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진에 선교사들의 묘지에서 다짐한 선교사역”
양화진에 여러 번 가서 그분들의 묘지에서 또한 그분들이 쓴 책을 통해서 우리는 그분들의 생명을 바친 헌신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참으로 감사하면서 우리 홀리네이션스 선교회도 조금이라도 그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 선교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해외에 고아원도 짓고 미션 스쿨도 짓고 여러 나라에 교회도 짓고 외국인들에게 무료 의료서비스 무료 숙식 제공하는 쉼터운영 그리고 장학사업을 하여서 현지인을 키워 파송하는 일을 그분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복음의 사랑을 전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 다시 그분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감동스러워서 같이 공유하고 싶습니다.
양화진에는 10개국 395명의 선교사와 그 가족들의 묘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 하시니 조선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이 땅까지 와서 그 삶을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당시에 아이를 낳았지만 먹을 것이 없어 산모는 영양실조에 시달려야 했고 젖이 나오지 않아서 아이가 죽어갔습니다. 풍토병에 죽어간 무명의 선교사님들, 자신의 병든 아이를 돌보는 대신 가난에 울부짖는 백성을 향해 복음을 전하고 돌아오니 아이가 죽어 있는 선교사님도 있었습니다. 이런 순교적인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 놀라운 기독교의 부흥이 다가온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는 책에는 양화진에 묻혀있는 선교사님들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양화진에 첫 번째로 묻힌 사람이 바로 존 해론선교사입니다. 미국 테네시 종합대학의 의과대학에서 개교 이래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뛰어난 인재였는데 어느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제 준비가 다 되었으니 땅 끝으로 가라” 어느 날 선교보고를 담은 잡지에서 조선인 이수정의 편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미국 사람들이여! 조선에 선교사를 보내주시오! 조선 백성들은 아직도 문명의 밝은 세계를 모르고 암흑 세상에서 깊은 잠에 빠진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는 1885년 6 월 21 일 제물포항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의 제 2 대 원장이 되어 병들고 가난하고 헐벗은 많은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진료가방을 들고 온 지역을 다니며 병을 고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다가 너무 과로해 그만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1890 년 7 월 24일, 한국에 들어 온지 5 년 만에 이질에 걸려 34 살의 젊은 나이로 아내와 어린 두 딸을 남겨두고 주님 품에 안깁니다.
“선교와 관련된 사람 145 명 가운데 선교사가 90 명(남 36명, 여 54 명, 가족 55 명이다. 어릴 때 묻힌 자녀들 45 명이 적지 않고 여 선교사가 남 선교사보다 더 많이 묻혀 있다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이 길은 사실에서 기후와 풍토가 맞지 않아서 외지에서의 선교 사역이 여성과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 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들 선교사님들의 비문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H.B. 홀버트)
“만일 내가 줄수 있는 천개의 생명이 있다면, 모두 조선을 위해 바치리라 R.R. 갠드릭)
“나는 한국에 나의 뼈를 묻을 각오로 온 사람이었습니다. (G.H.루)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람이 없느니라.(A.K. 잰슨)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습니다. (A.R. 아펜셀러)
루비 캔드릭 선교사는 택사스의 한 선교단체에서 후원을 받아 한국에 왔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한국에 가면 목숨이 위험하다고 울면서 말리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한국에 와서 1 년여 헌신 하던 중 급성 맹장염에 걸려 25 세의 젊은 나이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편지를 부모님께 남겼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어쩌면 이 편지가 마지막일 수고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오기 전 뒤뜰에 심었던 한 알의 씨앗이 자라서 이제 내년이면 온 동네가 꽃으로 가득하겠지요. 그리고 또 다른 씨앗을 만들어 내겠지요. 저는 이곳에서 작은 씨앗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씨앗이 되어 이 땅에 묻히면 조선 땅에는 많은 풀들이 피고 그들도 여러 나라에서 씨앗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땅에 저의 심장을 묻겠습니다. 저는 조선을 향한 저의 열정이 아니라. 조선을 향한 하나님의 열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는 또 죽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만일 내가 죽거든 텍사스 선교본부에 연락을 해서 청년들 열명, 스무 명, 수십 명이 나를 대신하여 이 한국에 오게 하라” 그의 마지막 유언을 듣고 그 자리에서 20 명 청년들이 선교사로 자원했다고 합니다.
이분들의 묘비에 쓰여있던 위에 소개된 글귀들을 읽으면서 너무나 감동받았고 그분들은 이미 떠나서 천국에 갔지만 그분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 사랑의 빚을 갚도록 감동을 주어서 홀리네이션스는 세계를 향해서 사랑을 갚고 있습니다. 우리 선교회 홈페이지 사진은 로제트 홀 가족 묘비 앞에서 외국인 학생들과 찍은 사진을 올려 놓았습니다. 늘 잊지 않고 그 사랑을 다시 세계로 향해서 갚아나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귀한 하나님의 심복들을 우리 나라에 보내주셔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양화진에 선교사들의 묘지에서 다짐한 선교사역”
마마킴||조회 1,6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