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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의 능력과 반짝이는 구두의 중요성을 이해하라(종의 마음~:~위대 함에 이르는 하나님의 비밀~~토미 테니, 데이빗 케이프저서)”

마마킴||조회 151
“섬김의 능력과 반짝이는 구두의 중요성을 이해하라(종의 마음~:~위대 함에 이르는 하나님의 비밀~~토미 테니, 데이빗 케이프저서)”

예수님은 식사도중 사람들의 발치에 앉아 가장 중요한 사역을 행하신 적이 있다. 주님께서는 예루살렘 상업지구내 고층 빌딩에 고급스러운 사무실을 갖고 계시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책상도 개인비서도 자신의 집도 없으셨다. 주님께서는 주로 식사 자리에서 대부분의 가족 사업을 진행하셨던 분이다. 한번은 열두 제자가 식사를 하러 들어왔는데 샌들을 밖에 벗어두었는데도 여전히 심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길가의 먼지뿐 아니라 나귀와 낙타의 배설물이 그들의 발에 뒤엉켜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에게는 두 가지 문제점이 더 눈에 뛰었다. 첫째는 발을 씻기는 종의 일을 그들이 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날 밤 제자들 중 누구도 이타심을 갖고 새로운 모험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예수님은 부정함에 관한 두 가지 문제점, 즉 자만으로 얼룩진 마음과 더러워진 발이라는 이중의 문제점에 직면 하셨다. 그날 밤이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밤이었다.

누군가는 그 자리에 결여된 것을 회복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주님의 관점으로 불 때 해답은 간단한 것이었다. 주님은 섬김의 능력을 통해 두 가지 문제점을 한꺼번에 해결하실 수 있었다.

요13: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그렇게 낮아질 수 있는가? 베드로는 그 무리들 중에서 예수님의 신성을 먼저 알아본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 제자들의 발에 붙은 마귀의 배설물을 닦아내실 정도로 어떻게 그렇게 낮아지실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베드로가 율법의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합리적으로만 생각해 봐도 이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이건 문가 잘못된 거야.” 종들이 필요할 때 그 종들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 다른 제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이런 일이 진행되는 동안 방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베드로는 아니었다. 가장 말 많은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설득해서 다시 그분의 자리로 돌아가게 할 참이었다. 그전에도 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으려는 생각’ 에서 돌이키려다가 혼난 적이 있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정말 자신의 발을 씻기시려는 것이냐고 질문했다. 그러면 주님도 눈치를 채시겠지 생각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중에는 이해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이번에는 성격대로 직설적으로 말했다.

요13: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발을 씻는 것에 관해 예수님은 매우 심각하셨지만 사실 나 자신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베드로와 같은 입장이었음을 부인 할 수 없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섬김에 관한 잊을 수 없는 교훈을 가르쳐 주신 일이 있다.  몇 넌 전 내가 어느 교회를 담임하고 있을 때 회중 가운데 한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결정을 내려야 했던 적이 있다. 그는 정직한 사람이었고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었다. 필요해서 조정을 하기는 했지만 이 사람과 나의 관계에 긴장감과 어려움이 생겼다. 나는 우리 사이에 화평을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해 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나는 이 문제를 주님께 갖고 나았다.

주님은 내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씀을 하셨다. 주님은 “종이 되어라.”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종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나의 어떠한 시도도 이 사람의 마음을 돌이켜 놓지 못했다. 그때 주님께서는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오셔서 내게 신발을 닦는 것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주셨다.

여행은 내 사역에서 중요한 한 부분이기 때문에 나는 공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한다. 종종 큰 공항에서는 구두 딱 는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구두를 맡기기도 한다. 한번은 그들에게 얼마나 버는지 물어봤다. 당연히 그는 그저 웃기만 했다. 하지만 나는 혼자 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겨 보았다.

그가 한 시간에 여섯 명의 고객을 일인당 5달러에 모신다면 그는 한 시간에 30달러를 버는 것이었다. 그가 일주일에 5 일 동안 일하고 매년 두 주 휴가를 간다 해도 그가 신발 닦이로 벌어들이는 총수입은 지출이나 세금 계산 이전에 매년 6만 달러에 이른다.

내가 교회에서 청소년들에게 이런 사실을 언급한 적이 있다. 여름에 중요한 사역이 있을 대 기금 마련을 위해서 신발 닦이를 하면 좋지 않겠는가? 그러자 한 청소년이 즉시 반응했다. “저는 신발 같은 것은 안 닦아요.” 사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이런 정서를 갖고 있다. 그때 주님께서 나를 쿡쿡 찌르시면서 말씀하셨다.

“토미, 그러는 너는 어떠냐?”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내가 예전에 감정을 상하게 했던 사람이 기억나게 하셨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의 구두를 닦아라.” 상당한 실천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 다음 주일에 나는 집에서 구두닦이 통을 들고 교회로 갔다. 설교하는 도중 나는 모든 회중이 보는 가운데 그 어른을 앞으로 불러내었다. 그리고 내가 설교를 마치기까지 거기 앞에 앉아 있도록 부탁했다. 그날 설교는 세족 식에 관한 것이었다. 요한복음 18장 1 절을 설교하면서 발 닦는 것을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구두 닦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설교하면서 그의 구두를 닦기 시작했다. 나는 코트를 벗고 넥타이를 셔츠 사이로 걸어 넣고 설교하는 내내 그의 구두를 닦았다. 모든 회중은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그 사람과 나만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의 구두를 닦으면서 울기 시작했다. 그도 울기 시작했다. 종의 마음이 드러나자 성령께서 역사하기 시작하셨다. 적대감의 영이 사라졌다. 사람들이 서로의 신발을 닦아주려고 줄을 서기 시작했다. 손수건을 꺼내서 서로의 신발을 닦아 주는 것이었다. 뜨거운 눈물이 더러운 신발들 위로 빗물처럼 뚝뚝 떨어져 내렸다. ‘하나님의 영’이 교회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큰 부흥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