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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님들(2)”

마마킴||조회 268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님들(2)”

복음의 빛이 비치다.
“저기 가면 확실히 병이 낫는다며?”
“어디, 어디?”
“왜 서양 사람들 굿하는 데 있잖아, 거기 가 보라고 다 죽어가던 김씨네 아들도 살았다고.”
“자네도 그 소문 들었나? 이 참에 나도 한번 서양 굿이나 해 볼까?”

7 명의 선교사들을 통해 병으로 죽어가던 사람들이 살아나자 전주 지역에도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예배’라는 용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예배를 ‘서양 굿’이라 불렀습니다. 양반들은 체면 때문에 직접 찾아가는 대신 선교사들을 집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송지동에 있는 한 양반이 밤늦게 선교사를 초대했습니다. 전주 예수병원의 2 대 원장으로 있던 포사이드 의료 선교사는 그 양반 네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밤늦게까지 양반을 치료하고는 그곳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새벽 4 시에 갑자기 남자 괴한들이 들이닥쳐 “군인 내놓으라”고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는 포사이드 선교사님의 머리를 둔기로 내리쳤습니다. 선교사들의 복장을 일본 제복으로 착각 했던 것입니다. 포사이드 선교사는 과다 출혈로 쓰러져 세브란스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다시 전주로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이 사고로 심각한 후유증을 앓게 돼 결국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간 포사이드 선교사는 미국 교우들에게 기회가 될 때마다 조선 땅에 당장 천 명의 선교사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천 명의 선교사가 한국 땅에 갈 수 있도록 백만 달러의 선교 헌금을 요청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선교사들이 조선에 가도록 독려했습니다.

“보의사 선교사님은 언제 다시 오나요?” 포사이드 선교사의 한국 이름이 보의사였습니다. 포사이드 선교사가 미국으로 돌아간 뒤, 전주 사람들은 그를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포사이드 선교사 역시 정이 많은 전주 사람들이 보고 싶어 1902년 다시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해 한 달 동안 배를 타고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그러나 선교 부에서 전북 지역은 어느 정도 안정이 됐으니 전남 지역을 개척하라며 목포 지역 선교사로 발령을 내렸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전주 사람들은 포사이드 선교사를 전주에 머물게 해 달라며 천장의 청원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만큼 포사이드 선교사는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잠시 전주에 머무는 동안 최선을 다해 주민들을 치료하고 복음을 전하다가 선교부의 지시대로 1903년 목포로 이사했습니다.

어느 날, 포사이드 선교사에게 광주에 있는 오웬 선교사가 위독하니 급히 와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말을 타고 길을 지나가는데 어떤 여인의 신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만이 보니 가마니 밑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가마니를 들추어 보니 한센병 환자가 신음 소리를 내며 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포사이드 선교사님은 이 죽어가는 여인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말에 태워 함께 광주로 갔습니다. 이 여인을 데려온 포사이드 선교사를 오웬 선교사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한센병에 걸려 일그러진 그 여인의 손을 포사이드 선교사는 잡아서 일으켰다. 그녀의 머리를 수 개월, 수년을 빚지 않았으며, 그녀의 옷은 누더기에다 더러웠다. 손과 발은 부어 올랐고, 견딜 수 없는 냄새를 풍겼다. 한 발은 짚신이고 한발은 종이로 감았다. 여인은 걸을 때에도 심하게 절었다.”

포사이드 선교사는 그 여인을 사랑으로 돌봐 주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최홍종이라는 사람이 큰 감동을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광주에 있는 자기 땅을 다 내놓으며 한센병 환자들을 돌봐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곳이 바로 손양원 목사님이 담임목사로 있었던 예수 애양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