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발자취”
세상 모든 아기는 전쟁터나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아무리 가난해도 말구유에서 태어나게 하지는 않습니다. 옆에 말이 있으면서 배설도 해 놓았을 터이니 냄새가 오직 했을까요? 하늘 보좌를 버리고 말구유에 누우셨으니 얼마나 불편했을까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그분이 어떻게 그런 장소를 택하여서 이 세상에 오셨을까 깊이 묵상합니다..
가장 낮고 천한 곳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주님은 탄생부터 겸손 그 자체였다는 묵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목수의 아들의 신분으로 이 세상에서 사셨기에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은 항상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가구 공장을 모두 ‘나무공장’ 이라고 부릅니다. 그들 표현대로 하면 예수님께서는 “나무공장”에서 일하신 것입니다.
머리 둘 데가 없다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생각해보면 노숙자처럼 지내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이들에게 사랑을 전해 주신 주님이십니다. 이미 하나님이 만든 축복의 에덴동산을 떠난 우리들 모두가 상처 받고 상처 주고 절망스러워 하기에 그런 모습으로 오셔야 가까이 다가 오실 수가 있지 않았을까요?
너무 잘생기고 많이 배우고 높은 사람에게 우리 보통 사람들은 선뜻 다가가기가 어렵습니다. 현실은 대다수가 보통사람 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집에 걸어놓은 잘 생긴 서양사람의 모습인 예수님의 모습은 진짜 모습이 아닙니다. 성경은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53:2]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젊어 보이고 싶어 안달인데 예수님의 모습은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셨습니다.
[요8:57]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삼십대의 예수님이 유대인들의 눈에는 오십이 다 되어가는 외모로 본 것이 틀림이 없는 구절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신 모습을 그려보면 우리는 서울역 노숙자 분들도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께 한 것이라는 말씀을 묵상하며 서울역에 노숙자분들에게 김밥 배달을 금요일에 갑니다. 김밥 라면 두유를 받기 위해 우리가 도착할 시간 전에 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예수님 말씀을 생각합니다.
마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우리는 서울역 노숙자분들, 교도소, 외국인 노동자 거의 매일 교제하고 살기에 “낮은 데로 임하소서” 고백하며 주님 가신 길 따라갑니다. 너무나 부족하지만 계속 주님 따라 가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발자취
마마킴||조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