하니까 떨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를 간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4 년 전에 저도 많은 외국인들이 돈을 벌러 한국에 온 것같이 한국에 왔습니다. 여기 계신 성도님들 중에 공장에서의 어려움, 예를 들면 멸시를 당한다든지 불공평한 대우, 체불임금, 질병, 사고, 더럽고 힘든 작업장 같은 일들을 정확하게 아시는 분들이 몇 분이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다가 이 모든 어려움들이 가족과 멀리 떨어져서 가족의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생기는 일들입니다. 같은 공장에 외국인 친구들이 이런 어려움을 교회에 가면 도와 준다고 하여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교회에 가볼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교회는 기독교인들이 예배를 드리는 장소로만 알았습니다.그래서 친구들과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였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단지 말로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닌 것을 발견했습니다. 일반 종교와 아주 다른 예배를 보게 되었는데 주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예수님을 닮아 가는 삶 속에서의 예배를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였습니다. 이 구원은 순수한 사랑과 조건이 없는 사랑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외국인들의 문제를 그분들이 아플 때도 자신을 돌보지 않고 도와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만약 제가 그렇게 도움을 받은 것 같이 해야 된다고 하면 계속 교회도 나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랑은 마치 엄마가 애기를 키우는 것과 같은 사랑과 같았습니다. 처음으로 감동 받은 부분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남을 사랑하는 것이 주께 예배 드리는 것과 같이 사랑을 한다는 것 이었습니다.사년 전에 가족과 멀리 떨어져 왔을 때 저는 참 슬펐습니다. 지금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여기서 받은 사랑을 그리워하면서 슬퍼집니다.저는 가족의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제 동생이 사업을 하다가 큰 손실을 보았고 3500 만원의 부채를 지게 되었고 동생은 이미 결혼을 하여 애기까지 있는 처지라서 저는 대학생이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근로자로 오게 되었습니다. 전에 한국에 태권도 경기를 하러 온 적은 있었지만 처음 이곳에서의 공장생활은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마태복음 17 장 20 절에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 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을 믿는 능력으로 산이 옮겨 지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삼 년 반 동안 3500 만원의 빚을 모두 갚았습니다. 의심에 여지없이 저는 열심히 일을 했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외국인들은 어떤 때는 일어 없거나 혹은 임금을 받지 못했거나 혹은 병이 나서 대부분은 그 액수의 반도 저축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모든 발걸음마다 예수님께서 저의 길을 분명하게 인도하신 것을 절대적으로 믿습니다.앞에 말씀 드린 바와 같이 한국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은 여러 가지 종류의 신체적 육체적 스트레스로 인하여 술을 마시거나 흡연 또는 다른 건전하지 못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극복하려고 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가족들과 사회로부터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런 일들을 하기가 더 자유롭습니다. 처음 저 자신도 한 인간의 본능으로 예외가 아닐 것이라는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를 그러한 죄로부터 지켜 주셨습니다. 저는 마음이 허전하거나 외롭다는 느낌을 가지지 않았고 오히려 성경공부를 통해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새로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처음에는 성경을 일반적인 책을 읽는 기분으로 왜 성경이 보석과 같고 꿀보다 달으며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 있다고 하나를 알기 위하여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사 년이 지난 지금 성경은 저의 삶에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었고 성경을 더 읽을수록 주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느낍니다.이년 전에 저는 물과 성령으로 예수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나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에는 친구들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가끔 인생은 정말 힘든 것이야 라고 말했지만 이러한 생각은 물질주의에서 나온 생각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저 자신이 달라지면서부터 가치관이 달라지고 우선권과 성공적인 삶의 정의가 달라졌습니다. 그런 이후로 모든 일은 순조롭게 풀렸고 긍정적으로 되었습니다.저는 돈을 벌러 한국에 왔지만 그 당시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예수님 안에서 신앙의 보화를 얻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