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문(심신푸)
저는 인도 마니푸르의 사강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명목상 기독교 가정이었지요. 부모님은 왜 교회에 나가시는지 알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중단 없는 예배 출석과 교회 봉사를 통해 차츰 신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지요. 저는 절친이자 인생 최고의 여인 멜로디와 결혼해서 마니푸르 동북부 지역에서 살다가 히마찰 프라데쉬로 옮겨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13실 테레사와 11살 한나 두 딸을 얻었습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
알콜중독자 아버지 밑에서 자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저의 인생에 여러 모로 영향을 받았으니까요. 아버지의 알콜중독은 우리 집에 크고 작은 어려운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우리 집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게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더 큰 문제가 일어나리라는 것은 알 수 있었지요. 잠결에 부모님이 심하게 다투는 소리에 깬 적이 부지기수였고, 이 때문에 저와 형제들의 삶이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아버지는 꽤 괜찮은 일을 두 가지 하고 계셨지만, 동네에서 알려진 술꾼이요 도박꾼이어서 돈을 버는 족족 써 없앴습니다. 슬픈 얘기지만, 가족의 생활이나 아이들 교육은 아랑곳하지 않는 이기적인 분이셨지요. 이 경험을 통해 어린 시절의 환경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좋은 교육은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한다는 것도요. 가난 때문에 좋은 환경과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우리들을 자랐습니다. 수많은 밤을 배고픔을 참으며 보냈고, 학비를 내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잠자리에 누우면, 뚫린 천장 사이로 별과 달이 보였고, 비가 오는 날이면, 양동이와 그릇을 동원해 방안으로 쏟아지는 빗물을 받는 일도 많았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는 모두 아버지를 미워했고, 저는 주님께 ‘아버지를 데려가 주세요’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때는 주님이 아버지를 변화시킬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은 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고 아버지는 아직도 살아계십니다. 할렐루야! 어머니는 아버지와 정반대 사람이었습니다. 매일 4시에 일어나 마을 사람들이 추수하고 난 밭에 나가 떨어진 낟알을 주워오곤 하셨지요. 구약에 나오는 룻처럼 말입니다.
십대가 되자 저는 불량청소년들이 하는 모든 행동을 하기 시작했지요. 담배, 술, 게다가 도둑질 등등. 부전자전이라고 할까요. 제 인생은 엉망이었고 앞날은 알 수 없었습니다. 제게는 삶의 목적도 목표도 없었어요. 그저 운동하고 여자 친구 사귀고, 술 마시는 것뿐이었지만, 그 어느 것도 제 마음을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예수를 만난 후
15살이 되던 어느 날, 목사님에게 들은 복음이 제 인생을 바꾸어놓았습니다. 복음을 통해 여러 가지 생각이 제 마음을 흔들었어요. 우선 제가 죄인이며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다(롬 3:23)는 것, 언젠가 죽고 나면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해결책을 마련해 놓으셨다는 것, 즉 예수를 믿으면 제 죄를 용서해 주신다(롬 5:8)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기도했지요. ‘예수님, 저는 죄인이고 주님 말씀과 반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제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신 것을 압니다. 제가 스스로 구원을 얻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 삶에 들어오셔서 저를 구원하시고 주님이 되어 주세요.’ 1995년 4월, 저는 예수를 영접하고, 그해 5월 7일, 사강침례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나니, 제 삶의 많은 변화가 찾아왔어요. 외적 변화는 물론이고 내적 변화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생겨났고, 기쁨, 평안, 인내심, 그리고 구원의 확신이 생겼습니다. 저의 새로운 삶의 여정은 기쁨에 넘쳤고 예수로 인한 새 희망이 가득했어요. 기도와 말씀을 통해 주님과의 교제가 깊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어요. 제가 여전히 육적인 것에 마음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결국 처음 믿음을 가지게 된 때보다 더 못한 상태가 찾아왔습니다.
세 가지 시련
믿음이 뒷걸음을 치자, 세 가지 시련이 찾아왔지요. 저는 이런 시련들을 하나님께서 제 믿음을 회복시키는 도구로 사용하셨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말라리아
극도의 괴로움이 엄습하여, 집에 있는 것을 참을 수 없게 된 저는 집을 나왔습니다. 집을 벗어나면 푸른 초장에 닿을 것만 같았지만, 오히려 말라리아에 감염되면서 죽을 고비를 맞았습니다. 가출한 지 6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어요. 큰 누나가 마침 같은 병원에 입원 중인 사촌을 간병하고 있다가 저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2. 죽도록 두들겨 맞다
저는 폭력그룹의 일원은 아니었지만, 푼돈을 받으며 그들이 돈 뜯는 일을 거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청소년 모임이 끝난 후, 다른 그룹 아이들에게 잡혀 죽도록 두들겨 맞았어요. 너무 맞아 온 몸의 감각이 다 사라질 즈음, 저는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요나처럼 회개하며 기도했지요. 마지막으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빌었습니다. 하나님의 제 기도를 들어주셨어요. 바로 그 순간, 청소년 모임의 리더가 저를 찾으러 나왔던 것입니다. 저를 때린 아이들은 더 이상 까불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저를 놓아주었지요.
3. 결핵
2005년 신학석사 과정을 마치면 신학교에서 강의를 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또 예전의 습관으로 돌아갔고 이것이 하나님의 기쁨을 앗아갔습니다. 주님은 저를 결핵이라는 병으로 치셨고, 저는 체중이 45kg까지 내려갔지요. 저는 ‘이제 끝났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이 제게 또 기회를 주실 리 만무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시편 103:8~10,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라는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저의 신실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진실로 주님은 제게 많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주님께로 돌아와 주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항상 그 넘치는 은혜 안에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그 때 이후로 저는 이전의 삶은 완전히 잊고 오로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해 배우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온 이유
저와 아내는 다람샬라에서 꽤 여러 해 동안 일했지만,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에 대해, 특히 한국 교회의 성장에 대해 알게 되었고, 직접 한국에 와서 다만 6개월 동안이라도 교회 성장에 대해 배우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을 기도했어요. 주님은 제 기도에 응답하셨고, 6개월이 아닌 더 긴 기간을 허락하셨습니다. 여기 와서 배운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와 성경 읽기의 중요성입니다. 인도 교회에서는 별로 하지 않거나 아예 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특히 2019년 9월 이후 홀리선교회의 학생이 된 것은 정말 큰 축복입니다. 처음 한국에 와서 예배를 드린 몇몇 교회에서 저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중 홀리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곳에 오자마자 여기가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제와 영정 성장을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이며, 이곳으로 인도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을 깨달았지요. 그리고 믿음의 나라의 멋진 대사이신 마마킴을 만나서, 참 믿음에 대해 배우게 된 기회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요! 이루 말로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성경을 읽고 주님과 기도로 대화하며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도록 늘 권면하시는 마마킴의 말씀이 제게 큰 영감과 힘의 원천이 되어왔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삶,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데 가장 큰 의미를 두는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주셨지요. 또한 사람이 아니라 오직 주님만 믿으면 된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은 정말 특별한 배움이었습니다. 늘 강조하시는 빌립보서 4장 19절, 우리의 모든 필요는 하나님께서 채우신다는 말씀이야말로 제가 늘 붙잡고 기도하는 약속의 말씀이지요. 더불어 전도와 복음 전파의 본이 되시고, 저희들 일상의 크고 작은 것들을 챙겨주시는 윤권사님의 큰 도우심에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재정적 도움을 주시는 홀리선교회에 감사드립니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인도에서 자가격리하는 동안 필요한 추가 경비까지 충당해주신 점 더욱 감사히 여깁니다. 홀리에서 주시는 지원금은 우리 가족뿐 아니라, 극빈가정의 어린이 아돈의 양육비와, 빈민가에 살면서도 신학생을 꿈꾸는 쌤의 후원금으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힘이 닿는 한, 이웃의 목사님을 돕기도 하고요. 진정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는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께 깊고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홀리선교회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들이지요.
홀리선교회와 마마킴께서 보여주신 이웃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도움의 손길은 제게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느끼고 감사하게 합니다. 또한 그 이웃들의 삶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목격하며 끊임없이 찬양하게 합니다. 힘든 이웃에 대한 마마킴의 사랑은 조지뮬러의 고아 사랑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한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마마킴의 즉각적인 헌신은 매우 드문 것 같습니다. 이런 역사가 지속되도록 홀리와 마마킴께 임하는 주님의 축복이 무궁할 것을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참으로 한국은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사람들은 선하고 너그럽습니다. 그리고 연세대학교, 시설이 대단합니다. 전액장학금까지 받으니 얼마나 고마운지요. 게다가 홀리에서 숙식과 용돈, 그리고 항공료까지 제공해주시니, 정말 이런 복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매일 인도를 생각합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가엾은 나라, 매일 예수를 모른 채 죽어가는 수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생각하지요. 그래서 제 기도는 이렇습니다: 주님 저를 인도로 보내주세요,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에 아멘하고 화답하게 해주세요!
선교 비전
저와 우리 가족은 히마찰 프라데쉬 주의 다람샬라에서 교회를 개척하려고 합니다. 또한 히마찰 성경 신학교 및 신학원에서 강의를 하려고 합니다. 히마찰 프라데쉬는 인도에서 가장 기독교 인구가 적은 곳입니다. 주 전체 인구의 1% 미만이니까요. 인구가 5만이 넘는 다람샬라조차 영국의 식민지 시대에 지어져 방치된 오래된 교회 외에는 정식 교회나 교회 건물이 없습니다. 15~20명이 모이는 가정교회 두세 곳이 있을 뿐이지요. 다람샬라는 ‘티벳 난민의 도시’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따라서 불교도가 꽤 많고 힌두교도 또한 많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다람샬라를 전도의 거점으로 삼고자 합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학생시절부터 저의 꿈이었어요. 저는 주님이 저를 부르신 이유가 하나님을 섬기고 또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심어주신 하나님의 백성은 다람샬라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알 기회를 아직 얻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제게 짐 지워주신 대상입니다. 저의 계획은 한 곳에 교회를 세우고 5~7년간 성경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다른 곳으로 옮겨 또 같은 사역을 하는 것이지요. 저의 힘들었던 시절을 절대 잊지 않고, 인도의 최극빈지역 사람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가 인도의 가장 비천하고 불우한 사람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도록 역사하실 것을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던 아버지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제가 ‘우리 아버지는 아직 살아계십니다, 할렐루야!’ 했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제가 왜 그러는지 궁금해 하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한 것은 이제야 하나님의 크신 뜻과 계획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 저와 형제들이 이기적이며 사악한 최악의 아버지라고 생각했던 – 사랑하는 아버지를 우리들의 최고의 선교사역 훈련을 위해 사용하셨음을 확신합니다. 우리 형제자매는 모두 여섯인데, 하나만 빼고 모두 선교와 연관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아무도 먹을 것이 없어서 고생하지 않습니다. 불평할 것이 없지요. 모든 것이 감사,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가난한 지역이라도 갈 수 있고 그곳에 누구와도 교제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 아버지, 저의 질병들, 이 모든 것들이 저의 선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요즘, 아버지는 교회에서, 형제들은 힌두교도와 무슬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