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 년 빌리 그레이엄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의 그레이트 세인트 메리교회에서 일주일간 열리는 저녁 집회에 와서 학생들에게 설교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가 온다는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자 더 타임스에 잔뜩 성난 편지가 여러 통 실렸다. 근본주의자인 미국의 이 침례교 목사가 어떻게 영국 최고의 지성인들에게 피와 속죄와 지옥에 기초한 원시 종교를 전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빌리 그레이엄도 그게 부담이었음을 시인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교육받지 못한 시골뜨기로만 인식하는데 마음이 상했다. 그래서 최대한 학문적으로 말하려고 여러 지식임과 학자의 글을 인용했다. 하지만 사흘 밤이 지나도록 자신의 메시지에 아무런 반응도 없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무릎 꿇고 기도하던 중 그는 준비한 원고를 버리고 그저 그리스도의 피와 십자가를 전하기로 마음 먹었다.
런던의 세인트헬렌스비숍 게이트 교회에서 다년간 교구 목사로 봉직한 딕 루카스는 그 집회 마지막 밤에 자신이 본 광경을 설교에 회고했는데 그것이 녹음테이프로 남아 있다.
“그날 밤을 영영 잊지 못합니다. 그레이트세인드 메리 교회의 사제석이 꽉 차서 바닥에 앉았는데, 제 양 옆으로 신학부의 왕립 석좌교수의 훗날 주교가 된 대학 교목이 동석했습니다. 둘 다 좋은 사람이었지만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아야 한다는 개념을 철저히 배격했지요. 그날 밤 연단에 오른 존경하는 빌리 그레이엄은 창세부터 시작해 성경 전체를 훏으면서 계시하는 계시는 모두 언급했습니다.
45 분 동안 그 큰 교회당 구석구석까지 온통 피가 흘렀습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그토록 노골적으로 선포되자 제 양 옆의 두 사람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더군요. 틀림없이 그들은 영국의 똑똑하고 세련된 젊은이 중에 그런 내용을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으리라고 확신했을 겁니다. 그런데 설교가 끝난 후 모든 사람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전교생 수가 8000 명에 불과하던 때였는데 남녀 학생 400 명이 자라에 남아 그리스도께 삶을 헌신 했던 것입니다.
몇 년 후 버밍엄대성당에서 케임브리지 졸업생인 어느 젊은 목사를 만난 일이 기억 납니다. 함께 차를 마시며 제가 물었어요.
“어디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셨습니까?”
그는 “아, 1955 년에 케임브리지에서요” 라고 말하더군요”
“그게 언제였나요?” “빌리그레이엄 집회 때였습니다.”
“며칠째 밤이었는지요??” 수요일 밤이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그러자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쎄요 기억나는 거라고는 제가 난생처음 ‘그리스도께서 정말 나를 위해 죽으셨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그레이트세세읹트메리교회에서 걸어 나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가 그에게 실재가 되었고 그 후로 그는 완전히 달라졌다.
앞서 말한 두 고위 인사는 그런 사람의 그런 설교,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피가 죄를 사한다는 아주 단순한 설교가 그런 젊은이의 인생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음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당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진정한 복음이 선포될 때”(용서를 배우다~팀 켈러의 저서)
마마킴||조회 1,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