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기의 힘(이지선 저서)”
처음 글을 쓴 건 참 아이러니하게도 손가락을 잃고 나서였다. 사고 후 1 년간은 언제가 가장 어두운 시기였는지 우열을 가릴 수 없이 캄캄하고 이모저모로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래도 그 중 절망에 절망을 더한 때는 꼽자면 손가락을 정리하는 수술을 받을 즈음이었는데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중환자실에서 나온 후 진료 과가 옮겨졌다. 새로 나를 맡은 의사는 환자의 가족에게 못되게 말하기로 악명 높은 사람이었다. 한 달이 넘는 동안 그는 나를 보러 단 한 번 꼽을 뿐이었다. 그것도 내 얼굴의 붕대를 볼 펜으로 들추면서 상태를 확인했다. 그 의사에게 수술을 받고 싶지 않아서 병원을 옮기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치료실에서 소독을 받던 날 그는 나를 앞에 두고 치료사들에게 “얘 손가락도 이거 다 잘라야 하는데 얘 부모는 병원 옮긴다는 소리나 한다” 라고 하면서 빈정거렸다. 그날 밤 나는 병원을 옮기고 반드시 손가락을 잘라서 못되게 말한 그 의사를 내 손가락으로 꼬집어주리라 마음 먹었다. 하지만 손가락 접합 수술의 대가라는 의사를 찾아가봐도 이미 사고 당시 화상으로 죽은 세포를 살릴 수는 없었다. 결국 병원을 옮기고 두 달쯤 지나 양손 엄지를 제외한 여덟 손가락의 한 마디씩을 정리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개월간 의료 파업으로 감염을 막기 위해 소독을 받고 잠시 고통을 둔감하게 해줄 진통제를 맞는 것 외에는 아무런 치료도 수술도 받을 수 없던 시기를 지났기에 그땐 어떤 수술이든 그저 수술을 받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고통을 견디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광야를 지나는 듯한 그 시간 동안 나는 전심으로 때어내야 하는 부위가 팔 전체가 아니라 손가락 한 마디여서 더 많이 잃지 않아서 감사할 수 있었다.
내가 피아노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술 후 원래 손가락 끝이 아니었던 부분이 말단이 되자 손가락 감각이 이상해서 무지막지한 통증이 유발됐다. 손 수술을 할 때 얼굴에 인조 피부를 이식하는 수술도 함께 했는데 설상가장으로 그마저도 다 녹아서 없어졌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절망에 정말을 더 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동안 전에는 알지 못했던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 동안 당연히 내 것이라 여겼던 그 어느 것도 내 것이 아니며, 세상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진실이었다. 그리고 그 진실은 내게 새로운 감사를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그때부터 전심으로 내게 남은 것들, 지금 가용한 존재가 더 강력하게 고마워졌다.
그 강렬한 고마움 때문에 내게 남겨진 엄지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글쓰기를 시작했다. 여전히 얼굴에 피부도 없이 병원에서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지만~~~~”라는 첫 글을 썼다. 그 뒤로 종종 활동 중이던 교회 성가대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내 상황을 설명하고 기도를 부탁하는 글을 올렸다. 퇴원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뒤척이던 어느 밤에 몇 가지만 그러면 개인 홈페이지를 개설할 수 있는 서비스를 이용해 ‘지선이의 주 바라기’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글을 쓰고 나면, 나를 괴롭혔던 일들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지난주보다 나아진 것들을 기록하면서 지금보다 나아질 것들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 희망의 힘은 지금 이순간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과 조금 거리를 두게 했다. 심각한 상황에서 조금 벗어나 오늘의 내 모습을 보면 ‘내일의 나’ 를 조금 덜 아프게 그릴 수 있었다. 나는 글을 쓰며 고통과 걱정에서 조금씩 멀어질 수 있었고 그 덕에 꽤 괜찮은 해피 엔딩을 바라보게 됐다.
지금 해결되지 않는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작가가 되지 않아도 좋아요. 지금 마음 속에 일렁이는 파도를 나를 덮쳐버릴 것 같은 그 고통을 글로 적어 보세요. 그 파도가 얼마나 높은지, 그래서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지 쳐다보면 어느새 폭풍은 지나고 잔잔해진 파도를 올라타 넘실대는 저 수평선 너머를 바라볼 용기가 생길 거예요.”
“글 쓰기의 힘(이지선 저서)”
마마킴||조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