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모리타니 마마(권경숙 선교사님을 통해서 배우는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
권경숙선교사님이 사역하는 모리타니는 모슬림 지역의 아프리카이고 이곳은 기온이 다른곳보다 더 더운 것을 보게 됩니다. 기온이 50 도가 넘는데도 이런 헌신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입니다.
~~주일 아침은 여전히 바쁘다. 새벽 세시 반에 일어나서 기도를 한 다음 교도소에 갖고 갈 우유 죽부터 끓인다. 예배를 마친 교인들까지 먹이려면 300인분 이상을 끓여야 한다. 마그다드 사람들이 바닷가 마을로 이주하기 전까지는 400인분, 500인분을 끓였던 것에 비하면 일은 줄어든 편이다. “이 우유 죽을 먹는 사람에게는 계속 주님 음성을 들려주시고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요.”
설탕과 가루우유, 쌀을 넣어 휘휘 저으면서 나는 계속 기도를 드린다. 가마솥 두 개에 넘치게 끓인 우유 죽은 멀리서도 달콤한 냄새가 느껴져 다들 군침을 삼킨다. 예배가 끝나면 나는 우유 죽을 들고 죄수들을 만나러 간다. 죄수 중에는 드물게 부자도 있다. 부자들은 주로 횡령죄를 저지른 인물이거나 정치범이다. 시다트는 백모로족 죄수로 한때 “승려”라는 이름의 철강 회사의 회계를 맡은 사람이었다. 이 회사는 모리티나에서도 손꼽히는 아주 큰 기업으로 이곳에서 그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회삿돈을 여러 방법으로 횡령했다. 한마디로 장부를 조작해서 죄를 지 지르는 화이트칼러 범죄의 전형이었다 시다트는 교도소 음식대신 집에서 만들어서 차입해주는 음식을 먹는 특권을 누렸다. 법죄자들도 시다트는 남다르게 취급했다. 자신들처럼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교도소에서도 기름지고 좋은 음식을 먹는 그가 뜻밖에도 우유 죽을 너무나 먹고 싶어 했다. 다른 죄수들과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을 자존심 상해했지만 나에게 우유 죽을 한 그릇 달라고 청했다. 그런데 그가 죽을 입에 넣으려고 하자 그의 귓가에 “시다트”하는 큰 소리가 들렸다. 어찌된 노릇인지 그 다음 주에도 우유죽만 먹으려고 하면 같은 음성이 들렸다. 그로서는 놀라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돈도 배경도 있던 시다트는 곧 감옥에서 풀려났다. 풀려나자마자 그는 나를 수소문해서 찾아왔다. 말끔하게 차려 입은 그를 나는 처음에는 몰라봤다.
“미셔너리, 저를 기억하시겠어요? 감옥에 있을 때 우유 죽을 먹으려고 하면 누가 자꾸 제 이름을 불렀어요” “아무래도 하나님이 부르시는 것 같습니다. 프랑스어를 할줄 아세요?” “네 프랑스어로 된 성경책이 있으면 주십시오.”
그는 다음 날부터 새벽 두시 반 되면 성경책을 들고 나를 찾아왔다. 그는 나와 함께 성경을 읽고 새벽 예배를 드리고는 집으로 갔다. 석 달 동안 단 한번도 빠지지 않았다. 그는 컴컴한 길을 차를 몰고 와서는 두 시반 되면 어김없이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그가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자 열 세명이나 되는 그의 가족들도 어느 날부터 모두 예배를 드리려 교회에 나왔다. 한동안 시다트의 가족은 우리 교회에서 유명했다. 그는 모슬렘이었고 다른 교인과 달리 돈과 권력을 가진 고위층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다트와 가족들은 모두 세례까지 받았다. 세례를 받자마자 그는 가족을 이끌고 이슬람 국가가 아닌 세네갈로 이주했다. 그는 지금도 모리타니를 왔다 갔다 하며 사업을 하는데 모리타니에 올 때마다 안부를 전해 온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하나님이 정말로 급하셨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세네갈로 이주해 가기까지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에 그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회 되기를 원하셨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는 고위층 모슬렘이 그토록 단시간에, 그것도 가족까지 세례 받는 일이 얼어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