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감동을 주는 간증입니다 (11)”
“농아자 부모님을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김병걸님의 이어지는 간증입니다
<금반지>
내가 21살이 되고 겨울에. 군대 입영영장이 나왔다. 나는 인하공전 항공기계과 2학년 1학기까지 마치고 휴학을 했다. 1997 년 12 월 22 일 입대 날자 를 받고 군대 입대를 하기 전까지 푹 쉬었다. 친구들도 만나고, 만화책도 보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입영일자가 다가올수록 군대에 가기 싫다는 마음이 커져갔다. 하지만,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에 가야 하기에... 입영일자를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입대 전... 나는 모아둔 돈으로 금반지 1돈을 구입했다. 군대에 가기 전에 엄마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 입대 전날... 엄마에게 금반지를 선물했다. 내가 엄마에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은 금반지 1돈 밖에 없었다. 엄마는 우셨다. 우시는 엄마를 위로하면서 군대에 잘 다녀오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내가 입대 전에 선물했던 금반지... 엄마는 아직도 그 금반지를 손에 끼고 다니신다. 집 형편이 어려워서 가지고 계시던 다른 반지와 목걸이는 파셨는데, 내가 선물한 금반지는 지금까지 보관하고 계신다. 지금 엄마의 손을 보고 있으면, 입대 전날 엄마의 눈물이 생각이 난다. 엄마 감사해요... 지금까지 금반지를 갖고 계셔서 감사해요...
<대한항공 정비사>
나는 군대 제대를 하고 인하공전 항공기계과에 복학했다. 2학년 2학기에 대한항공 정비본부에 입사를 했고, 2학년 2학기 10월부터 대한항공 교육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받고 운항3본부에 배정됐다. 보잉 777을 정비하는 부서이면서 김포공항 2청사에서 근무를 했다.(영종도 개항 전) 어린아이는 자신감이 넘쳤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하나씩 준비하면서 성취했다. 대한항공을 6개월 근무하면서, 많이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는 IMF 직후라서, 40대 중반이 되면 회사를 그만두는 분위기였다. ‘40대 중반이 되어 대한항공을 그만두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평생 대한항공에 근무를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나의 마음(욕심)에 만족감이 없었다. 평생 회사를 위해서 산다는 것... 나는 거부감이 들었다.
나는 조종사가 되고 싶었지만, 미국에 가서 조종사 공부를 할 여력이 없었다. 자가용조종사 → 계기비행 → 사업용면장 → 쌍발기면장 등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필요했다. 현실적인 문제로 조종사라는 꿈을 포기했다. 조종사를 포기하고 대한항공에서 정비사로 일을 하는 것이 싫었다. 대한항공에서 계속 근무를 하면, 조종사와 자기자신을 계속 비교할 것 같았다.
어차피 40대 중반이 되어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면, 젊었을 때 하고 싶은 것을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고민을 하면서 하나님께 많은 기도를 하지 못했다. 이 부분이 많이 아쉽다. 나는 대한항공을 6개월 근무하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다들 왜 그러냐고.. 이야기가 많았다. 안정적인 회사, 유명한 회사, 월급 잘 나오는 회사... 그러나 나의 꿈을 이루기에는 맞지 않는 공간이었다. 6개월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무엇이 답인지 잘 몰랐기에...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입시 종합반을 등록했다. 회계사가 되고 싶었다. 회계사가 되기 위해 4년제 회계학과에 입학하고 싶었다. 6개월 정도 종합 반에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를 했다. 나는 동국대 경영학부에 입학할 수 있었다. 회계사가 되기 위해서...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여동생 결혼>
내가 군대에서 병장 말년일 때... 여동생이 면회를 왔다. 갑자기 청첩장을 주면서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여동생이 사고를 쳐서 임신을 했고, 매제는 10살이나 많은 사람이었다. 부모님도 처음에는 반대를 했으나, 임신을 한 사실을 알고, 어쩔 수 없이 승낙을 하셨다. 나는 여동생 결혼날짜에 맞춰 휴가를 잡았고, 여동생 결혼식에 참석을 했다. 그냥 씁쓸했다. 매제는 나이도 많았지만, 결혼을 위해 아무것도 준비한 것이 없었다. 결혼을 하고 처가살이를 했다. 나는 동생이 결혼을 한 이후부터 술을 더 많이 마시게 되었다.
내가 군대 제대를 하고, 집에 갔을 때... 내 방은 작은 방으로 옮겨져 있었다. 동생네는 갑작스런 임신으로 결혼을 했고, 결혼을 위해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작정 결혼식만 해서, 살 곳이 없어 처갓집에서 살아야 했다. 그래서 내 방을 사용하게 되었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이 많은 매제와 함께 살게 되었다.
동생네는 경제적인 문제로 밤마다 싸움을 했다. 나는 화가 났다.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지만, 잘 살 것이라는 기대감을 져버리고 밤마다 술에 취해 싸우는 것이다. 밤마다 술에 취해 싸움을... 만약 부모님이 농아자가 아니었다면, 집에서 밤마다 술에 취해 싸울 수 있었을까? 만약 부모님이 밤마다 싸우는 사실을 알았다면, 동생네가 계속 술에 취해 싸움을 집에서 할 수 있었을까? 나는 동생네가 밤마다 돈 때문에 싸움을 하는 것을 부모님께 말씀드릴 수 없었다. 혼자 견뎌내야 했다.
이때부터... 니는 잠을 자기 전에 소주 한 병을 마시기 시작했다. 매일 밤에 옆방에서 들리는 싸움소리.... 견딜 수가 없었다. 술이라도 마시고 잠을 자야 했다. 나중에 결론을 내린 것이지만, 이때부터 중독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매일 밤... 싸우는 소리... 듣지 못하시는 부모님... 나는 집에서 무엇을 할 수가 없었다. 경제력도 없었고, 직업도 없었고... 아무것도 없는 20대 중반이었던 나는 잠을 자기 위해 술을 마실 수 밖에 없었다. 준비하지 않은 결혼... 결혼에 대한 회의감... 동생에 대한 배신감... 듣지 못하는 부모님을 이용하는 매제... 집에 오면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결국 동생네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여러번 집이 어려워졌고,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술에 의지하는 상황이 되었다. 매제의 카드값... 아버지 명의로 사업을 하면서 사업 파산 등등... 모든 일은 내가 뒷정리를 해야 했다. 나는 동생네를 원망했고, 부모님을 원망했다. 혼자 많이 울었다.
“특별한 감동을 주는 간증입니다 (11)”
마마킴||조회 1,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