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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피니(3)”

마마킴||조회 540
“찰스피니(3)”

1821 년 가을 어느 일요일 아침, 나는 단번에 내 영혼의 구원에 관한 문제를 결정짓기로 그리고 가능하다면 하나님과 평화를 맺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직장 일이 너무 바빴기 때문에 아주 독하게 마음먹지 않으면 효과적으로 그 문제에 주의를 기울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주의를 분산시키는 일절의 일을 피하고 오직 내 영혼의 구원을 확보하는 일에만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가능한 한 최고로 연 엄격하고 철저하게 이 결심을 실천에 옮겼다. 그러나 내게는 직장 일이 많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가 계셔서 월요일이나 화요일에는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성경 읽고 기도하는 데 바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자존심이 강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은 내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사실 아주 열심히 기도회에 참석했고 아담스에 잇는 동안 종교에 보인 열성도 대단했다. 내가 너무 열성적으로 그렇게 했기 때문에 교인들은 내가 틀림없이 아주 열렬한 탐구자라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막상 내가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나는 내가 내 영혼의 구원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눈치채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자는 기도할 때 단순히 입 속에서 속삭이는데 그쳤다. 그리고 내가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내 방 열쇠 구명을 막고서 기도했다. 그전에는 성경을 법률 서적들과 함께 책상 위에 두었었고, 다른 책 읽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같이 성경 읽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내가 영혼의 구원에 진지한 관심을 나타내고 난 다음부터는 될 수 있는 대로 성경을 눈에 뛰지 않는 곳에 감추어 두었다. 성경을 읽는 중에 누가 들어오면 그것을 읽고 있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 법률 서적을 그 위에 던지곤 했다. 그전에는 아무하고나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 했었지만 그 때부터는 누구와도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목사님을 보는 것도 원치 않았는데 그것은 나의 느낌을 알리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나를 이해하고 나에게 필요 적절한 지도를 해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같은 이유로, 나는 장로들이나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대화도 회피했다. 한편으로는 나의 느낌을 그들에게 말리는 것이 부끄러웠고 또 한편으로는 그들이 나를 오도할까 봐 두려웠다. 나는 성경 읽는 것에만 몰두했다.

월요일과 화요일 양일간, 죄에 대한 나의 깨달음이 더욱 가증되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여전히 더욱 강팍해지는 것 같았다. 눈물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기도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나의 숨소리보다도 더 큰 목소리로 기도할 기회가 없었다. 만약 마음껏 소리지를 수 있는 장소만 있다면 기도로써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수치심으로 인해 가능한 한 그 문제에 대해 누구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피했다. 내가 영혼의 구원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화요일 밤에는 신경이 너무 곤두서서 마치 곧 죽을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죽으면 곧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아침이 되기까지 최대한 나 자신을 진정시켰다.

이른 아침에 사무실을 향해 출발했다. 그러나 사무실에 도착하기 직전에 나의 내면에서 이러한 도전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너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느냐? 너는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기로 약속하지 않았느냐? 너는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너 자신의 의를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느냐?

바로 이 순간 복음의 구원 문제가 너무나 놀라운 방식으로 내 마음에 펼쳐져 왔다. 나는 그 때 내 생애에 가장 분명하게 그리스도의 구속의 실재성과 충족 성을 보았던 것 같다. 그의 사역은 완성된 사역이라는 것과 나를 하나님께 천거하기 위해서 나 자신의 의를 가지거나 필요로 하는 대신에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의에 굴복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보았던 것이다. 복음의 구원은 수락되어야 하는 선물이며 그것은 충복하고도 완전한 것이었다. 내 편에서 필요로 하는 일이란 오직 죄를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뿐이었다. 구원은 나 자신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자기 자신을 하나님과 구주로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만 발견될 수 있었다.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나는 내면의 음성이 나를 사로 잡았던 바로 그 길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거기 서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명백한 계시가 내 마음에 주어진 후 “너는 그것을 오늘, 지금 이 시간에 받아들이겠는가?” 하는 질문이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대답했다. “예, 나는 그것을 오늘 수락하겠습니다. 그것을 수락하지 않는 다면 죽겠습니다.”

신앙은 지적인 상태가 아니라 자발적인 의탁이라는 진리를 결코 깨달아 보지 못했다. 그 순간 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마치 그분의 존재를 의식하는 것만큼이나 의식하고 있었다. 나는 물에 빠진 사람처럼 그것들을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