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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퍼 앤 꿈퍼~~다일공동체를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최일도목사)

마마킴||조회 375
“밥퍼 앤 꿈퍼~~다일공동체를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최일도목사)

1988년 11 월 11 일 신대원 졸업 학기 중에 오전과 오후 수업이 휴강됐다는 소식에 환호성을 지르며 청량리 역으로 향했다. 틈만 나면 어디론가 행하니 다녀오던 방랑벽이 또 걸음을 재축한 것이다. 그날은 춘천을 다녀올 참이었다. 역 광장을 지나고 있는데 대여섯 걸음 앞서 걷고 있던 한 노인이 힘없이 고꾸라졌다. 순간 부축해 드릴까 그냥 지나칠지 고민이 됐다. 쉬운 쪽을 택했다. 생면부지의 할아버지를 돕다가 기차가 떠나버릴 것이 걱정됐고 내가 아닌 누군가가 도움을 줄 것이라는 생각에 지나쳤다.

춘천에 도착해서 커피숍에서 시도 쓰고 호숫가도 거닐며 ‘광나루 시인입네 ‘하며 한나절을 보냈다. 그때 나는 일주일 후 모교 채플에서 첫 시집 발간 감사 예배 드릴 일로 꿈에 부풀어 있었다. 다시 기차를 타고 청량리로 돌아왔을 때는 밤이 깊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 역 광장을 가로 질러가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난번에 봤던 할아버지가. 그때까지 온몸을 오그린 채 역 광장에 누워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음속에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공무원, 시회 복지요원, 지나는 행인들에 대한 분노였고 동시에 나는 이 일에 아무 책임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핑계거리를 찾고 있었다. 신대원 졸업 후 독일 유학을 다녀와 산속에 영성 수련센터와 전원 교회를 세우겠다고 아내와 이야기를 이미 끝낸 터였다.

쓰러진 그 노인을 돌보는 건 내가 할 일도 아니고 내 삶의 계획엔 전혀 없었다. 그래도 일말의 신앙 양심은 남아 있어서 노인에게 다가가 물었다. “할아버지, 진지는 드셨어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어쩌면 어떤 대답을 하지 않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내가 할 일은 아니잖아” 하면서 광장을 가고 있는데 등뒤에서 희미한 음성이 들려왔다. “아니…”

뒤돌아서며 물어 보았다. “할아버지 지금 아니라 하셨어요?” 그때 마음속에 들여오는 음성을 듣게 되었다. “아니, 나는 먹지 못했다. 일도야. 너는 언제까지 나를 이 차가운 바닥에 누워 놓을 셈이냐?” 주님의 음성이 죽어가는 내 양심을 찌르는 듯했다.

순간적으로 강도 만난 자를 스쳐 지나간 레위인과 제사장의 모습이 바로 나 인양 오버랩 됐고 너무도 부끄러웠다. 노인을 일으켜 안다시피 해서 근처 설렁탕 집으로 향했다. 식당 주인은 얼굴을 찌푸렸다. 아랑곳 않고 얼굴을 닦고 사지를 주물렀다. 그는 나흘간 아무것도 못 먹었고 굶기를 밥 먹듯 한다 했다. 지하도에서 잠을 청하고 고물상에 박스들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한다고 했다.

노인과 헤어지고 집에 오면서 수용 시설에라도 모셔다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튿날 그를 다시 만나기 위해 청량이역 광장의 시계탑을 찾았을 때 할아버지는 다섯 명의 행려자를 데리고 나왔다. 그 중 어떤 이는 술 냄새와 발 냄새를 아주 진하게 풍겼다.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그들 모두 에게 설렁탕을 사드렸다. 그들은 청량이 수산 시장과 야채 시작의 쓰레기더미에서 건너편 경동시장의 한약방 처마 밑에서 잠을 청하고 역시 끼니 거르는 것은 일상이라 했다.

아직도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구나, 나는 애써 모른 체하고 내 가족만 알고 살아 왔구나, 하는 자책감과 할 수 있다면 그분들에게 먹거리와 잠자리를 제공해 주고 싶었다. 그날 이후로 가끔씩 그분들을 만나러 청량리로 갔고 용돈은 날개 달린 듯 날아갔다. 턱없는 지출은 가게에 타격을 줬다. 아내는 혹 내게 다른 여자가 생긴 것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하게 됐다. 오해를 풀기 위해 하루는 아내와 함께 청량리 역 근처 설렁탕 집을 함께 찾았다. 함경도 할아버지와 여덟 명의 행려자들은 이미 식사를 끝내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다일 공동체를 시작하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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