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에서 사역하시는 김명숙선교사님이 주일에 오셔서 간증을 해주신 내용입니다.
주님의 증인되기 위하여 (아르헨티나 사역)
마태복음 28:18~20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저는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대대로 우상과 미신을 섬기는 불신자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학생 시절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대대로 믿음의 가정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였고, 청년 때부터 인디오형제들을 마음에 품고 선교를 준비하던 남편을 따라 남미 대륙의 아르헨티나로 파송을 받고 선교를 가게 되어, 생전 처음 타보는 비행기를 서른 시간 넘게 타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하였습니다. 이후 2년 동안 현지인교회 지휘자를 교육하여 성가대와 찬양단을 세워주는 등 찬양 사역을 하였으며 동시에 개척교회 부교역자로 섬겼습니다. 그 동안 아들 학비며 생활비가 모자라 노점상이 즐비한 곳에서 옷 장사 하시는 권사님 댁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였는데 퇴근길에 타고오던 차를 습격한 권총 강도를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이후 저희 부부는 우루과이에 있는 교회에 청빙을 받았는데, 아들 요한을 또 다른 나라로 전학시키기 어려워 아르헨티나에 그냥 두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몬테비데오 항구에 있는 교회로 다양한 국적의 선원들이 찾아오는 교회였어요. 저희는 수많은 선원들을 양육해 세례를 베풀었고 그중 몇몇 형제들은 본국에 돌아가 신학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중국 선원은 북경에 있는 저희 교단 신학교에 입학시키기도 했고요. 우루과이 어린이들 뿐 아니라 한국 선원들이 남긴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양육하여 신학교를 보내 일꾼을 세우는 등, 4년 동안 담임 목회를 하며 많은 부흥의 은혜를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언어 훈련이 되었고, 드디어 애초에 주님께 약속하고 품었던 인디오 형제들을 섬기려고 다시 아르헨티나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수도에서 1200km 떨어진 미시오네스 주에 사는 인디오 과라니족 형제를 섬기려고 가루빠 벧엘 교회를 세워 현지인 제자들을 양육하였고, 그들과 함께 원주민 인디오 마을에 3개의 교회를 더 세우게 되었습니다.
처음 저희가 과라니 마을에 찾아가 ‘난 오랜 전부터 너희 위해 기도한 한국에서 온 선교사’라고 했을 때 추장은 ‘우리는 예수가 필요 없다. 우리는 우리의 신과 이미 행복하다’고 거부했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계속 찾아갔고 ‘나는 한국에서 음악공부를 했는데 너희 자녀들에게 음악을 가르쳐 주겠다’고 제안하고 6개월 동안 막대사탕을 사들고 가 찬양을 가르치며 친해졌고, 드디어 예배드려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예배가 시작되었어요. 우선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나뭇가지를 덮어 지붕을 삼아 예배하다가, 주님의 은혜로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교육청에 부탁해 학교를 세웠고 그 결과 이름도 못쓰던 인디오 형제들이 성경도 읽게 되었지요. 그 중 리더도 세워져 3개의 마을교회를 더 세워 섬기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재정에 관한 기도 제목을 나누지 않았는데도 주님은 필요할 때마다 채워주셨습니다. 특히 얼굴도 모르는 분들을 통해서 때마다 보내주신 주님의 은혜는 셀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1원의 빚도 없이 4곳의 교회와 식당과 사택을 지었고 주님이 사랑하시는 과라니 형제들을 전심으로 사랑하며 섬기고 그들을 양육해 신학교를 보내 사역자를 세웠으며 모든 교회가 부흥되는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 동안 저의 남편이 이명증으로 고생했었는데, 의료가 너무나 열악한 곳이라 치료를 못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아르헨티나 수도에 있는 이비인후과에 가 볼까 했지만 의료보험이 없어 병원비를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에 한국에 오려고 싼 항공권을 사놓고 있었던 터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가려던 생각을 바꿔 한국에 오기로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명증을 쉽게 치료 받을 수 있을 거라 여기며 긴긴 비행을 하고 왔는데, 연세 병원에서 받은 판정은 뇌암 말기로 3개월을 더 살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진 돈이 없기에 병원에서 나와 치료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너무나 신기한 방법으로 김상숙선교사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이후 김상숙 선교사님과 홀리네이션스 행복동 지체들의 사랑의 헌신으로 마지막 치료를 잘 받게 되었고, 기도하는 중 더 이상 치료를 받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을 주셔서 치료를 중단했습니다. 그 동안 남편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으로 돌아가셨지만, 계속 기도와 물질로 응원해 주시는 여러분의 은혜는 제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못 잊을 것 같습니다.
너무나 남편과의 추억이 많아 홀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사역지였으나, 남편을 보내고 주님의 뜻을 물으며 기도했을 때 주님은 제가 돌아가야 할 이유들을 말씀해 주셨고, 저는 그 말씀에 순종해 홀로 선교지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그곳을 맡았던 부목사님과 선교사님은 이미 교회 문을 닫고 떠나버려 교회는 흉가처럼 변해 있었어요. 제가 돌아가서 수리하고 정리하면서, 또 교회를 다시 세워가면서 참 많은 영적 전쟁이 있었습니다. 도둑이 들고 뎅기열 모기에 물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사다리 사고로 다치는 일이 일어났어요. 하지만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교회를 이끌어갔습니다. 다시 장학금으로 신학생을 키우고 주일학교 청년부도 세워지는 등, 하나하나 세워져감에 감사뿐입니다. 매일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중에 제자들이 세워져가고, 과라니 마을에 세워진 교회도 이전보다 더 든든히 세워져 가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기도해주시고 물질로 헌신해주신 행복동 가족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의 20년 동안의 선교사역 동안 역사하셨던 주님의 은혜를 이 짧은 시간 다 나눌 수는 없지만,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감사하며 고백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사역하시는 김명숙선교사님이 주일에 오셔서 간증을 해주신 내용입니다.
마마킴||조회 1,6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