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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와 요한의 편지”

마마킴||조회 1,570
“디모데와 요한의 편지”

사랑하는 어머니께,
청명한 가을은 그 어느때 보다도 말씀 묵상과 책을 읽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은 덥지 않게  그렇다고 춥지도 않아서 너무나 좋은 것 같고 저는 그런 이 시간이 더욱 감사하게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어제는 열왕기상에 이어서 열왕기하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운이 좋게도 열왕기 하 말씀을 묵상 하였을때 어머니께서 보내주셨던 책의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기 내용에서 관련 구절의 많은 뜻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제는 감사하게도 새로이 뜻을 되새기며 말씀 묵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평소라면 깊이 있게 생각하지 못했을 그런 구절의 말씀을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책 덕분에 이제는 말씀을 깊이 있게 대할 수 있게 되여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머니께서 보내주시는 책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보다 말씀 묵상을 깊이 있게 볼 수 있도록 해주며 무엇보다 ‘발견’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오늘은 구절의 뜻을 다시 새기게 되었던 열왕기하 5 장 1~14덜의 말씀을 같이 공유하고자 내용을 적어봅니다. 우선 본문의 내용을 간단히 추리면 이렇습니다. “지금까지 세상 부귀와 권세를 누리며 남 부럽지 않았던 나아만 장군이 자신의 병(나병)으로 인해 절망하고 있을 때 이러한 상황가운데 기쁨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포로로 잡혀와 집안 일을 돕고 있는 소녀가 자신의 고향에 살고 있는 선지자를 만날 수만 있다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얘기한 것입니다. 이때 나아만은 자신의 왕을 만나 허락을 받고 왕의 친서를 들고 이스라엘왕을 찾아 갑니다. 어렵사리 엘리사를 만나긴 했지만 그의 종 게하시가 나와서 요단 강물에 들어가서 일곱번 목욕을 하라고 하고,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강에 들어 갔다 나왔더니 깨끗하게 나음을 얻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그러나’ 의 인생이다. 화려한 듯 하지만 썩은 냄새가 그 속에 도사리고 있다. 지혜로운 듯 하지만 가장 소중한 것을 알지 못하고 허둥대며 살아간다. 온전한 듯 하지만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이것이 바로 나아만의 문제이자 우리의 문제이다. 겉은 화려해 보이나 속이 썩어 있다. 행복해 보이나 거짓된 웃음 일수 있다. 마음 문을 꼭꼭 닫아건 채 아무도 용납하지 않으며  앞서 받은 상처가 아물어도 전에 또 다른 상처를 받으며 살아간다. 이게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내 힘의 결단으로는 자를 수 없는 무력한 자신데 대한 배신감! 바로 이 ‘그러나’의 존재가 인간이다.

나아만은 엘리사 선지자를 만나러 오면서 은 십달란트, 금 육천개와 의복 열벌을 싣고는 거대한 부대를 거느리고 왔다. 현 시대로 계산 하면 약 10 억 이상에 달하는 돈이다. 자신의 이력과 명함과 직분으로 이 문제를 해결 하려고 한것이다. 병을 고치려 오는 사람에게 이런 거창한 인간적인 껍질이 필요 했을까? 우리의 이력서가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생각인가? 내가 이만큼 오래 믿었는데 내게 이만한 직분이 있는데, 내게 이만한 사회적 지위가 있는데, 이만큼 배웠는데 이렇게 예수를 믿고서도 교회 안에서 전혀 변화되지 못한 인간적인 방법과 자기 과시가 활개를 치고 있는 않는가? 나아만의 얼굴이 나만을 주장하는 나만의 얼굴은 아닐까?  단호히 선언하고 주님을 만나자,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이력서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신앙 생활에 계급장이 있을 수 없다. 수레 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도 아니다. 훈장 달고 가는 것도 아니다. 거창한 옷을 벗어 던질 때에야 비로서 하나님은 나를 만나 주신다. 단호하게 선언하자. 한 분으로 벗은 몸으로 나아가야 한다. “왕하5: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 이 잘못된 나아만의 생각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엘리사, 곧 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주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관심 대신 인간 엘리사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인간 엘리사가 자기를 치료해 주고 자신에게  존경을 보여줄것을 기대하고 찾아왔다. 그러나 엘리사가 제안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다.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번 씻으라’할 때 나아만은 그 말씀을 붙들고 감사하고 감격하며 요단강으로 달려가 몸을 던지며 하나님앞에 반응 했어야 옳은 것 아닌가?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아만은 그러하지 못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다가 상처받고 실망하며 오늘도 초라하고 왜소한 신앙을 갖고 사는 제 2 의 나아만이 우리 곁에 얼마나 많이 있는가? 하나님의 복된 자리에 임하기 위하여 나아만은 엘리사의 냉담한 대우를 감수해야만 했다.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 장군 나아만이 아닌 인간 나아만과 만나고자 하셨다. 눈에 보이는 질병인 나병보다 더욱 심각한 속의 교만을 치료하기 원하셨던 것이다. 나아만 장군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기 위해서는 곧은 목을 꺾고 위엄 가득한 복장을 벗어 던지고 승전국의 장군이 아닌 한 죄인의 인간의 자세를 가져야 했다. 지금까지 뒤집어 쓰고 살던 껍질을 벗기기 시작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계급장으로  꾸며진 나아만의 신앙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선 어린아이 같은 신앙을 원하신다. 승리자 군대장관이 아닌 실패자 인간을 발견 하기를 원하신다. 껍질을 벗고 나면 자신이 한낱 피조물임을, 허물 투성이, 모순 투성이, 한 낱 약한 인간에 불과함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그때가 비로소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 주신다. 그때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기 시작하신다. 껍질을 벗으라! 장군이 아니라 어린 아이가 되어러!

인생을 살아가던 어느 날 문득 당신에게 아픔이 찾아왔는가? 막다란 골목에 서서 쩔쩔매며 당황했던 경험이 있는가? 지금도 당신의 삶의 환경이 모진 고통과 아픔 가운데 있는가? 하나님의 손길이 지금 당신을 어루 만지고 계심을 믿으라. 하나님의 손길을 거절하지 말라. 나를 다듬고자 하시는 그 사랑의 손길을 외면하지 말라. 아파도 있는 그대로 내어 놓으라. 실천 과정에서 오는 회의와 유혹이 있었다.

어머니! 늘 보내주신 책 덕분에 말씀을 더욱 깊이 있게 배우게 되어서 감사드립니다. 늘 기쁨으로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배워가고 싶습니다.  많이 많이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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