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환자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입니다(쪽방촌의 의사 선우경식)”
“우리 내일을 걱정하진 맙시다. 지금까지 어느 한 순간도 돈을 미리 준비해 놓고 일을 한 것은 아니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다 도와주실 겁니다.”
1997년 5 월 1 일, 선우경식 원장은 신림동에서 요셉의원 간판의 이삿짐을 싣고 막 도착한 직원과 봉사자들을 둘러보며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요셉의원이 구입한 녹십자 혈액원 건물은 영등포역 부근 쪽 방촌에 사는 가난한 이들과 노숙자들 삶의 긍지에 몰린 사람들이 피를 팔면 그 혈액을 보존 관리, 가공하여 의료기관에게 공급하던 곳이었다. 이렇게 사용되던 건물을 병원으로 쓰려면 대대적인 내부 공사를 거쳐야 했다. 그런데 건물을 구입하느라 있는 돈 없는 돈 모두를 털어 써버렸으니 공사자금이 있을 리 없었다. 돌이켜보면 여기까지 온 것만도 기적인데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도 선우경식과 직원, 봉사자들은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되는 자체 건물이 마련되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처음 신림동 문을 열 때처럼 말 없는 가운데서도 모두들 팔을 걷어붙인다,
이때부터 전문가가 할 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직원과 봉사자들의 몫이었다. 그리고 얘기치 않은 도움도 이어졌다. 환자 중에 건강을 되찾은 사람들이 손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7 년 전 알코올 의존 중 치료를 받았던 김 씨는 힘이 장사여서 무거운 짐을 도맡아 날랐고, 당뇨 환자였던 목수 출신 이 씨는 대피를 들고 나무를 깎았다. 요셉의원 현장 체험을 나와 있던 양현우 바오르 강주석 베드로 하정용 요셉 신학 생 우리 모두 사제사를 받을 그리고 에수님 작은 형제회 조회주 수사도 허드렛일을 마다 하지 않으며 일손을 보탰다.
녹번동의 영락교회 신도들은 공사 기간 내내 오선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인력봉사를 했다. 영락교회 신자들이 요셉의원을 도와준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영락교회 박상모 목사는 노숙자 등 어려운 사람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함께 살고 있었는데 이들 중에 질병이 있는 사람을 요셉의원에 보내 치료받도록 주선해주었다. 이를 계기로 선우경식 원장과 막상모 목사가 교분을 나눈 지 오래됐고 마침 요셉의원 공사가 시작되자 돕겠다는 마음으로 영락교회 교인들이 인력 자원에 선뜻 나서게 된 것이다. 방상모 목사도 자신이 돌보고 있던 10 여명의 신도들에게 요셉의원을 돕자는 제안을 해서 5 개월 동안 땀을 흘리며 공사 뒷일을 도왔다. 이 정도면 천군만마였다. 일일이 고마움을 표시할 새도 없이 할 일은 태산이었다. 선우경식은 그들의 이름을 마음에 하나씩 새겨 두었다.
공사비를 절약하기 위해 신림동 옛 병원에서 쓰던 문짝이나 집기 등 쓸 만한 것은 모조리 떼어다가 다시 사용했다. 아껴 쓰고 나서 나눠 끄고 바꿔 쓰고 다시 스는 운동이 따로 없었다. 이보다 더 알뜰한 환경운동이 있을 까 싶을 만큼 규격이 맞이 않으면 자르고 붙이는 등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의 몇 배 이상 노력을 기울이며 새 병원 꾸미기에 정성을 쏟았다. 선우 원장의 부친 선우영원 은 수시로 찾아와 “의사로 공부시켜 놨더니 저렇게 고생하게 될 줄은 놀랐다”라며 마음 아파하면서도 잔일을 도왔고, 직원과 일꾼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격려해 주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서도 재료비가 모자라면 어디선가 독지자가 나타나 창틀 값을 대고 커튼을 달아 주었다.
그리고 공사를 시작한지 두어 달을 맞은 4 월 30일 잔금 2 억 8500만원은 가톨릭 단체인 한마음 한 몸 운동분부와 김난호 복지 제단의 후원, 최창무 주교가 교구의 각 성당과 관련 단체 들에 지원을 요청한 덕분에 잘 마무리하고 등기이전까지 마칠 수 있었다.
공사가 어느 정도 틀을 갖추자 선우경식은 찾아오는 환자들의 진료를 멈출 수 없다며 건물 한쪽에 임시 진료실을 설치하며 환자를 맞이했다. 운은숙, 이래지나, 김경자들 여직원들과 메리놀수녀회 롤리스카 수녀는 매일 2교대로 식사를 준비해 사과 궤짝 두 개를 이어 붙인 임시 식탁에 차려냈다. 소음과 먼지 속에서 공사를 진행하면서 한쪽에서는 진료하고 한쪽에서는 음식을 만들어 밥을 먹은 것이다. 직원들과 봉사자들은 그렇게 새 병원이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서로를 격려했다. 공사 기간 내내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던 최동식 봉사자는 “평생 흘린 땀보다 더 많이 흘린 것 같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5 개월의 고생 끝에 건물 내부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와 이웃을 섬기는 선한 마음들이 모여 이루어진 결코 작지 않은 기적이었다. 그런 마음을 담아 선우 경식은 병원 3 층에 직원들과 원하는 환자들이 모여 미사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아담한 경당을 만들었다. 1 층에는 가난한 환자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상담할 수 있는 사회사업과 사무실도 갖췄다. 이 모든 것에 1987년 8 월 29일 신림사거리 2 층에서 문을 연후 10 년만의 일이었다.
가난한 환자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입니다(쪽방촌의 의사 선우경식)”
마마킴||조회 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