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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동안 듣지 못했습니다."돌아가면 딸이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기쁨니다."- 김

익명
14년동안 듣지 못했습니다."돌아가면 딸이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기쁨니다."- 김명숙(71세,돈화시 돈화기독교회)저는 돈화시교회의 김명숙이라고 부릅니다.저는 원래 3365병기 공장에 출근하였는데 어느날 공장집짓기 일에 참가하였다가 머리를 크게 상하게 되었습니다.벽돌쌓고 나무를 올릴 때 바를 매고 당기다가 옆에 있던 전보대의 당김쇠줄을 다쳐놓았는데 전보대가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쳐 머리가 터지고 머리 가죽이 다 벗겨져 연변병원에가서 3일 동안이나 혼수상태에 있었습니다.그 후로 휴유증이 생겼는데 항상 정신이 흐리터분하고 목덜미가 돌로 짖눌러 놓는 것 같았습니다.귀도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말을 들을때에 낮은소리는 근본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젠 귀를 듣지 못한지도 14년이나 되었습니다.그리고 저에게는 기관지천식도 있었는데 겨울이면 기침 때문에 근본 밖으로 나 다닐 수 없었습니다.혹시 일이 있어서 나가더라도 꼭 마스크을 끼고 다녔습니다.거기에 또 고혈압까지 있었습니다.이런 여러 가지 병 때문에 어떤때에는 한달에도 몇번씩이나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믿고 많은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기독교를 믿은지 3년쯤 되는데 귀를 듣지 못하여 교회를 가서 보청기를 끼고 들어도 열마디에 몇마디를 알아듣지 못하는 정도였습니다.어떤 때에는 너무도 안타까와 가슴을 쥐여뜯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많으셔서 하나님의 말씀도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지식도 없어서 잘 깨우치지도 못하는 이 부족한 저에게도 남만 못지않게  은혜를 주셨습니다.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기관지병이 많이 고침받아서 이젠 마스크를 끼지 않고도 교회를 잘 다닐 수 있으며 고혈압병. 흐리멍텅하던 병도 많이 낫게 되었습니다.그래서 저는 딸에게도 전도를 하였는데 딸도 지금 교회를 잘 다니고 있습니다. 하나님 믿은 후 부터는 우리집은 범사에도 잘 되어 4만원짜리 집도 사게 되었습니다.이 모든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라 생각합니다.저는 하나님께서 저의 귀도 꼭 열어 주실것이라 믿으면서 날마다 아침 4시 혹은 5시, 오전 9시, 저녁 9시에 이렇게 하루에 4번씩 기도를 그리고 시간이 나는대로 찬송을 불렀습니다.금년 부터는 어쩐지 목덜미로부터 손까지 줄이 뻗치면서 뼈가 아파나는데 너무도 아파서 공장병원에 갔더니 호랑이 고약을 붙여주었습니다.그런데 고약을 붙인 손은 낫기는커녕 과민으로 하여 곪고 진물이 줄줄나오면서 검붉게 독이 생겼습니다.뼈의 아픔으로 하여 빨래도 잘 짜지 못하였습니다.제가 이렇게 육신의 병으로 하여 안타까와 견디지 못하고 있을 때 우리교회에 처녀때부터 귀를 듣지못한 한 자매님이 안도 기도원에서 고침을 받고 온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그래서 저도 14년동안이나 애를 태우던 귀먹이 병과 기타 여러 가지 병을 고쳐보려고 안도기도원으로 오게 되었습니다.안도기도원에 들어서니 목사님들과 사모님이 어찌나 사랑해 주시는지 저는 주안에서 사랑이 이렇게 클줄을 생각도 못했던 것입니다.여기에 왔다간 자매님에게 들을때보다 제가 직접 체험해보니 정말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더욱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리고 이렇게 사랑이 많으신 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크신 능력과 권능을 그대로 주셨으리라 심심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저는 목사님의 말씀대로 눈물의 회개 기도를 하고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았더니 병에서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저의 딸도 제가 귀를 듣고가면 춤을 추겠다고 하였는데 인제는 돌아가면 딸이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정말 기쁨니다.하나님 감사합니다.저는 돌아가서 전도를 많이하여 불쌍한 영혼들을 구원하고 병의 고통에서 헤매는 사람들에게 저처럼 병에서 고침 받아서 남은 인생을 기뻐하며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인간은 육신이기에 능력없고 연약하니 하나님 아버지만 믿으면 모든 일이 해결 받습니다.오직 믿을 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모든 성도들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감사합니다.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목사님들과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금식기도로 임파선결핵을 고침 받다간증 : 전경신성도 (여, 34세, 서울시 중랑구)10년 전 어느 날, 열이 40도가 넘게 올라가고 기침이 멈추어지지 않아 병원을 찾았더니 단순감기라고 했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을 먹었지만, 기침은 더욱 거칠어져만 갔고 이윽고 각혈까지 하기시작했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어머니와 나는 즉시 큰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았고, 폐결핵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놀라기는 했어도 약을 꾸준히 먹으면 치료가 가능하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안심을 하며, 일 년 넘게 약을 복용하였다. 그러나 병은 더욱 깊어져만 갔고 많은 양의 피를 토하다 보니 숨을 쉬는 것 자체가 곤욕스러웠다. 그럴 때 마다 죽음이 곧 엄습할 것만 같아 두려웠다.극한 고통 속에서 피를 토해내던 어느 날, 나는 “주님!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앞으로 열심히 봉사할게요.”라며 신음하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어머니를 따라 교회를 다니기는 했지만 믿음없이 교회만 다녔기에 봉사라는 단어자체가 생소했고, 그러한 고백을 한 내가 신기하기만 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 고백이 끝나자마자 기침과 각혈이 멈추어버린 것이다. 나는 이 일로 인해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깊이 깨닫게 되었고, 나의 병을 고쳐 주시리라는 믿음이 생기게 되었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오른쪽 배에 혹 같은 것이 잡혀졌다. 그래서 다음날 병원에 갔더니  폐결핵이 임파선결핵으로 전이되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즉시 입원을 하고 혹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지만, 몇 달 만에 또다시 재발하고 말았다.거듭되는 고통으로 지쳐 삶의 소망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런 나를 위해 어머니는 강남금식기도원으로 향하셨고, 며칠 뒤 나도 어머니를 따라 기도원으로 올라갔다. 기도원의 목사님께 상담을 받은 어머니는그동안 먹어왔던 폐결핵 약을 다 버리자고 하시며 하나님께서 내 병을 고쳐주실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사실 폐결핵환자에게 약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어서 금식에 들어가기 바로 전 날까지만 해도 약을 먹어야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깨달은 것이지만 그렇게 죽음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약을 끊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 이였다.어머니와 나는 7일 금식에 들어가게 되었고, 금식이 거의 끝나갈 즈음 기도원의 목사님께서 내 모습을 보시고 3일을 더 연장하라고 하셨다. 아무런 힘도 없어서 간신히 예배에만 참석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어머니와 함께 10일 금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무사히 금식을 마치고 보호식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폭포수 같이 쏟아져 내렸다. 예배시간에 드리는 찬양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고, 기도시간에는 회개가 터져 나왔다. 보잘것없는 나를 이토록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눈물과 고백이었다.그동안 손을 들거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신기하게만 지켜보았던 내가 두 팔을 들고 한 시간 이상을 기도 하게 되었다. 오히려 손을 내리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나 죄송스럽게 느껴졌다.그리고 나도 모르게 병을 고쳐달라는 기도에서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영혼구원을 위한 기도가 흘러 나왔다. 또한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는 중국어 방언을 허락해 주셨다. 연약한 믿음을 가진 나에게 하나님께서 표적을 보여주신 것이다.그리고 더욱 놀라운 일은 방언을 받은 그 이튿날, 오른쪽 배에 있었던 혹이 사라진 것이다. 나는 놀랍고 기쁜 마음으로 어머니에게 하나님께서 혹을 없애주셨다고 말하니 믿기지 않으신 눈치셨다.어머니는 병원에 가자고 하셨지만, 믿음 없는 행동이라 여겨 1년이 지난 후에야 어머니와 함께 병원을 찾게 되었다. 의사선생님은 혹이 깨끗이 사라졌다며 신기해 하셨고, 몸도 훨씬 건강해 졌다고 하셨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발걸음은 내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기쁨과 감동으로 너무나 가벼웠다. 병든 나를 치료하시고 주님의 사랑으로 안아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린다. 할렐루야!물질 없어도 지금이 더 행복합니다- 간증 : 황용활 집사 (순복음교회 양천대교구)5차례 수술로 못 고친 질병, 기도로 정복대를 이은 ‘새벽기도’…집안 행복 촉매제다섯 차례의 수술과 서른 여섯 번의 방사선 치료에도 고칠 수 없었던 후두암을 고쳐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1999년 11월 어느 날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내 목소리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나마 가족들은 항상 내 목소리를 들으니 변화된 것을 더디게 알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대번에 ‘목소리가 변한 것 같다’며 병원에 가볼 것을 권유했다. 그래도 통증이 없으니 병원에 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솔직히 건강에 자신이 있었고, 사업도 바빠 병원에 갈 시간이 없었다.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원래 목소리로 돌아오지 않자 차츰 걱정이 됐다. 일과 시간을 쪼개 가까운 이비인후과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는 ‘좀 더 큰 병원에 가 진찰해 볼 것’을 권했다. 감기 정도로 생각하고 병원에 간 내게 의사의 이 말은 두려움을 가져왔다. 대학병원을 찾아 정밀검진을 했는데, 의사는 예측하지 못한 진단을 내렸다. 후두암이라고 하며 ‘수술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하루 빨리 수술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의사의 말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바로 수술하지 못했다. 일을 핑계로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간 기능이 떨어져 마취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이었다.어려움과 마주하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교회였다. 생전에 어머니는 내가 교회에 나오도록 새벽마다 교회에서 기도하셨다. 여자형제 넷에 아들이라곤 나 하나뿐이니 어머니는 늘 하나있는 아들에 대해 애지중지하셨다. 나 또한 어머니의 말씀을 잘 따랐는데 유독 교회에 나오라는 말만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만큼은 달랐다. 어머니의 기도 때문이었을까? 잘 다니지도 않던 교회가 그리웠다.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다.그렇게 시간이 흘러 수술을 하고 연이어 스물 여섯 차례 방사선 치료를 받았으나 3개월 후 재발됐다. ‘병이 깊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고 2차 수술을 받았다. 누군가 ‘산을 넘어 산을 만난다’고 했던가. 7개월 후 암은 다시 재발했다. 낙심이 컸다. 의사는 ‘성대를 들어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렇지만 성대를 들어낸다는 건 말을 영원히 하지 못한다는 것 아닌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성대만은 놔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의사에게 사정해 성대를 놔두고 치료하는 방법을 물었지만, 다니고 있는 병원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병원을 옮겨야 했다. 새로 만난 주치의는 ‘성대를 둔 상태로 수술해보자’며 ‘끝까지 용기를 잃지 말라’고 나를 격려했다. 그렇게 3차, 4차, 5차 수술을 받았다.다섯 차례 수술을 받는 4년 여 동안 일을 못하고 막대한 치료비를 계속 지출하다 보니 벌어 놓은 재물도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식구들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사업을 하던 때 같았으면 생각도 못했을 일을 아내는 시작했다. 식당 일을 돕는가하면 바느질을 하며 옷을 수선해 주는 일을 했다. 그럼에도 아내는 어머니가 그랬듯 새벽이면 교회에 나와 나를 위해 눈물의 기도를 흘렸다. 불평할 조건이 차고 넘쳤음에도 감사를 잊지 않았다. 내가 아파도 옆에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다는 아내의 말이 있었지만, 믿음이 부족한 나는 다섯 번을 수술해도 완치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완치 보장이 없기에 삶을 포기하기로 했다.아내는 나의 이런 결심을 눈치채지 못한 채 ‘나를 위해 기도원에 가서 금식기도를 하고 오겠다’고 했다.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질 일이었다. 아내가 가여워 눈물이 났지만, 겨우 참고 ‘잘 다녀 오라’고 했다. 그렇게 아내를 보냈는데, 아내의 기도 때문이었을까? 마지막으로 교회에 가보자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아픈 몸을 이끌고 교회에 들어섰는데 뜻 모를 설움이 복받쳤다. 겨우 참고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듣는데 말씀마다 나를 향한 것이었다. 목사님이 ‘너, 지렁이 같은 야곱아’라고 하시는데 나를 향해 대놓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설교를 들으며 마음이 깨어지기 시작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와 기도원에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약해 ‘금식을 하면 위험하다’고 주위사람들이 만류했지만 기도원에 가 금식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다. 그러자 마음에 기쁨이 충만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아내와 함께 매일같이 새벽기도에 나가 기도했다. ‘병원에서 수술로 낫겠다’는 생각도 버렸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랐다. 그리고 후두암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기도를 드렸다.2003년부터는 남선교회 전도실에 나와 봉사도 시작했다. ‘살면 전도, 죽으면 천당’이라는 생각으로 전도했다. 그러자 하나님이 일하셨다. 약한 몸에 기력이 붙기 시작했다. 몸도 더 이상 아프지 않아 2004년 11월 수술을 받았던 병원을 찾아갔다. 의사들은 ‘벌써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 돌아왔다’며 놀랐다. 주치의는 ‘암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며 완치진단을 내렸다. 다섯 차례 수술과 서른 여섯 번의 방사선 치료, 5년간의 투병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할렐루야.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경제적으로 예전보다 힘들게 살고 있지만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 소망하기는 병상에 있는 모든 환우들이 내가 만난 소망의 예수님을 만나 영혼이 잘되고 강건하기를 기도한다.
14년동안 듣지 못했습니다."돌아가면 딸이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기쁨니다."- 김 | 홀리네이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