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으로 거듭난 사형수(하나님을 기뻐하라~~존 파이퍼저서)”
믿음을 낳고 유지하는 말씀의 능력에 대한 큰 증거가 있다. 우리는 그 증거를 1918년 도쿄에서 살인 혐의로 교수형을 당한 토키치 이치히의 회심과 사형 집행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호랑이처럼 잔인하기로 유명한 사람으로 20 여 차례 이상 감옥을 들락거렸다. 한번은 교도소 간수를 공격해 입에는 재갈이 물리고 몸은 단단히 묶인 채 발가락만 간신히 땅에 닿는 상태로 구금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사죄하기를 완강히 거부했다.
사형을 당하기 직전 토키치는 그는 예수님의 재판과 사형 집행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한 문장이 그의 관심을 사로 잡았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이 한 문장이 토키치의 삶을 변화 시켰다.
“나는 읽기를 중단했다. 내 마음이 15센티미터는 되는 칼에 찔린 것 같았다. 이 구절에서 난 무엇을 본 것인가? 그것을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불러야 하나? 그분의 긍휼이라고 불러야 하나? 뭐라고 불러야 할지 난 모르겠다. 단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가 믿었음을 알 뿐이다.”
티키치는 사형 선교를 받았지만 그것을 “공정하고 치우침 없는 하나님의 판결” 로 수용했다. 그에게 믿음을 갖게 한 말씀이 이제는 놀랍도록 그의 믿음을 지켜 주었다. 마지막 순간이 다가올 무렵 웨스트는 토키치에게 의인의 고난에 관한 구절인 고리도 후서 6 장 8-10절을 읽어 보라고 했다. 그 말씀이 토키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사람들은 내가 날마다 서형 집행을 기다리면서 매우 근심하고 있을 것이라 말할 것이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근심하지도 않고 낙심하지도 않고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는다. 가로 2미터, 세로 3 미터의 감옥에 갇혔지만, 나는 하나님을 모르고서 내가 죄 짓던 날들보다 훨씬 행복하다. 주야로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이야기를 나눈다.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 하게 하고” 회심하기 전 나의 악한 삶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 말씀이다. 하지만 아마 장래에 누군가는 역사상 가장 악독했던 놈이 자기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회개할지 모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는 비록 가난하지만 부요 하게 한 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말씀이 그를 끝까지 붙들었다. 그는 교수대 위에서 위대한 겸손과 진실함으로 최후의 한마디를 남겼다. “순결해진, 나의 영혼, 아제 하나님의 도성으로 들어갑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지된다. 그리고 기쁨의 꽃은 믿음에서 자란다.
“말씀으로 거듭난 사형수(하나님을 기뻐하라~~존 파이퍼저서)”
마마킴||조회 3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