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 1907 년 평양대부흥운동이 다시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공유합니다”(2)
이 날 회개의 포문을 연 사람은 길선주였다. 길선주는 1년 전 세상을 떠난 자신의 친구의 재산을 정리하면서 당시 100달러에 해당하는 거금을 착복한 것이다. 성령께서 그의 심령을 비취시자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날 길선주는 자신이 은혜를 막고 성령의 임재를 막는 아간이라며 많은 회중들 앞에 공개적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그의 회개는 마치 뇌관에 불을 당긴 것처럼 그곳에 모인 온 회중들의 회개로 이어졌다. 그 현장에 있었던 이길함은 다음날 어제의 성령의 역사를 보고하면서 어제 있었던 그 집회는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 없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15일 조지 매큔 역시 놀라운 성령의 임재가 현시했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미국 북장로교 총무 브라운에게 보고했다.
"우리는 매우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권능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장대현교회에서 모인 지난 밤 집회는 최초의 실체적인 성령의 권능과 임재의 현시였습니다. 우리 중 아무도 지금까지 이전에 그와 같은 것을 경험하지 못했으며 우리가 웨일즈, 인도에서 일어난 부흥 운동에 대해서 읽었지만 이번 장대현 교회의 성령의 역사는 우리가 지금까지 읽었던 그 어떤 것도 능가할 것입니다."
그 현장에 있던 선교사들이 이구동성으로 고백하는 것처럼 자신들이 처음 경험하는 놀라운 성령의 임재의 현시였다. 15일 선교사들은 정오에 모여 어제 있었던 그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그곳에 참석한 선교사들 가운데서도 하늘 문을 여시고 성령을 부어주셨다. 선교사들 가운데 놀라운 회개의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만약 한국인들에게만 성령이 임했다면 평양대부흥은 반쪽만의 부흥일 것이지만 성령께서는 선교사들 가운데서도 똑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던 것이다. 이들은 마지막 남은 15일 저녁에도 성령의 역사가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은혜를 사모하며 기도하기는 한국교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기도를 외면치 않으셨다.
15일 저녁 집회는 이미 집회가 시작되기 전 영적 분위기가 이전과 달랐다. 이날 말씀을 전하는 길선주의 얼굴은 거룩함으로 불타고 있었고, 그의 메시지를 들은 동료 장로의 증언을 빌린다면 그의 얼굴은 길선주가 아니라 예수였다. 그가 회개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그날 그곳에 모인 이들은 말씀 앞에 부복하여 자신들 안에 은밀하게 숨겨진 온갖 죄악들을 다 토로하였다.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 앞에 한 올의 죄악도 숨길 수 없었다. 사람이 지을 수 있는 모든 죄들이 그날 공개적으로 고백되었다.
장대현교회에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임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평양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숭덕학교와 숭현여학교에서도 회개를 동반한 성령의 역사가 임했다. 장대현교회는 사경회가 끝났는데도 16일 수요일 기도회 때, 다시 20일 주일 예배 때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계속되었다. 평양 장대현교회의 성령의 소식은 곧 평양 전역으로, 다시 한반도 전역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갔다.
평양의 남산현감리교회에 임한 성령의 역사를 직접 목도한 노블 선교사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이렇게 보고했다.
"우리에게는 한국교회에 내 자신이 지금까지 목격하지 못했고, 듣지도 못했던 가장 놀라운 성령의 부어주심의 현시가 있었는데, 아마도 사도시대 이후 이보다 더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의 현시는 없었을 것입니다. 매 집회에서 주님의 권능(the slain)이 교회 전체와 때로는 밖에 임했습니다. 남녀가 회개의 역사로 고꾸라지고 의식을 잃었습니다. 전 도시는 마치 사람들이 죽은 자를 위해 통곡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평양시내 전역에 성령의 불길이 타올랐다. 그 부흥의 불길은 교파를 초월하여 평양시내 교회들로 확산되었고, 평양시내 거의 모든 미션스쿨들도 놀라운 부흥을 경험했다. 특히 숭실대학과 평양장로회신학교 개강 사경회 때 강력한 성령의 임재가 현시되었다. 이것은 장차 한국교회를 이끌어 갈 젊은이들과 목회자들을 영적으로 무장하고 새로 조직될 한국교회를 축복하시려는 비상한 성령의 섭리였다.
장대현교회에 임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길선주, 헌트, 블레어, 이길함, 스왈른, 편하설은 부흥의 불을 가지고 한반도 전역으로 흩어졌고, 성령께서는 이들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한반도 전역에 부흥의 불을 지피셨다. 특별히 길선주는 평양대부흥운동의 불을 전국으로 가지고 간 주역이었다. 길선주는 제일 먼저 서울로 달려가 승동(勝洞), 연동(蓮洞), 수구문(水口門), 상동(尙洞), 제교회(諸敎會)에서 집회(集會)를 인도했고, 그가 인도하는 서울 집회마다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임했다. 헌트를 통해 대구에서도 강력한 영적각성운동이 일어났다. 곧 서울, 대구, 대전, 공주, 신의주, 선천 등 전역에서 부흥의 불길이 솟아올랐다. 이 부흥의 불길은 다시 만주와 중국으로 놀랍게 번져나갔다.
“한국교회에 1907 년 평양대부흥운동이 다시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공유합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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