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님들(1)”
우리 선교회 홈페이지 사진은 양화진에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님들 묘지 앞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양화진에서 했던 기도는 “우리가 이분들처럼 못한다고 해도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공부시켜서 자국으로 파송 하게 모든 과정을 주님께 맡깁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님들이 한국에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우지 못한다고 해도 외국인들을 한국에서 최소 10 명은 공부를 시키겠다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50 명도 넘게 보내주셔서 지금까지 계속 공부시키고 자국으로 파송 합니다.
현지인을 그렇게 공부시켰기에 세계 여러 나라에 교회, 고아원, 미션스쿨이 세워져서 열심히 섬기고 있습니다. 지금도 계속 외국인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공부를 시키고 있습니다.
~~조선의 조정은 선교사들의 포교활동을 철저히 금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교사들이 할 수 있었던 사역은 의료 사역과 교육사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의사로 온 선교사들은 병원 사역을, 의사가 아닌 선교사들은 교육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제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다가 부모 없는 거리의 아이들을 데려다 새롭게 고아원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1886년, 언더우드 선교사가 시작한 고아원은 영국식 고아학교 형태로 운영하다가 ‘예수교학당’ 이라 이름하고 학비는 물론 의복과 음식까지 주면서 아이들에게 한글과 성경 등을 가르쳤습니다. 이는 후에 ‘구세학당’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1901 년에 연동으로 자리를 옮겨 ‘경신학교’라 불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경신중고등학교의 전신입니다. 이 학교에서 배출한 인물 중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김규식 박사님이 있습니다.
언더우드의 부인이었던 릴리어스 홀튼 선교사가 쓴 글을 보면 김규식이라는 어린아이의 당시 상태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아이(김규식)의 아버지는 정치사건에 연 류 되어 귀양을 갔고 어머니는 일찍 죽었다. 관청의 눈이 무섭고 살림이 어려워 친척들도 외면한 여섯 살 아이를 데려다 애정으로 양육했고 훌륭한 기독교인이 되게 했다.
만약 어린 김규식이 언더우드 선교사를 만나지 않았다면 훌륭한 박사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초창기 선교사와의 만남은 한 사람의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불쌍한 김규식이라는 어린아이와 언더우드 선교사의 만남을 통해 세상에서 아름다운 이야기가 만들어 집니다.
*존 헤론에서 세브란스까지
우리나라에 선교의 문을 여는데 가장 귀한 역할을 담당한 것은 병원 사역이었습니다. 태평양을 건너와 일본에 가장 먼저 도착했던 존 해론 선교사는 갑신정변 때문에 아펜젤러 선교사와 언더우드 선교사보다는 조금 늦게 들어왔지만 의사로 오자마자 곧바로 광혜원에서 알렌 선교사를 도와 일할 수 있었습니다.
광헤원이 제중원으로 이름이 바뀌고 알렌 선교사가 본국으로 들어가면서 존 해론 선교사는 병원 일과 더불어 궁궐의 많은 환자들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는 열정으로 복음을 전하고 왕진을 다니며 전염병을 예방했습니다. 조선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니던 존 해론이 어느 날 쓰러지고 맙니다.
그는 마지막 유언으로 병원으로 함께 일하던 조선 사람에게 눈물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1860 년 7 월 26일, 우리나라에 온지 5 년 만에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존 해론 선교사의 죽음으로 병원 사역에 큰 구멍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언더우드는 사랑하는 친구 존 해론을 양화진 땅에 묻은 후 눈물로 안식년을 맞습니다. 그는 미국 교회를 돌아다니며 조선에 의료 선교사가 꼭 필요하다고 호소 했습니다.
그때 에비슨 이라는 의사가 반응합니다. 조선에 선교사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시는 것 같았습니다. 에비슨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자리에서 열심을 다해 섬겼습니다. 매일 많은 환자를 혼자서 다 감당하면서도 지친 기색이 없었습니다. 그보다 너무 좁고 열악한 병원 때문에 걱정이었습니다.
에비슨은 본국에 가서 병원을 세워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어느 실업가 한 분이 에버슨 선교사를 찾아왔습니다. “병원이 필요하다는 애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도왔으면 좋겠습니까?” 너무나 기쁜 에비슨은 조감도를 꺼내 보였습니다. “이것은 제가 기도하면서 만든 조감도입니다. 교회, 학교 병원, 선교사 숙소까지 함께 지어서 전체적으로 센터를 만들어 사역을 하고 싶습니다.” 조감도를 본 그는 말했습니다. “제가 모두 후원하겠습니다.”
그가 바로 실업가 L.H. 세브란스 였습니다. 현대 식 시설을 갖춘 병원을 짓고 제중원에서 세브란스병원이라 개칭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연세의대 부속 병원의 전신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해주신 이분들의 이야기는 수 없이 읽어도 또 감동이고 또 배우고 싶기에 같이 공유합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님들(1)”
마마킴||조회 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