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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 방촌의 성자, 요셉의원 설립자~~의사 선우경식 저서(4)”

마마킴||조회 558
“쪽 방촌의 성자, 요셉의원 설립자~~의사 선우경식 저서(4)”

선우 경식이 노숙자 사는 곳을 찾았을 때 그때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이 했다.

무슨 말을 할까? 술을 찾을까? 밥을 찾을까? 그가 대답을 못하자 질문을 한 사람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런 생활을 하느니 하루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이에요. 여기 사람들 중엔 어릴 때 고아가 된 사람이 많아요. 또 대부분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알코올 의존 중 환자가 되어 가족들에게 버림 받은 사람들이고요.”

선우경식은 “하루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란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희망 없는 삶에 분노하고 좌절하는 사람들, 가정으로부터 버려지고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 주민등록이 말소된 탓에 영세민을 위한 의료보험 카드나 생활보조비를 받을 수도 없는 이들, 이들은 서울시 사회복지시설에 들어가 자유를 속박 받으며 살기보다는 차라리 병들어 죽는 쪽이 낫다고 생각했다.

선우경식은 어쩌면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셉의원이 이들의 가난은 해결하지 못해도 이웃이 되어주고, 배고플 때 밥을 나누고 추울 때 옷을 나눈다면 적어도 목숨은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요셉의원으로 돌아오며 그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울자”라고 했던 푸코 성인을 떠올렸다. 푸코 성인은 선우경식이 벽에 부딪칠 때마다 그의 멘토 역할을 하며 신앙과 삶을 단련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이 모든 가난한 마음을 위로하려 노력하자 모든 고통 받는 마음을 위해 더없이 다정한 형제가 되어주자. 우리가 예수님께 위로 받기를 바라듯이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 형제들을 위로하자. 몸은 고통을 당한다. 가난한 이들, 병든 이들, 어린아이들, 장애인들, 버림받거나 내쳐진 이들, 이방인들, 억압받는 이들, 약한 이들,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불우한 이들을 보살피고, 할 수 있는 대로, 이들의 비참을 구제하자. 아무도 위로해주거나 돌보지 않는 이들을 위로하고 돌보자. 이것이 예수님 그분께 해드리는 것이다.”

어느 날, 가락시장에서 배추 실어 나르는 일을 한다는 환자 한 명이 선우경식에게 하소연을 했다. “원장님, 혹시 가락시장에 오셔서 진료를 해주실 순 없으실까요?  제가 가락시장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한 시간 반, 진찰받고 약 타는데 두 시간, 가는 데 한 시간 반이 걸리니 하루 일당이 없어지네요. 또 실제로 시장에서 저처럼 막일하는 이들 중에는 아파도 병원을 못 찾아가는 사람이 정말 많고요.”

선우 경식은 이제 병원에 승합차도 생겼으니, 그 차에 간단한 의료 기구를 싣고 가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진찰을 할 만한 장소였다.

“그런데 시장에 가면 진찰을 볼 만한 적당한 곳이 있습니까?”
“가락시장 앞에 그 부근 천주교 성당에서 운영하는 하상바오로 식당이라는 무료 급식소가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거기서 환자들을 진료할 수 있게 편의를 봐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알아보고 만약 여의찮으면 차 안에서라도 진료를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원장 선생님, 저도 식당 신부님과 수녀님께 미리 말씀 드려 놓겠습니다.”

하상바로로의 집은 가락동성당이 강원도 정선에서 성프란치스코의원을 운영하던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와 함께 저소득층을 위해 만든 무료식당이었다. 요셉의원, 막달레나의 집과 같은 서울 가톡릭 사회복지회 부설 기관이라, 선우경식은 다행히 그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그곳 한쪽에 커튼을 치고 진료를 보기로 했다.

1991년 4 월 3 일부터 1 주일에 한번 수요일마다 의사, 간호사, 약사, 검사실 직원 등 모두 네 명이 하상바오르의 집으로 가서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인 오후 2 시부터 6 시까지 진료를 했다. 30~40 명 정도 치료를 하는데, 요셉의원에서 진료를 하다가 가락동으로 가야 하니 점심도 거른 채로 허겁지겁 이동해 진료를 할 때가 많았다. 그런 날에는 커튼 밖에서의 식사 소리와 고소한 반찬 냄새 탓에 진료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하루는 견디다 못한 선우경식이 체면 불고하고 커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수녀님, 제가 배가 고파 진료를 할 수 없는데 밥 좀 주실 수 있나요?” 수녀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원장님 아직 식사 안 하셨어요?”
“”예, 저뿐 아니라 저희 의료진 모두 굶고 왔습니다.”

수녀가 급히 차린 밥상 앞에 의료진이 둘러 앉았다. 소찬이었지만 꿀맛이었다. 선우경식은 밥을 먹고 나니까 자신이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배가 고플 땐 환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이때 배고픔의 고통이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요셉의원으로 돌아온 선우경식은 주방 봉사자들에게 “배고프다는 사람이 있으면 새로 밥과 반찬을 해서라도 허기를 채워주라”고 부탁했다. 그는 하상바오로의 집에서 지게꾼, 리어카군, 날품팔이하는 사람을 진료했고, 증세가 심한 환자는 요셉의원으로 데려와 진료해주면서 지속적으로 진료활동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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