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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년부터 교도소 방문을 하면서 ~~엄마” 라는 이름 – “

마마킴||조회 41
“2011 년부터 교도소 방문을 하면서 ~~엄마” 라는 이름 – “

이 세상 정상적인 사람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언어 “엄마”
보이지 않는 호흡을 할 때 반드시 필요한 산소 같은 존재 “엄마”.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보여주는 대리인 “엄마”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생명을 지켜주는 “엄마”
세상 살아가면서 늘 생각나는 “엄마”
별로 감사하지 않고 사람들은 당연하게 대하는 “엄마”. 사람들이 감사하지 않는 이유가 엄마가 처음부터 당연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주위에 당연히 지켜 주어야 할 엄마가 없어서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된 사람이 교도소를 들어간 디모데는 처음 자신을 소개하는 편지를 제게 보냈을 때 엄마의 모습이 전혀 기억이 없는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참 이해할 수 없는 사연이 디모데에게는 있습니다. 보통 요즈음은 그런 일이 거의 없는데 옛날에는 호적에 등록을 늦게 해서 실지 나이보다 어리게 등록되어 있는 사람들이 가끔 있었습니다.  디모데의 경우는 처음 들은 이야기 인데 자신보다 두 살이 위인 형이 먼저 태어났는데 그 형은 일찍 세상을 떠나 버렸고 엄마는 사망신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디모데가 태어났는데 출생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이름도 나이도 형의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자신의 나이보다 두 살이 더 많은 상태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디모데를 옆에서 지켜 보고 있으면 정말 뛰어난 천재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낮에는 노역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교도소에서 광주 교도소에서는 침대 만드는 작업을 하였고 밤에 시간을 이용하여 공부하여서 학사 검정고시를 우리 보통 사람들이 대학교 4 학년을 다녀서 따는데 이년 만에 합격을 하여 신문에 난 천재입니다. 그런 천재성이 처음 초등학교 다닐 때도 일등을 하였다고 합니다. 일등을 해도 계모는 늘 때렸고 디모데는 매를 맞고 울어서 어릴 때 별명이 “울보” 였다고 합니다.
 
“엄마라는 존재”는 한 사람이 이세상에 백지 같은 상태에서 어떤 그림을 그려 주는지 가장 중요한 초기 작업을 하는 하나님의 대리인이 되어 한 생명을 성장하게 해 주는 것을 느낍니다.  교도소에서 옆에 다른 수감자가 가족이 있는 사람은 필요한 돈도 넣어주고 면회도 오면 면회 나가는 사람들을 다들 부러워한다고 합니다.  가족이 없는 디모데는 아무도 찾아와 주지 않았고 우표 한장 살 돈도 없었습니다.  그에게 가장 가지고 싶은 강렬한 소원이 “엄마” 였습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인생.  다른 사람들은 가족들에게 혹은 친구들에게 편지를 받을 때 저녁에 옆에서 편지를 읽고 있는 동료가 부럽고 그 엄마가 없는 무기수의 슬픔으로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런 슬픈 인생을 그렇게 끝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세 번이나 자살 시도는 죽음으로 가지 않았고 징벌 방으로 끌려가서 아주 작은 조그만 방에서 손발이 묶인 상태로 다시 죽으려고 머리를 벽에 박고 하다가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진 이야기를 편지에 썼습니다.
 
일생 동안 다른 사람들이 당연이 부르는 “엄마”라는 이름을 부르며 “엄마 나 배고파” “엄마 나 아파” 라고 호소 하고 싶었고 “얘야, 오늘은 잘 지냈어? 오늘 춥지 않았어?” 라는 다른 사람들이 듣는 평범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의 간절한 소망을 하나님은 들어주셨습니다.
 
디모데의 편지를 읽으면 많은 감동을 받는 분들이 수 많은 분들이 “처음 어떻게 만났어요?” 라는 질문을 해서 아는 분들은 아는데 궁금해 하는 질문을 답변을 다시 드립니다.  2011 년 가을 광주 교도소에는 수감자들을 위하여 체육대회를 했습니다.  아무도 모자가 없는 태양빛 밑에서 하는 체육대회에 모든 수감자들은 교도소에 들어오는 각 신문사에서 보낸 신문들로 너도 나도 꼬깔 모자를 만들어서 쓰고 앉아서 체육대회를 했습니다.  하루 체육대회를 마치고 쓰레기 통에는 꼬깔 모자 신문지들로 여기 저기 가득 찼습니다.  한 수감자가 버린 신문이 디모데의 눈에 띠었는데 그 신문에 큰 제목이 “아름다운 세상”이어서 버려진 신문을 집어 들었습니다.  거기에는 홀리 네이션스 선교회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고 책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 책은 저가 쓴 “나는 날마다 기적을 경험한다” 였습니다.  디모데는 그 신문을 보고 그 책을 한 권 보내 줄 수가 있느냐고 편지를 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의 간절한 소망을 그렇게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편지 답장이 오가다가 하루는 용기를 낸 디모데는 너무나 가족이 그리운 이야기를 진솔하게 쓰고 “저를 아들로 삼아 주시겠습니까?” 라고 질문을 하고 저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이어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권사님이 그렇게 해 주실 것을 믿고 지금부터 어머님 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저는 그 편지를 읽으면서 답을 썼습니다. “어머님이라는 표현은 며느리가 시어머니 부를 때 쓰는 표현이니 나는 시어머니가 아니니까 ‘님’자를 빼고 부르세요” 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디모데는 일생 동안 불러보고 싶었던 “사랑하는 울 엄마”를 편지 한 통을 쓰면 열 번도 더 부르곤 합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두 번씩 받는 내 편지를 받으면 종일 노역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광주교도소는 그때부터 난로를 피우는 것 같았는데 “몸은 많이 추운데 엄마의 편지는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 주어서 전혀 춥지 않습니다” 라고 고백하곤 했습니다. “사랑 받는 새 생명”은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가장 중요한 자존감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녹고 일생 처음 받는 엄마의 사랑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칭찬 받고 싶고 엄마에게 칭찬 받고 싶어서 자신의 속에서 잠재해 있던 모든 노력과 천재성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불가능한 이년 만에 학사를 취득하게 되었고 순천교도소에서 전기 훈련생 시험을 금년 일년 배우고 곧 발표가 날 예정인데 시험결과가 좋을 것으로 믿습니다.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에 감격한 그는 동료들을 위로해주고 섬기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온갖 허드래 일을 자원해서 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 많은 교도관들이 모범수가 된 디모데를 지켜 볼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수감자들도 등급이 있는데 가장 나쁜 등급에서 2 등급으로 단기간에 올라갈 수가 있었고 그 등급이 올라가서 한 달에 몇 번 공중전화를 거는 혜택이 생겼습니다. 처음 공중전화를 걸고 나와 통화를 했을 때 하늘 색갈이 달라 보인다고 행복함을 고백했습니다.
 
그렇게 2011 년부터 시작된 교도소 방문이 지금까지 최소 한달에 3 번은 가고 일면이면 36 번 그리고 15 년 동안 그렇게 했으니까 여러 교도소를 400 번이 넘게 엄청나게 많은 방문을 한 것입니다 오늘도 충주교도소에 누가를 보러 갔다 오면서 하나님이 이렇게 귀한 생명들을 만나게 해주셔서 모두 7 명을 연결시켜 주신 것이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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