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슈바이처, 강원희 선교사”
히말라야 슈바이처의 저자 강원희 선교사는 49 세의 젊지 않은 나이에 의료 선교를 떠나 80 세인 지금까지 의료 선교에 온 힘을 다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강원희 선교사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의 빚을 어떻게 갚으며 살까?” 라고 고민하다가 의료 선교를 떠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세브란스의과대학(현 연세대학교) 시절부터 무의촌 의료 봉사에 힘썼던 강원희 선교사는 1982 년에 잘되던 병원을 정리하고 선교사라는 사명을 따라갔습니다. 처음에 네팔에 갔는데 그 이유는 고 한경직 목사의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강원희 선교사는 네팔에서 10 년을 보낸 뒤, 방글라데시에서 4 년, 스리랑카에서 4 년, 에티오피아에서 7 년을 보내며 약 30 년간 의료 선교사로 봉사했습니다. 네팔에서는 자신의 피를 수혈해 가면서까지 환자를 살려내어, 이를 본 현지인들은 강원희 선교사를 “바레”(네팔어로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친할아버지처럼 따른다고 합니다. 강원희 선교사는 책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술이 끝난 다음 환자가 쇼크에 빠졌는데 수혈 가능한 피가 준비 되어 있지 않았어요. 얼른 내 피를 뽑아서 검사해 보니 환자와 혈액형이 맞아서 두 병을 뽑아 줬죠. 때로는 너무 힘들어 ‘하나님 데려 가십시오’ 라고 기도하기도 하고, 현지인들에게 맞아 죽을 뻔 하기도 했지만 행복한 인생을 살았어요.”
신앙과 함께 강원희 선교사에게 힘이 되어 준 것은 늘 함께해준 아내 최화순 권사였다고 합니다.
“연세대학교 간호대학을 졸업한 아내는 고아원 봉사를 열심히 하던 예쁜 간호사였습니다. 아내가 없었다면 저 혼자서는 못했을 거예요.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마음이 저보다 더 나아요”
강원희 선교사는 60 대 까지만 해도 웬만한 산은 두 개 씩 넘으며 의료 봉사를 다녔지만 요즘은 산 하나도 못 넘는다고 하면서도 85 세까지는 의료 봉사를 할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강원희 선교사는 “노인들도 자신의 달란트를 쓸 길이 얼마든지 있다”고 말하며, 의료 봉사가 끝나는 시점에는 또래 노인들과 함께 모임을 결성해 의미 있는 일을 찾아 사회에 봉사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주변에서 인제 그만 쉴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권고를 들으면서 강원희 선교사는 다시 네팔로 떠나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날개 치는 독수리 같은 힘을 다시 주셨고 지금 마음 같아서는 참으로 10 년은 족히 더 사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섬기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그렇게 섬기다가 그곳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겠지요.
살아도 천국이고, 부르시면 정말 천국에 사는 일이지요.
연세대학교에서 매년 '연세를 빛낸 동문'을 선정하여 수상을 하는데 올해 강원희, 최화순 선교사님 두 분이 '연세를 빛낸 동문상' 수상자로 선정이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강원희 장로님께서는 이미 지난 2012년에 이 상을 받으셨고, 최화순 권사님도 별도로 ‘연세를 빛낸 동문상’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부부가 함께 수상'하게 되면서, 연세대학교 역사상 유례가 없는 진기록을 세우신 겁니다.
이번 인터뷰에서 장로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확실히 붙들면 세상에 더 바랄 것이 없다.'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람이 곧 성공한 사람이라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빚진 자’라는 의식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강원희 장로님처럼 ‘빚진 자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히말라야 슈바이처, 강원희 선교사”
마마킴||조회 1,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