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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피니(2)~~기도하면서 기도 응답을 모르는 사람들

마마킴||조회 559
“찰스 피니(2)~~기도하면서 기도 응답을 모르는 사람들

나는 특별히, 내가 매주 귀 기울여 들었던 기도들이 응답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정말이지 나는 기도에 나타난 그들의 말이나 그들의 모임에서 했던 발언들로부터 그 기도를 했던 사람조차 그것이 응답되리라고는 생각지 않고 잇다는 것을 알았다.

성경을 읽을 때 나는 그리스도께서 기도의 응답에 관련해서 하신 말씀을 알게 되었다. 예수님은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일 것이다(마7:7-8) 고 말씀하셨다. 나는 또한 세상 부모가 자기 자녀에게 좋은 선물을 주기 기뻐하는 것보다 하나님은 더 기꺼이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기 원하신다는 것을 그리스도께서 보장하고 계심을 알았다. 그들은 성령의 부으심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는 그만큼 자주 한탄하기를 자기들이 기도한 것이 응답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만약 자기들이 의무를 다하고 성령의 부어지심을 위해 기도하고 진지하기만 하다면 하나님의 영이 부어질 것이고 그들은 부흥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며 불신자들은 죄를 깨닫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서로 서로 깨어서 주를 위해 활동적이 되고 부흥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들은, 기도와 모임을 통해서 자기들이 부흥을 일으키는 데 아무런 진전도 못보고 있다고 계속 고백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불일치~그렇게 많이 기도해도 응답을 믿지 못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슬픈 걸림돌이었다. 나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 사람들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서 그런 것인가? 혹 내가 이 문제에 관한 성경의 약속과 가르침을 오해했는가? 혹은 성경이 진실이 아니라고 결론지어야 할 것인가? 하는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 여기, 내게 납득되지 않는 어떤 것이 있었다. 한때 그것은 나를 회의주의로 돌이 갈 뻔했다. 성경의 가르침은 내 눈앞에 나타나는 현실과 도무지 일치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한번은 내가 기도회에 참석하자 그들은 내게 비록 내가 내키지 않아 하더라도 나를 위해 기도해 주겠다고 제의 했다. 나는 그만두라고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이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기도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그러나 여러분들의 기도는 별 효과가 없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은 끊임없이 기도하지만 응답을 못 받으니까요. 여러분들은 내가 아담스에 온 이후 계속 해서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나 부흥은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성령이 여러분들에게 임하시기를 그토록 기도해 왔으나 여러분들은 여전히 응답 받지 못한 채 여러분들의 연약함이 말하고 있습니다. 만역 여러분들의 기도에 이런 효능이 있다면 여러분들은 귀신이라도 내쫓을만한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아직도 기도하고서는 응답을 못 받았다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나는 아주 진지하게 이 말을 했고 내가 종교적 진실을 직면하게 된 데 대해 조금도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새로운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성경을 더 읽어 내려감에 따라, 그들이 응답 못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기도의 응답의 조건으로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약속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들은 하나님께도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기대한다는 의미와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생각은 한동안 내 마음에 말로 표현될 수 있는 어떤 명백한 형태로라기 보다는 혼란스러운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 생각은 복음의 진실성에 대한 질문에 관한 한 나에게 안도감을 주었고 그런 식으로 약 2,3 년간 갈등한 후, 내 자신이나 목사님이나 교인들의 마음에 어떤 혼란이 있든 그것과 무산하게 성경은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생각이 완전히 굳어지게 되었다.

이것이 확고해 졌기 때문에 나는 복음에 제시된 대로 그리스도를 영접할 것인가 아니면 세속적인 사람의 방식을 추구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직면하게 되었다. 이 때 나의 마음은 너무나 성령에 감동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 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둘 수가 없었고 나에게 제시된 두 삶의 방식 사이에서 오랫동안 머뭇거리고 있을 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