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빈민의 성자 일본인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님”(순전한 감사 넘치는 은혜~~이영훈 저서)
‘청계천 빈민의 성자’라 불리는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님을 아십니까? 일본인으로 1960 년-1970 년대에 한국의 청계천 판자촌 일대에서 도시 빈민선교를 펼친 특별한 분입니다.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친척집에 얹혀살며 외롭게 자랐습니다. 하지만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교회학교에서 신앙의 뿌리를 다졌습니다. 수의과대학교 재학시절에 한국 유학생을 만났는데 그 한국인과의 교재를 통해 한국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했습니다. 훗날 미국에 유학을 갔을 때 일본인인 그가 동양인이라고 미국인으로부터 차별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일을 계기로 일본이 한국인을 차별했던 과거를 생각하게 됐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한국인을 돕고자 1968년 노무라 씨는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한국은 급격한 산업구조의 변화로 도시의 빈부격차가 아주 심각했습니다. 그는 청계천의 빈민촌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악취와 소음, 공해에 더하여 도저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절망에 처한 사람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1974년 김진홍 목사님의 안내로 청계천 빈민가의 한 집을 방문 했을 때의 일입니다. 창문도 하나 없는 캄캄하고 어두운 방에서 “우~”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너무나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참 후 보이기 시작하는데 어린 소녀가 누워서 죽어가고 있었는데 살펴보니 소녀의 옆구리에 난 큰 상처에서 구더기들이 살을 파먹고 있었는데 파리 떼가 날아들어 그 상처에 구더기를 낳은 것입니다.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 하는 소리가 파리 떼가 벌떼처럼 달려들어서 그 상처 부위를 뜯어먹는 소리였던 것입니다. 즉시 김진홍 목사님과 함께 그 구더기들을 손으로 잡아낸 후에 상처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두 달이 못되어 그 소녀는 죽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는 소녀의 죽음을 보고 이런 고백을 합니다. “그 소녀의 죽음, 그 눈동자는 저에게 숱한 질문을 던지게 했습니다. ‘나는 평생 누구를 위해 살 것인가? 어떤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는 인생인가? 예수님께서는 그 소녀를 통해 제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 소녀의 눈동자를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이 소름이 돋습니다. 그는 소녀가 죽어가며 그 맑은 눈동자로 무언가 호소하는 것 같은 모습을 늘 기억하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버림받은 자를 위한 친구가 되리라고 결심합니다. 강도나 깡패 매춘부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전했습니다.
특히 해외의 여러 나라에서 모금 운동을 펼쳐 1974년부터 1994년까지 20 여 년 동안 2 천명이 넘는 빈민 아들들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하는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그는 또 도쿄에 있는 자신의 집을 팔아 청계천에 탁아소를 지었습니다. 간척지로 옮겨간 철거민들을 위해서 뉴질랜드에서 종자 소 600 마리를 사오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까지 50여 차례 일본과 한국을 오고 가면서 송금한 액수만도 7500만엔 8 억 원이 넘습니다.
그는 산골의 조그마한 교회를 섬기면서 검소한 삶을 삽니다.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님은 죽어서도 한국에 뼈를 묻길 원한다는 소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그 죽어가는 소녀의 눈망울을 통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 청계천 빈민들은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보내신 성경 교사들이었습니다. 지옥과 같은 그곳에도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고 희망이 있고, 오순도순 서로 돕고 살아가는 정이 있었습니다. 그곳이야말로 제게는 가장 훌륭한 천국의 모형이었습니다.
앞으로도 한국인을 위해 이 섬김과 나눔을 계속할 것입니다.
(우리는 일본인 하면 우선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는데 이런 예수님 닮은 일본인 목사님 이야기는 처음 책에서 읽어본 이야기이기에 너무나 감동이었습니다.)
“청계천 빈민의 성자 일본인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님”(순전한 감사 넘치는 은혜~~이영훈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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