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국에 현대역사를 바꾸고 복음을 심어준 선교사님들에게 빚을 갚는 마음입니다”
우리나라를 전혀 다른 나라로 바꾸어준 선교사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빚을 갚는 마음으로 외국인들을 공부시키고 자국으로 파송해서 여러나라에 교회, 고아원 학교들을 세워서 운영하며 지원하는 것을 홀리네이션스에서 하는 주요사역입니다. 그렇게 하도록 성령님께서 인도하셨습니다.
~~전에 샤워드 홀이 쓴 조선회상, 인도회상 책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아서 우리 외국인 학생들하고 양화진을 찾아가서 우리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사진은 이 가족들의 묘지앞에서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그 가족들을 통해서 선교사로서 배우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쓴 조선회상, 인도회상 외에 엄마 닥터 로제타 홀 책을 자세히 읽으면서 마치 선교사 수련회에서 배우는 마음으로 자세히 정독을 하면서 같이 공유하고 싶기에 글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더 무서울까요? 결핵이 더 무서울까요?” 저가 요즈음 많이 묻는 질문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결핵”이라고 답을 합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셰계를 휩쓸고 죽음으로 몰고 하는데 전에는 결핵이 그렇게 죽음으로 끌고 갔습니다. 우리나라는 전에는 “결핵”이라는 병은 현대의 “암”처럼 무서워하는 병이었습니다. 한데 암은 주위 사람들에게 전염이 되지 않는데 “결핵”은 전염이 되기에 “결핵”이 걸리면 주위 사람들도 피해야 하고 격리해야 하기에 더 비참했습니다. 그 당시 결핵에 다른 이름이 망국병이었습니다.
이 망국병을 사라지게 한 이 가족의 이야기는 결핵 퇴치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기여한 헌신은 정말 하나님의 빛을 들고 왔기에 가능한 놀라운 역사의 장을 바꾼 가문이었습니다.
먼저 한국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결혼하고는 2 년밖에 가족과 살지 못하고 당시 퍼져있던 빌진티푸스에 걸려서 일찍 천국으로 간 남편 윌리암 홀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가장 짧은 전기를 쓰라고 한다면 ‘예수는 선한 일을 하려고 홨다’는 한마디로 표현할수 있다. 닥터 홀은 자기의 주인, 예수가 행한 것처럼 날마다 고통 받는 사람들의 아픔을 낫게 해주고 걱정을 덮어주고, 눈물을 닦아 주고, 밝고 더 나은 생활로 인도하는 데 몰두했다. 그는 철학적, 신학적인 이론을 캐는 데 시간을 낭비하기 보다는 상냥함과 사랑을 나눠주는 행동의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질문하는 동안 그는 일했다.”
닥터 홀은 한국에 오기 전에 뉴욕에 빈민가에서 병든 사람들을 도왔는데 한 유태인 환자는 벅찬 감정에 말을 더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닥터 홀은 오랫동안 우리는 계속 찾아 주었습니다. 그는 휼륭한 분입니다. 돈을 받지 않고 우리를 치료해 주었으며 먹을것을 가져와서는 무릎을 꿇고 우리 모두룰 위해 기도해주곤 했습니다”.
아들 샤워드 홀은 아버지 윌리암 홀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을 했습니다. “1890 년 7 월 어느 여름 날, 당시에 젊은 의사였던 나의 아버지 윌리럼 홀은 뉴욕의 빈민가에서 130 명의 소년소녀들을 2 주 동안 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데려와 야영을 했다. 뉴욕 메디슨 거리 선교회의 동료 11 명과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갔든데 당시만 해도 빈곤층 자녀들의 야외 켐핑을 즐기는 일은 드문일이였는데 무려 800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으로 데려와 전원 생활의 놀라움을 소개한 것이다. 이 청소년들은 심지어 말이나 소를 구경도 못할 정도로 가난했다.”
평양과 한양 600 km 를 아주 다리가 아플때는 조랑말을 탔지만 걸어서 평양까지 오갔다. 더군다나 먹을것이 마땅치 않아서 어떤때는 하루에 한끼 식사를 한적도 있었다. 그런데도 환자들을 돌보면서 윌리암 홀은 이렇게 말을 했다. “닥터, 나는 이 일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한평생을 이렇게 살수 있었으면 합니다.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게 정말 좋습니다.” 윌리암 홀이 스크랜턴 박사에게 한말이었다. 너무 지쳐서 피곤한다고 불평을 해도 모자랄 판에 그는 오히려 이렇게 행복에 겨운 말을 해서 스크랜턴 박사는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이런 남편과 평양을 오가며 한번씩 한양으로 와서 잠시 지냈기에 실지 두부부가 같이 지낸 시간은 얼마나 짧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 첫째 아들 샤워드 홀의 여동생 이디스를 임신중이어서 그 애기를 낳고 하나님의 위로라고 하면서 살다가 사랑스러운 아기를 역시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 슬픔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슬픔에 좌절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조선에 이룬 것은 도저히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로 로제타 홀은 이룩하였습니다.
이화 학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최초의 의사를 키우고, 오늘날 고려대학교 의과대학과 이화여대 부속병원의 기반을 마련했으며, 최초로 맹아학교를 세우고 한글 점자를 만들어 앞 못 보는 소녀들을 교육하는 등 이야기는 감탄 그 자체였습니다.
남편과 사랑하는 딸을 먼저 천국으로 보내는 일도 가슴이 너무나 아팠을 터인데 이렇게 가르쳐서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에서 공부한 여의사를 키웠는데 박에스더 라는 의사가 34 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 보내는 슬픔은 얼마나 컸을까요? 한데 이모처럼 따르고 한 식구처럼 좋아했던 에스더 이모가 결핵으로 떠나는 것을 보고 아들 샤워드 홀은 결핵 퇴치하는 의료 선교사로 다시 헌신을 했습니다.
1890 년 한국에 와서 한국에서 2 대에 걸쳐 77 년 동안 의료선교사로 헌신한 홀 선교사님 가족은 한국의 근대사를 이해하는데 반드시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이야기입니다. “치유하고, 가르치고, 전도하라!!” 이런 순서로 이룬 이야기입니다.
“우리 조국에 현대역사를 바꾸고 복음을 심어준 선교사님들에게 빚을 갚는 마음입니다”
마마킴||조회 1,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