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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진복교회 조인숙사모간증 (1)

마마킴||조회 1,469
나주진복교회 조인숙사모간증 (1)
잠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어린 시절 부요 하진 않았지만 6남매의 막내로 부족함 모르고 자란 철없고 섬 머슴아 처럼 천방지축이었던 저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유독 아들보다 딸을 더 선호 하셨는데 처음 딸을 얻으시고 아들만 4 형제를 두시고 막내로 태어난 저이기에 사랑을 많이 주셨습니다. 저의 언니를 어머니를 닮아 어려서부터 미모가 좋아 아버지가 손을 잡고 다니면 모두들 예뻐하고 칭찬을 했다고 합니다. 출생지 이태원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아버지가 주유소를 하셨는데 그 당시 배우 신성일씨가 이태원에 살면서 저희 집에 와서 언니를 배우로 만들자고 했으나 아버지께서 거절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같은 자매인 저는 아버지를 닮아 예쁘지도 목하고 잘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성경 잠언 31 장 30 절의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에 위로와 은혜를 받고 사역을 감당하는 나주 진복교회 감상운 목사의 사모입니다.
그저 평범한 소녀로 성장하던 중 저희 집 주유소에 근무하던 직원의 실수로 불이 나서 이태원 시장 일대가 불이 나고 모든 재산을 손해배상에 쓰고 저희 부모님은 서울 대방동으로 이사를 하여 건축업을 시작했지만 성공하지 못하였습니다. 조상 대대로 철저한 불교신자로 살던 저희 부모님은 계속 되는 사업실패로 어려워졌고 여자였지만 여장부 같은 성격의 어머니는 지인의 전도로 신림동 지하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철야기도며 새벽기도여 모든 예배에 참석하셨습니다.
그 당시 부모님의 사이가 좋지 않은 상태였기에 저의 눈에는 어머니가 불안해 보여서 어머니를 지켜야 되겠다는 생각에 가기 싫었지만 어머니 손을 잡고 그 지하교회를 참석했는데 좋은 눈으로 보지 않는 저에게 염소같이 생긴 목사님이 안수기도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반항심에 가득 차고 세상의 불안에 저는 그 목사에게서 무엇이라도 트집 잡을 것이 없을까 하고 시간마다 믿는 척하고 감시자로 참석을 하던 중, 어느 날 못님께서 밤 11 시까지 어머니와 함께 교회로 오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어머니 혼자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동행을 했는데 그 날 밤에 12 시에 관악산 산봉우리에 있는 기도원이 있는데 성도 몇 명과 함께 산 기도를 가는 날이었습니다.
기도원에 도착해서도 저는 맨 끝에 앉아 감시하는 태도로 예배를 드렸고 동성기도를 시작하여서야 마지못해 눈을 감고 기도하는 척 했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강한 충격이 머리 뒤통수에 가해지면서 “내 너를 위해 피 흘려 몸 버렸건만 너 날 위해 무엇을 줄 것이냐” 는 음성이 들려왔고 성령의 역사로 밤을 세워 기도를 하게 되고 제가 눈을 떠서 주위를 볼 때는 새벽 5 시 날이 환 해진 뒤였고 맨 끝에 있던 저는 맨 앞에 강단에 까지 와서 무릎 꿇고 눈물 범벅 콧물 범벅이 된 상태로 회계기도를 하였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도마처럼 의심 많고 연약하고 부족한 저를 자녀로 삼으시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셨습니다. ‘내 너를 위하여 피 흘려 몸 버렸건만 너 날 위해 무엇을 주느냐’ 는 말씀이 찬송 311 장 인지도 몰랐던 저는 그 염소같이 보였던 현기봉목사님에게서 많은 은혜를 받아가며 전도하며 신앙 교육을 받던 중 가족이 경기도 광명시로 이사를 가게 되고 그곳에서 광성교회  목사님의 사랑과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저의 신앙은 가족의 반대로 핍박으로 여러 어려움과 고난을 겪어야 했지만 구원의 감격으로 감사하며 지내던 중 어머니는 아들 4 명을 제치고 저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기도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담임 목사님과 어머니의 철저한 계획안에 신학에 들어가게 된 저는 혼가 가는 외로운 사역보다 둘이 협심하여 따라가는 사모의 길이 더 쉽고 외롭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고 마침 교회 전도사님의 동기인 지금의 저의 남편이 된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소개하신 전도사님의 말씀대로 처음 인상이 “누가 봐도 목회자라고 써 있는 모습을 보고’ 이분과 함께 하면 주님의 일도, 주부의 일도, 자녀의 일도, 감당 할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 판단은 지금도 변함 없이 틀림이 없었습니다. 선실하고 진실하고 검소하고 변함없는 내 인생의 동반자 목사님은 내겐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결혼 37 년 생활 중 사역은 물론 가정의 일들까지 고비마다 하나님과 함께 길을 인도하고 지지하고 최선을 다해 성실히 함께 해 왔습니다.
결혼 1 년 후 처음 사역지이자 마지막 사역지인 이곳 나주를 교단 총회에서 연락 받고 답사하고 오신 목사님은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나안 농군학교 “한 손에는 성서를, 한 손에는 괭이를” 외치던 김용기 장로님 삶을 존경하던 저희 목사님은 도시 목회보다 농촌 목회를 하고 싶다고 하며 나주에 임씨 500년 전통을 가진 임씨 마을이 있는데 아직 교회가 없다고 하며 그곳에 개척을 하겠다고 했고 이제 막 돌 지난 딸을 둔 저는 세계 선교를 가라 하여도 순종해야 할 터인데 내 나라 안에서 내 민족과, 내 가족이, 있는 이 땅으로 가라 하시니 그저 감사하며 감당하겠다고 기도하며 목사님을 따라 36 년 전 시골이라곤 경기도 주변 외에는 가 본적이 없는 겁 없고 철부지 상태로 오늘 이곳 사역 지 나주 다시면 회진리에 1987 년 3 월 18 일 창립예배를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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