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닮은 그리스도인~~(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저자가 소개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비결~15)”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고린도전서 13:5에서 사도 바울은 단순히 “악한 생각”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무언가를 꾸미는 것 혹은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음모를 꾸미거나 악한 일을 계획하는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 더욱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어떤 흠을 찾아내는 것을 시사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웨이머스는 “사랑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곰곰이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해석했다. 또 모핑은 “사랑은 결코 성내지 않는다”라고 번역했다. 이러한 여러 번역 중에서 영어 개역 성경의 번역이 가장 정확한 듯이 보인다. “사랑은 악을 생각지 않는다.”
사랑은 분노를 쌓지 않고, 결코 원한을 품지 않으며 앙갚음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속으로 악한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것을 잊어버리고 상대방을 계속 사랑한다. 스펄젼은 “사랑은 다른 사람의 결점을 볼 때 자기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마음에 동정심과 하나님의 사랑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닮은 그리스도인이 명심해야 할 또 하나의 원리가 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한편 ‘생각지 아니하며’로 번역된 헬라어가 로마서 4:8에서도 발견된다.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사람은 복이 있도다.” 우리 주님은 우리도 이와 동일한 자세를 지닐 것을 원하신다.
이는 스데반이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하고 기도 할 때 보여주었단 바로 그 정신이 아닌가. 다소 사람 사울의 개종이 시작된 것도 바로 그 때이다.
에이미 커마이클은 인도의 한 익명 높은 산적 두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변화 받은 후에 아주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는데 그것은 그의 삶이 사랑으로 가득 했기 때문이었다.
그를 체포할 수 있도록 유인하는 첩자 역할을 했고 나중에는 고문까지 가했던 강도는 그 두목이 개종한 후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두목은 말했다. “나는 용서받았다. 그러나 나 역시 용서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두목을 괴롭힌 강도는 그러한 정신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나중에 가서 그도 기도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우리가 입은 악행을 무시해 버리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다른 사람들에 대한 악한 생각을 품을 수 있는 위험은 충분이 있다. 우리가 이러한 위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시키면 그 정도가 훨씬 악한 것처럼 나타날 수 있다. 우리 스스로가 사랑의 기준에 얼마나 미달인지 보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을 조사해야 한다.
새무얼 채드윅은 “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좋게 생각할 수도 있는 때에 나쁘게 생각하는 것을 혐오한다” 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너무도 쉽게 악한 추측을 하며 남을 의심한다. 따라서 우리는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는 말씀을 명심해야겠다. 악을 행치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악을 생각조차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랠프 에머슨의 말대로 “모든 행동은 생각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 나쁘게 해석하기 보다는 항상 좋게 해석하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무정함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섣불리 비난하지 않으며 기꺼이 인정하는 자세로 대함으로써 말씨가 불친절하다든지 무심하다든지 하는 인상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그리스도 닮은 그리스도인~~(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저자가 소개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비결~15)”
마마킴||조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