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장애우를 돕는 이희야(4)”
“자선 음악회에 많은 분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공연장을 가득 메워준 천사 같은 여러분이 안 계셨다면 오늘의 연주는 없었을 거예요” 연주를 마치고 나는 관객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이제 공연이 끝나고 나는 250 대의 휠체어를 북한에 전달 할 수 있었다. 엄마는 “아산상 효행가족상”을 타고 받은 상금까지 북한에 보낼 휠체어를 사는데 전액 기부했다. 나는 앞으로의 내 끔을 인터뷰에서 이야기 했다.
“장애인 최초로 평양 공연을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북한 장애우 들에게도 희망을 전해주고 싶어요.” 그것은 내 오랜 소망이었다. 나는 음악회에서 북한의 장애우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북한 장애우들을 만나 진실된 사랑을 나누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기에도 희아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온 세상이 장애우들에게 살기 편한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동포인 북한의 장애우들에게 제 연주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제 가까이에 있는 북한의 장애우들에게 제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특히 연주곡 가운데 ‘아리랑’과 ‘도라지’는 북한 피아니스트 작곡가 전권 선생님이 편곡한 작품이어서 온 마음을 다해 애정을 담아 연주하려 합니다.”
나는 네 손가락에 힘을 주고 약속대로 온 마음을 실어 연주를 했다. 그 마음이 전해졌는지 연주가 끝나자 사람들이 큰 소나기 박수를 보내주었다.
유진 박 오빠의 전자 바이올린 독주도 아름다웠다. 음악회를 마치면서 우리는 다 함께 입을 모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했다. 나는 이따 공연 ‘북측 장애인 돕기 자선음악회’를 지금도 잊지 못할 감동의 무대로 기억한다.
나는 또 중국을 비롯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장애우들의 인권 보장이 잘 되지 않는 나라에 가서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공연도 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뒤에 나는 중국에 가서 콘서트를 하게 되었다.
북한은 다른 나라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면서도 철저히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지원하는 휠체어만은 예외였다. 남한의 피아니스트 이희야가 보낸 휠체어라고 하면 문제없이 국경을 통과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내 진심을 받아 주는 북한이 고마웠다. 그래서 더 열심히 모금 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연주회를 할 때마다 내 책을 판매해서 얻은 수익금을 휠체어를 마련하는 기금으로 확보한다. 힘들게 준비한 공연을 바치고 책 사인회 까지 하려면 솔직히 무척 고단하다. 두 개의 손가락에 볼펜을 끼우고 하나하나 사인을 하다 보면 손이 어느새 퉁퉁 부어 올랐다. 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진 줄을 보며 공연 기획자가 조용히 속삭였다.
“저 사람들에게 모두 사인을 해주고 나면 희야 양이 몸살이 날 거예요. 이제 사인을 그만하는 게 좋겠어요. 나는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그럴 수 없어요. 저도 연예인 사인을 못 받아서 온종일 섭섭했던 적이 있었어요. 제 사인을 기다리는 분들께는 다 해 드릴래요. 걱정하지 마세요. 전 튼튼하니까요.”
나처럼 몸이 불편한 북한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내가 조금 힘들고 지친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보란 듯이 내 책과 음반을 들고 걸어오는 소녀를 안아주었다. 순간 소녀의 엄마가 찰칵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 순간에도 이런 사소한 행복조차 나눌 수 없는 북한의 어린이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남이 아니다. 우리가 함께 해야 할 가족들이고 친구들이다. 북한 어린이들에게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들려줄 수 있는 그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북한의 장애 우들에게 내 사랑의 전율을 전하고 싶다.
“북한 장애우를 돕는 이희야(4)”
마마킴||조회 1,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