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모리타니 마마(권경숙 선교사님을 통해서 배우는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 2)
아프리카에 기근이 들면 교도소의 수감자들이 가장 먼저 굶어 죽는다. 정부는 그들까지 부양할 능력이 없다. 1998 년 한국에 IMF가 터졌을 때, 세계 경제는 다 어려웠다. 당시 모라타니의 상황도 사람이건 동물이건 모두 뼈와 가죽만 남을 정도로 비참했다. 교도소의 죄수들에게는 하루 50 우기야밖에 지원되지 않았는데, 이 돈으로는 작은 빵 한 개와 빵에 바를 수 있는 버터밖에 살수 없었다. 그들은 몇달 동안 이 작은 빵 하나로 하루 하루를 연명했다. 그때 교도소에서 글을 배운 수감자 중 한 명이 내게 서툰 프랑스어로 편지를 보냈다.
“우리는 너무 배가 고픕니다. 마른 빵만 먹다 보니 항문은 막히고 눈은 노래지고 앞이 안보입니다. 마마가 우리에게 비타민을 공급할 수 있는 음식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약이 필요합니다. 나는 이 땅에 태어난 게 정말 슬픕니다.” 이 편지를 쓴 32 살의 수감자는 약이 필요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한 뒤 병으로 죽었다. “주님, 이들에게 굶주림을 면하고 주님 백성이 되는 권세를 누리게 해 주세요. 그냥 죽기에는 너무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필사적으로 그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나 또한 하루에 IMF 때 겨우 두끼 먹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은 닭을 삶아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수감자들에게 갖고 갔다. 감자도 삶아가고 우유죽도 끓여 갔다. 눈에 먹을 것만 보이면 이들을 위해 챙겨 놓았다.
요즘도 일주일에 한번씩 교회에서 갖고 가는 우유죽과 닭다리 튀김이 어떤때는 그들이 일주일 동안 먹은 단백질의 전부가 되기도 한다. 그들에게 내가 줄수 있는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은 기껏해야 우유 죽 조금과 닭다리 하나뿐이지만 그들은 그것조차 못먹고 살았으니…20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은 슬픔뿐이다.
수감자 중에는 해가 바뀌면 못 보는 수감자도 있는 반면 18 년째 보는 사람도 있다. 이름은 모르지만 이슬람 근본주의자 같이 수염을 길게 기룬 수감자들도 내게 부탁을 하곤 한다. “마마, 내가 슬리퍼가 없어서 화장실에 가면 똥이 다 묻습니다. 머리가 너무 아프니 다음에 올 때 아스피린 좀 사다 주세요” “바지가 다 낡았습니다.” “안경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먹고 사는 데는 아무리 최소한의 것이라고 해도 필요한 것이 많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헌 바지를 구해다 주고, 새 슬리퍼를 사주고, 안경을 기증받아 가져다 준다. 라마단 때는 모든 모슬렘이 다 먹는다는 밀트 죽을 끓여서 가기도 했다. 밀트죽이란 귀를 갈아서 좁쌀처럼 만든 다음 말려서 설탕과 우유를 넣고 쑨 죽으로, 모슬렘들이 라마단 기간이 끝나면 가장 먼저 먹는 음식이다. 금식을 하면 변비나 소화불량이 생기기 때문에 금식을 끝날 때 소화가 잘 되고 섬유소가 풍부한 밀트죽을 먹는 것이다.
“모슬렘들도 못하는 일을 크리스쳔이 하네요. 감사합니다.” 교도소에 밀트죽을 끓어가면 교도관이 감동받는 듯한 어투로 인사를 한다. 수감자들은 내가 왜 자신들을 대접하는지 궁금해 했다. “마마, 가난한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우리 말고도 많잖아요, 게다가 우리는 죄수들인데…”
그렇다. 눈이 멀어가는 어린이들만 구해도 구해 주어야 할 사람은 주변에 넘쳐났다. “여러분들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하러 오셨거든요. 여러분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인간은 순간순간 죄를 짓지요. 예수님께 구원받기 위해서는 누구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마른 땅, 메말라 버린 사람들, 그래도 주님은 이 딸을 바라보시며 이 땅은 내가 창조하였다고 이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는 걸 그들은 알까. 지금 이 순간도 구원의 문을 활짝 열여 구원받은 사람들의 이름을 생명책에 적어가고 계시다는 것을!
내가 그들을 잊지 않고 찾는 이유는 만약에 예수님이 오신다면 그들을 가장 먼저 찾아가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들, 가장 힘든상황에서 살아가기에 예수님을 만나 새 삶을 찾기 바라는 마음에서 한 주도 바지지 않고 찾아갔다. 그들이 주님의 긍휼을 경험하기를 바라며……
(한국의 교도소는 밖에서 어떤 음식도 들여보낼 수가 없습니다. 한데 아프리카는 음식이 가능한것을 보게 됩니다. 처음 2011 년 교도소를 방문하고 밖에서 음식을 줄수 없다는 그런 사실을 몰랐을 때 밖에서 우리는 엄청 많은 것을 여러 박스채 가지고 갔다가 도로 가져왔고 한국은 매점에서 우리가 돈을 내고 품목을 지정하면 그 안에서 지급해 줍니다. 다른 물건들도 우리는 일체 집어 넣어줄 수가 없고 영치금을 넣어주면 그 안에서 구입을 할 수가 있습니다. 디모데와 요한은 보내주는 영치금으로 그 안에서 구입해서 나누어 주는 오지 선교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