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진복교회 조인숙사모간증 (3)”
저를 이곳에 와서 주일학교와 중 고등부 교사가 없으니 사모인 제가 그 일을 감당했는데 학생들을 사귀어 전도하기 위하여 학교 길에 찐빵을 전날 아랫목에 발효 시켜 만들어 집에 가기 전에 교회에 들이게 하여 나누어 주고 저녁에는 라면을 한 솥 끓여서 찬송을 배우며 나누어 먹었는데 성전 건축 중 축대를 쌓아야 하는 일이 있어 돌이 필요하든 소리를 들은 이들이 이곳 저곳에서 학교 길에 자전거에 돌을 실어 넉넉히 감당하는 기쁨의 노역도 있었습니다. 그 들이 성장하여 교회 청년으로 지내다 지금은 40~50 대가 되었고 도시로 전출하여 각 교회에서 충성하다 명절이 되면 고향 방문 시 잊지 않고 인사차 들리곤 합니다.
영적 자녀와 같은 그들이 모 교회를 찾아 모면 저희는 200평 텃밭에 이것저것을 심었다가 돌아갈 때 빈손으로 보내지 않고 그들은 저희 가정에 필요한 생필품을 선물로 들고 왔기에 두번의 성전 건축과정 기간 동안 사례비를 모든 건축헌금으로 드렸고 농촌 교회의 재정 형편과 성도들의 마음을 헤아려 지금도 지극히 작은 최저의 액수로 생활비를 받지만 궁핍힌 것 같으나 부요 했고 넉넉하진 않지만 부족하지 않고 감사하며 살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가계부를 매일 점검하시는지 늘 현찰은 없으나 빌리지 않게 하셨고 무언가 필요하면 까마귀를 통하여 엘리야를 먹이시던 것처럼 채우시고 입히시고 위로하셨습니다.
30년 전 어느 날 목사님이 해남에 어려움을 겪으시는 목사님 댁을 다녀 오겠다고 하시면서 쌀독을 탈 탈 털어 한 말을 채우니 저희는 저녁 먹을 거리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9 월 쯤이고 현찰이 있다고 해도 쌀을 사려면 버스를 타고 30 분을 가야 할 전도의 시골이기에 저는 서운했지만 돌아오실 때까지 라면으로 버틸 생각으로 불만이 많지만 먼 길 가는 사람이기에 말없이 보내드렸습니다.
목사님이 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분이 차에서 금방 도착한 쌀 한 가마니를 저희 집 앞에 놓기에 물어보니 교회 고온순 집사님께서 마지막 남은 벼를 도정하여 목사님 가정에 한 가마니를 보내달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보통 추수를 해야 쌀을 주시는데 추수를 하려면 한 달은 남았기에 생각도 못한 일인데 집사님 마음에 지금쯤 쌀이 떨어져서 힘들지 않으실까 싶은 마음이 갑자기 들어 부랴부랴 정미소에 부탁을 했다는 것입니다. 쌀이 떨어졌음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은 저의 순종을 보셨는지 다 마련하여 주시는 것을 계시고 그 뒤 목사님이 하시는 일에 말없이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첫 예배당을 짓고 함께 하던 주민들이 하나, 둘 전도 되어 성도가 되고 그 당시 부흥회를 하면 주변에 있는 교회들이 교파를 초월하여 함께 하는 미덕이 있었는데 저희 교회에서 부흥화를 하자 여러 교회들이 참석하고 동네 주민들은 교회에서 잔치를 하니 협조해야 한다면 다 참석하여 주는 일이 있었고 30 성전이 부족하여 교회 마당까지 자리를 마련해야 할 정도로 모인 일이 계기가 되어 저희는 2 차 성전부지를 마련하기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속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말씀처럼 갑자기 형제자매가 있는 서울로 가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막상 딸아이가 성장하니 교육도 서울을 가면 이 시골에 있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는 마귀의 속삭임도 한몫을 했습니다.
저희 교회 권사님과 집사님들은 참으로 순수하고 겸손하고 좋으신 분들이었습니다. 많은 재물은 없고 많이 배운 학식은 없지만 목사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며 철없는 사모를 딸처럼 감싸고 보살피고 기도하며 따라 오셨습니다. 새벽에 강단에 자녀분들이 가져온 과일이며 생활 품들을 아무도 모르게 두고 가시고 당신들이 힘들게 지은 농산물은 물론이고 모든 것에서 저희를 우선으로 섬기시던 어머니 같은 분들입니다. 지금은 하나님 나라에서 편히 계시지만….그런 그분들을 뒤로하고 저는 도망 갈 생각을 요나와 같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할 일이 남았다고 망설이는 목사님을 딸아이 교육을 핑계로 설득하여 서울에 청빙 자리가 생기자 답사하러 차를 몰고 올라오던 중 고속도로에서 8 차선 도로난간 밖으로 30 미터를 날라가는 대형 차량 사고가 생겼습니다. 저는 며칠 먼저 딸 이이와 함께 올라가 서울 친척집에 있었는데 엄미가 청심환을 가져오더니 무조건 먹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문을 몰라 하는 저에게 청심환을 먹인 언니는 목사님이 서울로 도던 중 교통사고가 났는데 생사를 모르고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은 형부가 지금 확인 차 내려 갔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었는데 한 발자국도 옮길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얼어붙고 정신이 혼미했습니다. 그때 저도 모르게 입에서 “주여 살려만 주시면 저희 평생을 그곳에서 봉사하며 섬기며 주의 일 감당 하겠습니다”라는 기도가 나오고 용서를 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용서 하셨습니다.
얼마 후 시간이 지나자 목사님이 현관문을 열고 털끝 하나 다지지 않고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차가 고속도로 난간을 넘어 날라 떨어졌는데 목사님은 운전대를 잡고 누군가가 받아주는 느낌 속에 다지지 않고 차만 부숴지는 일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시27:1 여호와는 나와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말씀과 성구를 붓으로 쓰고 표구하여 가정의 가훈으로 걸었습니다. 저희는 그 뒤로 가기로 한 교회를 가보지 않고 조용히 시골 나주로 돌아와 농촌목회에 소신을 재검진하며 사역을 감당하자 하나님께서는 새 성전 터전으로 함께 하시며 놀라운 일들로 새 성전을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나주진복교회 조인숙사모간증 (3)”
마마킴||조회 1,5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