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만 집사님이 섬김에 관한 글“하늘에 속한 사람” 과 “예수를 업고 가는 아프리카 당나귀”를 번역하여 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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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고석만 집사님이 섬김에 관한 글“하늘에 속한 사람” 과 “예수를 업고 가는 아프리카 당나귀”를 번역하여 베스트 셀러가 되어 문서 선교를 톡톡히 한 고석만, 백경아 집사님 내외도 우리의 동역자이다. 함께 동역을 하다가 아예 모슬렘 전문 선교사가 되어 영국으로 떠난 아름다운 부부가 영원한 동역자가 되니 얼마나 우리는 행복한지 모른다. 영국으로 가기 전에 고석만 집사님이 섬김에 관한 글을 다음과 같이 쓰셨다.섬김마20:28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의 죄값을 치르기 위하여 목숨을 내주려고 온 것이다."‘섬김!’ 종교를 갖고 있지 않는 사람이라도 참 귀하게 여기는 단어이다. 더욱이 크리스천이라면 언제나 기분 좋게 말하고 듣는 말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것이 관념을 떠나 적용의 장에 들어서게 될라치면 그리 만만치 않게 바뀌고 만다.참 섬김의 모델을 보자면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다. 주님의 섬김의 수준은 자기 목숨을 대속 물로써 내어 주시기까지 섬기셨다. 그분의 사랑도 그랬고 희생 또한 그랬다. 진정한 섬김이 바로 이렇게 어마어마하고 비길 데 없는 것임을 생각할 때, 어찌 나 같은 것이 섬김이란 말을 쉽사리 입에 담을 수 있을 것인가? 혹 흉내라도 조금 낼 수 있으면 그나마 족하리라.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섬김이란 단어를 써야 할 때면 몹시 조심스러웠다.2002년 1월부터 홀리네이션스 선교회에서 외국인 형제자매들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복음과 은혜를 나누고 동역자들과 함께 호흡하며 교제하는 내내 이 섬김이란 단어가 주는 중압감과 두려움은 간단치 않았다.과연 내 자신이 먼 곳에서 이 나라에 온 외국인들을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대하며 그들의 아픔과 고뇌를 같이 느끼고 소중한 영혼들을 온전히 하나님께 인도할 신앙적 태세가 마련되어 있는가? 야고보서(3:1)에 기록된 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라는 것이 바로 나를 가리켜 한 말이 아닐까? 또한 선교회에서 동역하는 분들의 순수와 겸손, 사랑과 열정을 보며 내가 자칫 시험거리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일었다. 그런데 이런 내가 무엇이기에 구주께서 나를 섬김의 터로 보내셨는가?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나를 큰 은혜의 장으로 인도하고 계셨다. 대학생 시절 어느 보육원의 주일학교에서 일을 해본 이후 막연한 바람으로 갖고 있던 봉사의 기회를 다시 허락하셨을 뿐 아니라 그분을 더 깊이 깨달아가는 은총과 함께 하나님의 사람들과의 귀한 교제와 배움의 길을 주셨다.주님은 내가 여태까지 받은 것을 나 혼자만의 저수지에 가둬놓지 않고 흘려 보내는 복의 통로로 삼아주셨다. 그것은 외국인 지체들에게 복음의 비밀을 나누고 격려하며 도전하는 뜻 깊은 섬김의 시간이었다. 사람에게서는 위로와 희망을 얻을 수 없는 그들에게 지상을 초월한 하늘의 인도와 영원을 이야기하며 마음이 상통하는 가운데 힘이 솟았다. 그들의 영과 육을 위해 기도하며 주님의 눈물과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그들을 통하여 그들의 골육지친과 이웃과 민족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기를 함께 간절히 기도할 때 가슴이 뭉클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24:14).그러나 한편으로는 때때로 땅에 사로잡힌 그들의 영혼을 보며 공중 권세 잡은 자의 존재를 실감하였다. 미혹하는 영의 세력 - 그것이 이슬람이든 힌두교이든 기독교의 탈을 쓴 것이든 –이 얼마나 집요하게 사람들을 꾀어 왔고 또 지금도 어둠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지. 주여, 저 어둠의 세력을 끊어 주소서! 형제자매들로 진정 자유케 하는 진리를 확고히 붙잡게 하소서!순 전한 믿음으로 외국인 지체들을 섬기는 여러 일꾼들을 만난 것 또한 내겐 은혜요 기쁨이었다. 드러내려 하지 않고 묵묵히 섬김과 순종의 길을 가는 동역자들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존경스럽다. 말씀으로, 찬양으로, 도우미로, 음식으로, 의료봉사로 하나같이 소중한 일을 맡아 하건만 어느 한 사람도 칭찬에 연연하지 않고 도리어 스스로를 감추며 행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그대로였다.동역자들은 내가 보이는 것에 신경을 쓴 나머지 내면의 깊은 부분을 소홀히 할 때 그러한 나의 모습을 비춰보는 거울이 되어 주었다. 이것은 신앙 행로에서 ‘이만하면 되었다’ 라며 어쭙잖게 되기 쉬운 자신을 돌아보고 바로잡는 촉매제였다. 믿음의 위인들을 보면 섬김에는 끝이 없고 섬김의 종류에는 우열이 없다. 어느 단계에 이르렀든지 같은 길로 계속 나아가라는 성경의 권고가 새삼 강렬하게 떠오른다. 정말 미거하고 흠투성이인 나를 들어 쓰시고 잡아주시는 주님의 은총이 놀랍다. 나에게는 기적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한다.“눅17:10 이와 마찬가지로 너희가 단순히 내 말에 복종한 것을 가지고 너희 자신이 칭찬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너희는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하였기 때문이다."내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 참 섬김을 조금씩 더 알아가며 이 육신과 영혼이 더욱 그리스도와 그분의 지체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한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