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 템 붐 이야기”
코리 템 붐은 네델란드 태생의 그리스도인이다. 그녀의 가족들은 독일 나치가 네델란드를 점령했던 제 2 차 세계대전 중에 유태인들을 숨겨주고 도피를 도왔다. 1972 년에 간행된 그녀의 책 (주는 나의 피난처)에 소개된 이야기다. 그녀는 언니 벳시와 함께 채포되어 독일 라벤스브뤼크 강제수용소에 수감 되었는데 거기서 벳시는 죽고 코리만 살아남았다.
종전후 1947년 코리는 수회 강연차 독일에 가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 중 한 집회에서 청중에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죄를 해저에 던지셨다고 말했다.
집회가 끝나고 사람들이 떠나고 있는데, 그녀에게 다가오는 한 남자가 보였다. 그녀는 그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이 남자는 우리가 수감되었던 라베스브루크 강제수용소의 간수였다. 순식간에 기억이 되살아났다. 거대한 방의 천장 조명은 눈을 찔렀고, 바닥 한 복판에 옷과 구두가 넝마처럼 쌓아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벌거벗은 몸으로 수치스럽게 이 남자 앞을 지나가야 했다. 살가죽 밑으로 갈비뼈가 튀어나와 있던 언니의 가느란 체구도 눈앞에 떠올랐다. 벳시 언니는 얼마나 야위었던가!~~~그의 허리띠에서 대롱거리던 가죽 채찍이 기억났다. 그런 그가 이제 내 앞에서 손을 내밀며 말했다. “메시지 잘 들었습니다. 자매님, 자매님 말씀처럼 우리의 모든 죄가 바닷속에 있다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는 코리가 자기 관할의 포로였음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이 네달란드 여인에게 강제수용소 간수의 죄도 용서 받을 수 있음을 확인 받고 싶어 했다. 예전의 담당 간수를 만나기는 그녀도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방금 전에 하나님의 용서를 증언한 자신의 손을 차마 주머니에서 꺼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어 그는 자신이 라벤스브뤼크의 간수였는데 그리스도께 돌아와 거기서 저지른 모든 잔인한 일에 대해 용서를 구했노라고 말했다. 그러나 코리에게는 그 말도 소용 없었다.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로 나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나 또한 날마다 죄를 용서받아야 하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벳시가 거기서 죽었다. 언니의 느리고도 처참한 죽음을 그는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지워 버릴 수 있는 걸까? 손을 내민 그 사람 앞에서 코리는 꿈쩍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서 있었다.
그런 코리에게 자신이 알고 있던 기독교적 용서가 떠올랐다. 그녀는 자신이 용서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코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많은 사람이 용서하지 못하고 원한 때문에 폐인이 되는 모습을 보았고 용서가 감정이 아니라 의지의 행위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속으로 기도했다. “예수님 도와주세요……저는 손을 들어 올릴 수 있어요. 그만큼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딱딱하게 기계적으로 내 손을 뻗어 그가 내민 손에 포갰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짜릿한 전류가 내 어깨에서부터 팔뚝을 타고 흘러 맞잡은 손까지 관통한 것이다. 그러면서 치유의 온기가 내 온몸을 휘감는 것 같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내 마음을 대해 형제님을 용서합니다’ 나는 그렇게 외쳤다. 하나님의 사랑을 그때만큼 절절히 실감한 적이 없었다.
“코리 템 붐 이야기”
마마킴||조회 1,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