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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감동을 주는 간증입니다 (6)

마마킴||조회 1,411
김병걸님의 이어지는 간증입니다

<농아인교회... 수화>

 어린아이는 7살 때부터 교회를 다녔다. 엄마 손에 이끌려... 그냥 교회에 갔다. 어린아이는 자주 이사를 다녔지만, 교회는 계속 다녔다. 어린아이는 교회에 가면 그냥 좋았다. 교회에 가면 또래 친구들도 있고, 예배를 드리면 간식도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성탄절에는 알록달록한 장식도 좋았다. 교회에 가면 행사가 있었고 어린아이는 교회행사를 무척 좋아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은 농아인교회에 다니셨고, 어린아이도 부모님을 따라 농아인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2년 정도 다닌 것으로 기억한다. 농아인교회를 다니면서, 수화를 배우게 되었다. 예배를 드리면서, 찬양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수화를 배우게 되었다. 농아인교회에는 비장애인 사역자가 있어서, 말도 배우면서 수화를 배울 수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에는 부모님과 함께 교회에 가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다.

 그때 부모님도 수화를 배우게 되었다. 부모님과 수화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수화를 배우기 전에는 얼굴모양을 보면서 대화를 했다.

 농아인교회에서 어린아이의 별명은 털보였다. 구렛나루가 길었기 때문에 털보라는 별명(수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농아인 친구들은 솔직했고, 다들 어린아이에게 수화를 가르쳐주고 싶어했다. 어린아이는 그렇게 농아인교회에서 수화를 배우게 되었다.

 어린아이가 성장한 후... 성인이 된 어린아이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수화를 하는 것을 싫어했다. 창피하다고 생각했다. 창피했다. 왜 그렇게 창피했을까? 어렸을 때에는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성인이 된 어린아이는 왜 수화를 창피하게 생각했을까? 다시 생각해보자. 왜 그랬는지...


<챙피했던 수화...>

 중고등학생 시절... 다른 사람 앞에서 수화를 하는 것이 싫었다. 어느 날... 엄마가 아프셔서,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물론 아버지께서 아프시면 아버지와 함께 병원에 가는 일이 있었다. 부모님께서 아프시면, 입원하시면, 거의 대부분 어린아이가 병원에 있었고, 어린아이는 보호자 서명을 해야 했다.

 어느 날..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갔다. 검사를 하고, 의사선생님께 설명을 들었다. 의사선생님께서 설명하실 때에 바로 엄마에게 수화로 말씀을 드릴 수 있었지만, 수화로 설명을 드리지 않았다. 집에 가서 설명을 드리겠다고 만 말씀 드렸다. 의사 선생님 앞에서 수화를 하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어린아이는 다른 사람 앞에서 수화를 하는 것이 싫었다. 왜 싫었을까? 농아자 부모님이 창피한 것은 아니었을까? 다른 아이들은 보살핌을 받을 때, 그 어린아이는 농아자 부모님의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아이가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그것이 싫었던 것이다. 힘들었다.

 어린 시절... 다른 아이들처럼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었고, 아무런 걱정 없이 놀이터에서 놀고 싶었고, 동화책을 갖고 싶었고, 놀이동산에서 마음껏 놀고 싶었다. 어린아이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부모님이 아프시면 함께 병원에 가서 통역을 해야 했고, 아버지를 따라 사업 통역을 해야 했고, 추운 겨울날 공중전화에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야 했다. 이런 상황이 싫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 싫어서 농아자의 아들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수화를 할 때에 얼굴이 붉어진 이유가 부정하고 싶어서이다.

 그런 어린아이를 보는 부모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병원에서 바로 설명을 해주지 않고, 집에 가서 설명을 해주는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어린아이의 마음에는 두 가지 감정이 있다. 원망과 안타까움이다. 현실에 대한 원망과 부모님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래서 힘들다. 그래서 마음속이 복잡하다. 화가 나면서,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