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행복해지는 수단이 아니라 행복 그 자체입니다(팀켈러의 기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4 장 6~7절에서 성령님이 우리를 이끄셔서 하나님을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로 반가이 부르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이른바 하나님을 아는 경험입니다. (갈4:9) 성령님 기도를 인도하시고 그리스도가 거룩한 자녀들을 위해 중보 하시는 근본 동기 역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그분의 임재를 즐거워하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드리는 기도와 얼마나 다른지 묵상해 보십시오. 열명에 아홉은 하나님께 무얼 얻기 위해 무릎을 꿇습니다. 주님을 믿는다면서도 세상에서 얼마나 성공하고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느냐 하는 것에 가장 깊은 소망과 기쁨을 두기 일쑤입니다. 그러니 직장 생활이 곤고하거나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지거나 관계에 문제가 생기거나, 사회적 지위에 위기가 닥치고 나서야 비로소 기도에 열을 올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인생만사가 순조롭고 심중에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안전하다 싶으면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가 무미건조해지기 십상입니다. 이것저것 해 달라고 간청하는 데 큰 몫의 시간을 할애하고 가뭄에 콩 나듯 뭔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 때 죄를 고백합니다. 오랜 시간 차분히 않아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경우는 드물거나 전혀 없습니다.
한마디로, 내면으로부터 기도하고 싶어하는 긍정적이고 전향적인 욕구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형편에 쫓겨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조아릴 따름입니다.
어째서 그런가요? 하나님이 엄연히 살아계시다는 걸 알지만 무언가를 얻어 내거나 행복해지는 수단쯤으로 여기는 탓입니다. 대부분은 그분을 행복 그 자체로 삼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더 잘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얻고 구하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제힘으로 구원에 이르려고 끊임없이 허우적거리는 자신의 상태를 빨리 파악하고 그리스도를 향해 돌아서야만 국면을 총체적으로 전환 시킬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감수하신 크고도 놀라운 희생을 깨닫고 소망의 대상을 물질에서 그리스도로 바꾸며, 예수님께 기대어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구하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유익과 축복이 얼마나 엄천 난지 감이 오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속속들이 알고 깊이 사랑하고자 하는 소망이 간절하다 못해 절박해집니다. 거룩한 사랑과 배려를 받는데 온통 마음이 가서 주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고 그분을 기쁘게 하는 일을 가장 만족스럽고 고상한 일로 여기게 됩니다.
하나님은 행복해지는 수단이 아니라 행복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은 행복해지는 수단이 아니라 행복 그 자체입니다(팀켈러의 기도)”
마마킴||조회 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