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성: 우크라이나인들을 찾아갔습니다”
홀리네이션스 파송 선교사님 고석만 선교사님은 20 대의 아들 동성이와 같이 우크라니라를 방문하였는데 그런 특별한 섬김을 하고 돌아온 동성이의 글입니다
~~제가 아빠를 따라서 우크라이나인들을 돕기 위해 4월 말부터 열흘 일정으로 루마니아에 가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동기가 있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그 나라 사람들은 절박한 상황에 몰려 있고, 따라서 저희가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저희가 사는 곳이 같은 유럽이어서 저렴한 항공편과 숙소를 금세 마련하는 것도 상당히 쉬웠습니다. 또한 루마니아 북부의 국경 도시인 수체아바(Suceava)에 머물면서 우크라이나 및 그 국민들을 돕는 사역을 진행하는 현지 한인 목사님과도 잘 연결되었습니다 (이 목사님도 우크라이나에서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인 관점에서 이 전쟁은 저희의 문 앞 매우 가까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고, 저의 세대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의 하나가 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번 여행은 저로서는 갑자기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마땅히 결단하고 나설 일에 대하여 제가 미리 많은 기도를 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 굳이 “Yes? or No?”의 답을 구하지 않더라도 가는 것이 옳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결단에 대해 제가 자꾸 강조하면 초점만 흐리게 만들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일단 결단을 한 뒤 저는 여행을 준비하면서 아침 저녁으로 시간을 내서 아빠와 함께 기도하고 때로는 엄마와도 기도를 같이 했습니다.
저는 먼저 우크라이나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전쟁에 나선 사람들, 그리고 난민이 된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또한 이번 여행 동안 저희가 할 일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크거나 많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만날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영성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그들에게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난민들이 너무나도 큰 고통을 겪고 있고 솔직히 저는 그들의 아픔을 헤아릴 수 없을 텐데, 제가 어떻게 그들에게 공허한 위안의 말 이상의 것을 줄 수 있겠습니까? 그들에게 저의 진심을 알리기 위해 좀 포장을 해도 될까요?”
영국을 출발한 저희는 자정이 다 되어서야 수체아바의 호텔에 도착했고, 이튿날 아침 일찍부터 일이 예정되어 있어서 서둘러 침대에 누웠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저는 잠자리가 몹시 사나웠습니다. 그게 환경이 바뀌어서인지, 호텔 방이 숨 막힐 듯 더워서였는지, 아니면 앞으로 며칠 동안 하게 될 일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저의 마음은 뭔가 들어맞지 않고 어정쩡한 기분으로 인해 엉망이었습니다. 그런 상태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현지 목사님과 함께 메트로(Metro)라는 대형 도매상점으로 향했습니다. 물품 구입 리스트에 할당된 대로 저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줄 소시지와 햄, 아이들을 위한 초콜릿을 사서 큰 쇼핑 카트에 쌓고, 그 위에 멸균 우유 몇 박스까지 올려 놓으니 이미 덩치가 불어난 쇼핑 카트가 더욱 아슬아슬하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하는 동안, 제 마음 속에 있던 불안과 산만한 생각은 점차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식료품을 구입하여 트럭으로 옮겨 싣는 작업을 마치고 저희는 우크라이나에서 저희 일과 관련하여 잠시 나온 자원봉사자들과 사진을 몇 장 찍었습니다. 이 자원봉사자들이 트럭을 운전하여 우크라이나로 되돌아가서 협력 교회에 가져다주면, 그 교회는 물품을 우크라이나 각지로, 심지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전달한다고 합니다. 저는 저희 자금의 상당 부분으로 트럭 한 대를 온전히 채우지 못하는 것을 보며 마음의 가책을 좀 느꼈습니다. 우크라이나 안에 있는 사람들을 넉넉하게 도왔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어서 저희는 수체아바에 와 있는 우크라이나 성도들에게 줄 물품들을 따로 구입하여 개별 가정별로 나누어 소포장을 하였습니다. 이 교회는 얼마 전에 소수의 난민들로 구성된 작은 교회로, 저희와 연결된 현지 목사님이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소포장한 물품을 다음날 주일예배에 참석하여 각 가정에게 직접 나눠 주었습니다. 예배 중에 성도의 자유 발언과 간증 순서가 있었습니다. 저는 우크라이나어를 하지 못해서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거의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이 털어 놓는 힘든 사정과 가족에 대한 염려를 잠깐의 통역을 통해 조금만 듣고서도 그들의 아픔을 저의 아픔으로 짙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주일 이후 며칠도 대체적으로 몸으로 움직이는 일을 하였습니다. 저희는 메트로에서 식료품을 사서 수체아바에 설치된 우크라이나 난민 캠프들에 전달했습니다. 이 식품이 조리되어 우크라이나인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지켜보니 정말 좋았습니다. 그것은 저희가 한 일이 비록 보잘것없는 규모일지라도 뭔가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난민 캠프에서 저희는 여러 난민과 대화하고, 그들을 섬기는 귀한 봉사자들과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는 그 난민들이 목격했거나 심지어 직접 겪은 끔찍한 사건들을 이 글에서 저의 언어로 설명하기에 역부족임을 느낍니다. 그러나 각각의 이야기를 통해서 제가 추가로 확신한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그들을 버린 것같이 보일 때,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돕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이렇게 제가 저의 체험과 생각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순종을 사용하시는 하나님께서 우크라이나인들을 버리지 않으셨고 앞으로도 버리지 않으실 것임을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여행이 저에게 미친 영향을 충분히 정리하고 소화할 시간을 아직 갖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편안한 가운데 기도하고 있는 것에서 뛰쳐나와, 다급하고 결핍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직접 마주하며 그들의 삶에 약간이라도 동참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이 필요한지,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나 자신이 마땅히 했어야 할 일을 얼마나 하지 않았는지를 돌아보게 해 준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세세한 것까지 신경 쓰는 습관이 있어서 막상 행동으로 나아가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공급하시고 길을 여신 것을 저에게 보여주셨으므로, 앞으로는 보다 결단력 있는 자세를 지속하고 세세한 부분은 나중에 고민하도록 해야겠습니다. 또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훨씬 더 실질적인 방법을 계속 동원하려 합니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에게 ‘주의 빛’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저 확신시키려 하기보다는 실제로 그 빛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번 여행에 필요한 자금이 충분히 모일 수 있도록 기적을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누구에게든 저희가 전혀 요청하거나 바라지 않았는데도 세계 여러 곳에서 때에 맞춰 또는 때에 앞서 후원금이 들어왔고, 그래서 이 모든 금액은 우크라이나인들을 돕는 데 쓰였습니다. 또한 저는 전쟁이라는 게 무엇인지 볼 수 있는 기회, 난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미미하게라도 이해할 수 있는 기회, 저보다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실제로 도울 수 있는 기회, 그리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통로가 되어 그분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고동성: 우크라이나인들을 찾아갔습니다”
마마킴||조회 1,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