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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테레사 (10)

마마킴||조회 510
“마더 테레사 (10)

대기근 동안 에티오피아의 알라미터에는 물이 한 방울도 없었습니다. 수녀님이 오셨을 때 그곳엔 물이 전혀 없었습니다. 심지어 마실 물조차 전혀 없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모두들 물을 한 잔씩 마셨습니다. 하지만 수녀님은 물을 드시지 않았습니다. 몹시 더운 날이어서 다들 목이 마른 상태였어요. 한데 수녀님은 당신 몫의 물을 어느 죽어가는 여인에게 건네셨습니다.

수녀님은 병든 사람,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마더 테레사가 세운 호스피스 “니르말 흐리다이”라는 곳에서 수녀님을 뵙는 것, 수녀님이 침대마다 둘러보며 그들을 어루만져주시는 모습이나 그분의 실질적인 관심을 보는 것 자체가 복음을 전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몸소 사랑을 표현하고 계셨으니까요. 그분은 현실적인 여성이었습니다.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거나 신부님들에게 쵸코렛을 주건, 구체적인 방식으로 그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뭐라고 권고하실 때면 언제나 사랑의 표현에 더 가까웠습니다.

그분은 늘 우리에게 희생하라고 사람들이 필요로 하니 서두르라고 권유하셨습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항상 진심을 다해 봉사해야 했습니다. 그분은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발견하면, 이런저런 요구를 모두 들어주기 위해 몸을 둘로 쪼개다시피 하셨습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항상 진심을 다해 봉사해야 했습니다. 그분이 그들에게 보여주신 사랑은 각별했습니다.

수녀님의 영상에서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가난한 이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들 안에서 가장 비참한 모습을 한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보시는 능력이었습니다. “비참한 모습’이라는 이 표현에는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가장 가난한 이들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알아보기도 아주 힘들고 어려울 만큼 비참한 모습으로 변장한 예수님을 알아보는 것, 그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목말라하신다고 믿고 그분과 함께 하려 애쓰는 것을 말합니다. 영상을 통해 기도를 통해, 접촉하지 않는다면 비참한 모습을 한 이들에 대한 믿음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수녀님은 말씀하곤 하셨습니다. “제가 성체성사에서 받아들인 예수님은 제가 섬기는 예수님과 같습니다. 다른 예수님이 아닙니다.” 저는 사랑의 선교회 내의 영성은 그 존재에 중심을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난한 사람들 안의 예수님을 섬기고 사랑하고 싶습니다. 저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처럼 살고 싶어요. 가난한 사람을 살면서 주님을 섬기고 싶습니다.”

마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하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해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