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테레사(12)
베이루트에 갔다가 아이들을 데려 왔을 때가 기억납니다. 아이들은 참담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병원이 폭격을 당하자 직원들은 일찌감치 달아나버리고 서른 일곱 명이나 되는 아이들은 완전히 벌거벗은 채 서로 포개어져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먹이고 돌봐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서로를 빨아먹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데려와 깨끗한 침대에 눕혔습니다. 수녀님들이 아이들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보십시오. 아이들을 보러 온 의사들이 다들 말하더군요. “감사합니다. 수녀님. 하지만 아이들은 모두 일주일 안에 죽을 겁니다.” 놀랍게도 단 한 명의 아이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미소는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유럽에 있는 이곳을 비롯해 다른 도시에는 굶주린 사람이 없다고 헐벗은 사람이 없다고 잘못 생각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빵에 대한 굶주림도 있지만 사랑에 대한 굶주림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곳에는 옷가지가 없음으로 인한 헐벗음은 없겠지만, 인간 존엄성의 결핍으로 인한 헐벗음이 있습니다. 벽돌로 지은 방 한 칸이 없어서 행려자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환영 받지 못하고 사랑 받지 못하고 보살핌 받지 못하는 이들을 거절하기 때문에 그들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맑게 해 줍니다. 맑은 마음으로만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본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시듯이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헐벗음은 인간 존엄성의 상실입니다
우리가 환영 받지 못하는 사람, 사랑 받지 못하는 사람, 보살핌 받지 못하는 사람, 잊힌 사람, 외로운 사람들 이야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이 더 큰 가난이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인 가난은 물질로 얼마든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빵에 굶주린 한 사람에게는 빵을 줌으로써 그의 굶주림을 만족시킬 수 잇게 됩니다. 그러나 끔직하게 외롭고 사회에서 버림받고 거부당한 사람에게는 물질적인 지원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외로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그 끔찍한 아픔을 없애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요하고 희생이 필요하고 온유함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따금 물질을 주는 것보다 훨씬 더 이롭습니다. 우리에게 빵에 대한 굶주림만 있는 게 아니라 사람에 대한 굶주림이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제가 처음에 이 일을 시작했던 초기에 교회는 쓰레기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쓰레기란 가난한 삶, 병든 사람, 죽어가는 사람, 불구인 사람, 집 없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모두가 쓰레기로 여겨지던 그들을 돌아보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인간의 품위를 누리며 존중 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인간은 사랑을 경험하지 않는 다면 자신의 존엄성을 의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니르말 흐리다아에서 죽은 한 남자가 생각납니다.
“거리에서 저는 짐승처럼 살았지만, 이제 사랑 받고 보살핌을 받으니 천사처럼 죽을 겁니다.:
헐벗음이란 인간 존엄성의 상실이자 존경의 상실입니다. 너무도 아름답고 위대한 순수함의 상실, 젊은 남녀가 사랑하여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순결의 상실, 아름답고 위대한 그 존재의 상실입니다. 바로 이것이 헐벗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더욱 위대한 것들을 위해서 우리를 창조하셨고, 사랑하고 사랑 받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 존엄성을 빼앗을 때 그것은 곧 그의 안에 있는 신성을 파괴 하는 것이 됩니다.
“마더 테레사(12)
마마킴||조회 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