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땅에서 한국인에게 이루어진 최초의 세례식(잊을 수 없는 신앙선배들의 이야기~박명수저서)
“목숨을 건 세례”
기독교는 중국과 일본을 통해서 한국에 전달되었다. 따라서 한국인들이 복음을 최초로 접한 곳은 중국이나 일본이었다. 이들 나라는 이미 개방이 되었고, 이곳에 가 있던 한국 사람들이 먼저 복음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한국에 선교사 알렌이 도착한 것은 1884 년이며,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온 것은 1885 년이다. 하지만 아직 복음전파의 자유가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복음전파의 문은 서서히, 그리고 분명하게 열리고 있었다. 먼저 복음은 이 땅에 와 있던 외국인들에게 열려 있었다. 외국인들은 치외법권에 있었고, 이들의 종교행위는 정부가 간섭할 수 없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1886 년 4 월 25 일 부활절에 있었던 세례식이다. 이때 선교사들의 자녀인 매리온, 스크랜튼과 엘리스 아펜젤러 그리고 일본인 한 사람이 세례를 받았다.
한국인들은 세례를 받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움트기 시작한 서구종교에 대한 호기심은 법으로 막을 수 없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노도사라고 알려는 노춘경이었다. 그는 우연히 한문으로 된 기독교 배척문서를 읽게 되었고 기독교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그는 선교사들에게 접근하여 기독교를 알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선교사들은 정부가 금하는 일을 하기를 매우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노춘경은 주저 않지 않았다. 그는 전부터 알던 알렌의 통역을 찾아갔다. 알렌 선교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나에게 한문으로 된 성경을 빌려 주십시오. 부탁 드립니다.” 알렌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다. 노춘경은 알렌의 책상 위에 있는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을 몰래 가져와서 열심히 읽었다. 이제 그의 마음속에는 복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기독교 서적을 구해다가 읽었다. 선교사들의 주일예배에도 참예하였다.
“나도 세례를 받고 정식으로 예수 교인이 되어야 해.” 그는 정식으로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기로 작정하였다. 노춘경은 언더우드를 칮아가 세례를 부탁했다. 언더우드는 그에게 세례 문답을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까?” “이 못난 노춘경 때문입니다. 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노춘경은 모든 질문에 분명하게 대답하였다. 언더우드는 마지막으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비장한 질문을 던졌다.
“이 나라의 법이 아직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고 있는데 한번 믿기로 작정한 사람이 마음을 바꾸어 돌아서면 안됩니다.” “내 결심은 분명합니다. 만약 발각되더라도 최후의 경우에는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선교사들은 이 세례 문제에 민감했다. 아펱절러는 자신의 느낌을 1886 년 7 월 24일자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로서는 그 예식이 대단히 진지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한국인들의 분모를 사게 될 위험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삶으로 이끄신 분께서 지켜줄 것을 기도한다.”
이런 논의와 기도의 과정을 거쳐서 1886년 7 월 18 일 주일 해론 선교사의 집에서 노춘경의 세례식은 집례 되었다. 한국 땅에서 한국인에게 이루어진 최초의 세례식인 것이다. 이렇게 조심스럽게 시작된 한국 교회의 세례는 지금 군대에서 학교에서 공개리에 그리고 자유롭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초기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던 목숨을 내건 신앙의 결단은 약해져 가고, 쉽게 세례 받고, 쉽게 신앙을 포기하는 일들이 수 없이 일어나고 있다. 신앙의 가장 큰 적은 오히려 해이한 신앙이다.
“목숨을 건 세례”
마마킴||조회 1,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