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감동을 주는 간증입니다 (4)
김병걸님의 이어지는 간증입니다
<아버지 따라 사업 통역>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는 요꼬(쉐타) 사업을 하기 위해 봉천동으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가 사장님이 된 것이다. 아버지 친구분과 동업을 하셨고, 상가 지하에 공장을 차리셨다. 언 듯 봐도 지하 술집을 개조해서 공장을 만드신 것 같았다. 공장에 직원들이 많이 있었고, 엄마 농아자 친구도 함께 오셔서 일을 하셨다. 엄마 친구분이 해주신 볶음밥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공장 직원들은 일이 끝나고, 술을 많이 마셨다. 어린아이는 공부와 전혀 상관이 없는 공장에서 아버지 통역을 하면서 지냈다. 학교에 갔다 오면... 아버지와 다른 분들과 통역 일이 어린아이를 기다렸다. 수화통역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어린아이의 놀이터는 공장 뒤편에 있는 조그만 한 공터였고, 그 공터에서 혼자 놀았던 기억이 남는다.
어린아이는 자전거가 갖고 싶었다. 어느 날... 친구들과 놀다가, 친구 자전거를 집으로 가지고 왔다. 그런데... 저녁에 친구와 친구엄마가 우리 집에 찾아왔고, 자전거를 왜 가져갔냐고 무척 혼이 났던 기억이 있다. 어린아이는 어렸을 적에 갖고 싶었던 것을 ‘갖고 싶다고’ 이야기 하는 방법을 몰랐다. 친구의 자전거를 가져온 날... 어린아이는 도둑놈이 되었고, 부모님께 무척 혼이 났다. 그 이후로는 다시는 남의 물건을 가져오지 않는다.
아버지와 친구분이 하시던 동업은 잘 되지 않았다. 공장은 폐업을 했고, 임금체불 때문에 언성이 커졌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봉천세무서에 찾아갔던 기억이 있다. 세금이 미납되어 독촉장이 왔던 것이다. 이제 생각을 해보면, 봉천세무서 부가가치세과 같다. 일반과세자로 부가가치세를 납부하지 않아서 계속 독촉장이 오고, 경매 얘기까지 나왔다. 공장을 폐업을 하고, 어린아이는 아버지와 함께 봉천세무서에 갔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초등학교 기억보다는 봉제공장에 대한 기억이 많이 남아 있다. 그 당시 아버지도 세금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 채 사업만 시작하셨던 것 같다.
쉽지 않은 사업... 투자된 돈은 다 날리고, 어린 시절 잠깐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다만, 그 당시 무언가 해보고자 하셨던 농아자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신문배달 200부>
독립문에서 살 때... 초등학교 5학년 때... 동아일보 신문배달 일을 했다. 신문 200부를 돌렸다. 그 당시 학교수업을 끝내고, 오후에 신문을 돌렸다. 어린아이가 돌려야 할 신문은 200부였고, 2구역이었다. 그 당시 신문자전거는 중고등학교 형들만 탈 수 있었고, 초등학생들은 걸어서 다녀야 했다. 동아일보 배달소에 가면, 먼저 신문에 전단지를 끼워야 했다. 전단지를 끼운 신문을 부수대로 배정받고, 자기 구역에 가서 신문을 돌리면 됐다. 대략 200부를 돌리는데 3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200부를 돌리고 나서 받은 월급은 3만원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한동안 계속 신문을 돌렸다.
어린아이는 힘이 들지 않았다. 돈을 벌 수 있었으니깐... 돈을 벌어서 사고 싶은 것도 살 수 있었으니깐... 하지만, 힘든 점이 있었다. 신문을 돌려야 하는 집 중에 한곳은 가기가 싫었다. 같은 반 여자아이가 사는 집에는 가기가 싫었다. 신문배달 하는 것이 내심 창피 하다가 생각을 했던 것일까? 부끄러웠을까? 아니면, 그 여자아이를 좋아했던 것일까?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당시 같은 반 여자아이 집에 신문을 놓는 일은 굉장히 힘들었다. 그냥... 신문배달... 그 당시 알리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같은 반 친구들한테.... 아마도 챙피했으리라...
“특별한 감동을 주는 간증입니다 (4)
마마킴||조회 1,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