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의 전도 (잊을 수 없는 신앙 선배들의 이야기~박명수 저서)”
남장로교의 전라도 선교 가운데 제일 늦게 이루어진 곳이 순천이다. 그러나 순천 선교는 가장 잘 준비된 다음에 시작되었다. 남장로교 선교부는 1912 년 순천에 선교하기로 작정을 하고, 순천에 선교사들이 거할 수 있는 주택을 완비하였다.
1913년 4 월 선교사 다섯 가정과 그리고 세 명의 여 선교사가 이곳으로 이주하여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선교사들은 순천이 조선에서 선교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충분히 확보한 가운데 이루어진 최초의 선교지라고 말한다. 순천 지역의 선교 가운데 구씨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구씨 할머니는 원래 명성황후의 시녀로서 파리 한 마리도 잡지 않을 정도로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그녀는 푸줏간을 지나갈 때는 언제나 특별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에 평화를 얻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왕비는 구씨에게 전라남도에 있는 왕실 소유의 땅을 하사하였고 그의 아들에게는 소작료를 징수하는 책임을 맡겼다.
전라도에 내려와서 살던 어느 날, 구씨는 시골 길을 지나가다가 찬송 소리를 들었다.
“평화, 평화, 놀라운 평화, 하나님 사랑의 선물일세.” 평화는 그가 구했으나 얻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는 친구의 안내로 예배당을 찾아갔다. 교회에서도 찬송소리가 울려 펴지고 있었다.
“큰 죄에 빠진 날 위해 주 보혈 흘려 주시고 또 나를 오라하시니, 주께로 거저 갑니다.”
구씨 할머니는 이 찬송의 가사가 너무 좋았다. 불교는 공덕을 쌓아야 극락에 간다고 가르쳤다. 구씨는 극락에 갈 수 있는 공덕을 쌓고자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배당에서 부르는 찬송가는 “주 보혈 흘려 주시고….주께로 거저 갑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 할머니는 이것은 자신이 찾던 종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구씨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와서 아들에게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술주정뱅이인 아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싫었지만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하는 의미로 교회에 나갔다. 그러나 그에게는 첩이 있는 것이 문제였다. 얼마 후 첩이 세상을 떠나게 되자 구씨는 아들과 더불어서 온 가족이 온전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 후 구씨 할머니는 추운 겨울에 순천에서 광주까지 걸어서 10 일 동안 진행되는 대사경회에 참석하여 기독교의 진리를 배웠다. 사경회에 올 때마다 구씨 할머니는 선교사들에게 말했다.
”누군가가 순천에 와서 우리 마을의 부녀자들을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구씨 할머니는 선교사들이 올 때가지 기다릴 수 없었다. 그녀는 백발의 노인으로 순천 지역의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며 자신에게 평화를 주신 예수님에 대하여 전하였다. 순천에 선교사들이 정착하여 본격적인 선교가 시작되자 가장 기뻐했던 사람이 바로 구씨 할머니였다.
믿음이 좋은 할머니들은 가장 좋은 전도사였다. 김제군 죽산면 대장이 교회의 최씨 할머니의 경우가 이것을 잘 설명해 준다. 복음을 처음 들은 최 할머니는 여기에 참 평화가 있다고 믿고 집에 가서 아들들, 손자들, 며느리들을 전도하였다. 그녀는 과부였고, 그의 아들은 최씨 문종의 장손이었다. 하지만 이 장손을 다스리는 것은 그이 어머니였다. 그의 아들은 교회의 영수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명목상일 뿐 실질적으로 이 교회의 영수는 최씨 할머니였다.
당시 한국교회는 휘장으로 남자 석과 여자 석을 구분하여 놓아다. 어느 남자도 여자 석에 갈 수 없었고 어느 여자도 남자 석에 갈 수 없었다. 하지만 최씨 할머니는 예외였다. 그의 자손 가운데 70 명이 그 교회의 신자였고, 두 아들은 장로였으며, 한 사람은 신학생이었다.
그는 언제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남자 여자 모두 볼 수 있는 자리에 가서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말하였다. 심지어 영수인 아들을 향하여 “영수”라고 부르면서 조목조목 말하곤 하였다. 이 교회의 실질적인 지도자는 바로 최씨 할머니였다.
“할머니들의 전도 (잊을 수 없는 신앙 선배들의 이야기~박명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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