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에 무림고수”
사람들이 내적 치유를 할 때도 그렇고 보통 상처를 입힌 사람이 자기 가까운 가족이라고들 많이 고백 하는 것을 수 십 년 들어온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절대 용서 할 수 없는 일이라고들 대부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한데 주님은 우리에게 “한번만이라도 용서해 주고 잊어라” 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누누히 들어서 다들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마18: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마18: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고 말씀하신 것은 무한대를 말씀하시는데 우리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일곱 번만 용서를 해도 굉장한 인격인데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는 것은 우리는 용서하며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교도소에 요한이는 용서에 무림고수를 추천하라고 하면 추천할 인물입니다.
요한이는 15 살에 엄마와 아버지가 이혼을 해서 그 후 하루 한끼 먹는 날은 행복한 날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도소에 들어가게 된 것은 23 살이었고 지금 약 20 년이 흘렀습니다.
교도소에 수감자들은 대부분 일년에 한번도 가족들이 면회를 오지 않아서 출소를 했을 때 오갈 데가 없어서 다시 재범을 하고 교도소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요한이를 만났을 때 디모데가 요한이가 너무나 정체성이 없어서 힘들어 하니까 자기를 아들 삼아 주었는데 요한이도 꼭 그렇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해서 요한이도 아들이 되었습니다.
디모데도 요한이도 초등학교 졸업을 하고 그 후 졸업장이 없는데 하나님아버지의 가족이 되고 그 안에서 노역장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일정시간에 소등을 해야 하는 그런 환경에서도 스스로 검정고시 공부를 해서 중,고등학교 학사까지 합격해서 우리를 감동을 주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요한이는 엄마 아버지가 이혼하고 그 후 엄마라는 단어를 사용해 본적이 없었다고 고백을 하고 아버지는 그 후 한번도 면회를 온 적이 없어서 두분 다 교도소에서 뵌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형을 통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장례비도 문제인 것을 알고 노역장에서 힘들게 일을 해서 받은 돈을 저금한 것을 전부 아버지 장례비로 송금을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정말 예수님을 믿은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 용서의 무림고수를 옆에서 보는 기쁨에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냉수 한 그릇도 상주기를 기뻐하시기에 원래 자매 결연 실에 면회는 한 사람에게 장소를 제공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곳은 예배실이라 수감자들이 많이 예배를 드리면서 사용하는 곳인데 지금도 어떻게 요한이는 3 개월에 한번은 자매 결연 실에서 유리창이 없는 곳에서 1 시간 면회가 가능한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특별 상이고 특별 위로시간인것을 우리는 고백합니다.
용서의 무림고수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 자신이 마귀가 주는 미움이라는 감정에서 자유하고 그리스도의 평강을 누리게 해주는 축복의 길입니다! 할렐루야!
“용서에 무림고수”
마마킴||조회 1,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