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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소망은 하나님께(사랑한다면 예수님처럼~~필 라이콘저서)

마마킴||조회 103
“모든 소망은 하나님께(사랑한다면 예수님처럼~~필 라이콘저서)

이 소망의 근거는 무엇인가? 어떻게 예수님께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이토록 많이 구하실 수 있었을까? 고린도 전서 13 장을 안다면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바라게 하는 사랑 때문이었다. 예수님께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소망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요한복음 17 장은 사랑으로 가득하기에 소망도 가득하다. 예수님의 기도를 들으면 그분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다. 때로 우리는 우리가 과연 끝까지 해낼 수 있을지 의심한다. 우리가 낙오 될까 봐, 사탄이 우리를 하나님의 손에서 낚아채 갈까 봐 두려워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크신 사랑은 우리가 중도에 하차하거나 이 길에서 돌아서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안위를 위해 사랑으로 간구하셨다.

우리는 성화에 관해서도 의심한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가 어떤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졌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하지만 예수님의 크신 사랑은 우리가 죄의 노예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해달라고 간구하셨다.

우리에게는 천국과 부활에 관한 의심도 있다. 정말 하나님은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셔서 영원한 영광으로 인도하실까? 그렇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너무 크셔서 우리가 그냥 죽어 썩어버리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과 영원히 함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하셨다. 예수님의 이 소망으로 가득한 간구들은 모두 사랑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간구들은 또 다른 소망 가득한 사랑으로 넘쳐난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사랑이다. 앞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요15:9). 이 사랑을 아시는 예수님은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실 수 있었다. 이것은 요한복음 17장 24절에서 더 분명히 드러난다.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여기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친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부터 한결같이 당신의 아들을 사랑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랑이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으셨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놓으실 때, 아버지가 그를 영광 중에 다시 일으키신다는 것도 알고 게셨다.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소망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사랑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향한 사랑으로 아들의 제자들도 사랑하신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다.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요17:23)” 아버지와 아들 모두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끌기 원하신다.

아버지께 간구하는 예수님의 기도를 듣는 것은 마치 작은 아이가 싱크대 앞에서 입 맞추는 부모를 보며 사랑으로 가족이 하나 되는 것을 느끼는 것과 같다. 아이는 놀라움과 기쁨 속에서 부모가 나누는 사랑의 깊이를 느끼는 동시에 그 사랑에 이끌려 동참하고 싶어한다. 부모가 나누는 감정을 모두 느낄 수는 없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 사랑에 동참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와 아들과 영원히 함께 한다. 우리는 아버지의 사랑 안에 귀속된 자들이다. 때문에 예수님은 담대하게 소망에 찬 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의 사랑의 성품에 근거한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고 계셨기 때문에 아버지가 그 기도를 듣고 응답하실 것도 확신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바라는 사랑이다.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 안에서 요한복음 17 장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은 우리 마음에도 동일한 바람을 넣어주신다. 예수님처럼 사랑한다면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향해 모든 것을 바랄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이 소망을 발견하신 바로 그곳에서 우리도 소망을 발견한다. 그것은 아버지의 사랑이다.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 그 사랑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