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케이티 에게서 배우는 렛슨”
우간다에 고아들을 입양하고 그들을 돕는 20 살의 케이티 에게서 참 진리를 배우기에 같이 공유합니다.
~~하나님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건만, 수 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 현실 속에서도 우리의 식탁은 여전이 산해진미로 넘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간다에서의 삶과 엄마 역할이 좋아지고 미국 집으로 돌아가기가 싫어졌다. 미국에 있는 친구들은 파티와 축구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었지만, 나는 오로지 내가 거둬들인 여섯 천사를 먹이고 입히고 학교에 보내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저금해 둔 돈과 가족과 친구들이 보내준 기부금으로 가까스로 필수품은 떨어뜨리지 않았지만 그야말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차도 없어서 멀리 나갈 때면 피키를 타야 했다. 가족이 4 명이었을 때는 우리가 좋아하는 운전자 프래드를 불러서 오토바이 하나에 끼어 턌다. 하지만 가족이 불어나면서 피키 하나로는 부족했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이 나들이를 할 때마다 작은 오토바이 퍼레이드가 벌어졌다.
미국에는 차가 없는 집이 없고 아이들이 많은 집에는 벤이 있다. 그런 곳에서 살다가 왔으면서도 우간다에서 나는 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욕심을 내본 적이 없다. 벤을 살 돈도 없거니와 웬만한 사람들이 어디든 걸어 다니는 이곳에서 오토바이를 탈 정도면 꽤 넉넉한 형편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훨씬 더 풍족해졌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있는 물건은 똑같다. 처음부터 우리는 부자였던 셈이다! 굶어 죽는 사람이 허다한 판에 먹고 살 걱정이 없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었다. 웃음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 그리고 가족이 있었다. 모자란 자금은 넘치는 사랑과 기쁨으로 채웠다. 보통은 뽀쇼와 콩을 먹었지만 여윳돈이 생긴 날이면 계란 말이와 카사바로 포식을 했다. 미국 돈으로 60 센트밖에 하지 않는 식사지만 우리에게는 진수 성찬이었다. 상에 뭘 차리든, 함께 둘러앉아 웃고 떠들며 먹을 때면 주체 못할 행복감이 밀려왔다.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아빠와 남동생을 못 본지도 어언 1 년이 가까웠다. 아빠에게 달려가 안기고 맘껏 어리광을 피우고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우간다의 딸들과 떨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피를 나눈 가족을 보고 싶으면서도 하나님이 주신 새 가족과 우간다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예뿐 우리 딸들과 손 내밀면 닿을 거리에 있고 싶었다. 엄마가 된 뒤로 우간다를 떠난 적이 없었다.
미국에 도착해서 내슈빌공항이 저 아래 보였을 때 예전과 달리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지 못했다. 전혀 집에 가는 기분이 아니었다. 그냥 내가 자란 곳으로 가족과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주변 사람들이 음식이나 수돗물 같은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화가 났다. 적어도 단짝 친구들만큼은 내가 본 것을 이해해 주길 바랐지만 현실은 그렇질 못했다. 그렇다고 내 경험을 말로 다 설명할 수도 없으니 정말 답답했다.
놀랍게도 예전에는 그렇게 편안했던 곳이 이제는 편안하지만 이곳은 더 이상 내게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 미치도록 좋은 줄로만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엄마 아빠와 남동생의 품에 쓰러지듯 안기는 건 좋았지만 왠지 모를 이질감이 내내 나를 불편하게 했다.
주님께서는 우간다에서 내게 보여주신 ‘진리’를 미국에 있는 내 지인들에게도 보여 주길 원하셨다. 내 지인들의 아이들은 어제를 지나 오늘도 살아 있지만 어제 하루에만 만 6 천명 이상의 아이들이 기아와 그에 관련된 질병으로 귀한 목숨을 잃었다. 얼마든지 예방하고 치료 할 수 있는 질병인 말라리아로 인해 오늘도 3 천명의 아이들 주로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죽어 갈 것이다. 이 안타까운 현실을 미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라고 명령하셨다. 그냥 불쌍히 여기기만 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와야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지만 수많은 사람이 굻어 죽는 현실 속에서 우리의 식탁은 산해진미로 넘쳐난다.
물질적인 빈곤 속에서는 영적 풍요를 누렸지만 물질적인 풍요의 땅으로 돌아오니 만연한 영적 빈곤에 몸서리가 쳐졌다. 우리는 내 딸들과 우리 프로그램에서 후원하는 아이들, 나아가 우간다의 모든 아이에게 “그리스도의 진리”를 가르치려고 애쓰고 있다. 무작정 다가가 “예수님이 너를 사랑하셔”라고 말해서는 곤란하다. 태어나서 한 번도 사랑을 받아 본적이 없는 아이가 예수님의 사랑을 이해할 리가 없다. 그러나 먼저 먹이고 입히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면서 수시로 사랑한다고 말해 주는 것이 순서다. 먼저 내 사랑을 보고 이해한 뒤에야 나보다 사랑이 훨씬 더 많으신 구주에 관한 이야기에 마음이 열릴 것이다. 이 아이들은 사랑 받고 있다. 이 아이들은 소중하다. 이 아이들은 고아처럼 취급되지 않을 것이다. 이 아이들에게도 미래와 소망이 있다. 이것이 아 아이들에 관한 진심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진리인가!
세상에는 고아가 1 억 4400만 명이고 기아나 충분히 예방 및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죽어가는 아이가 1100 만 명이고 아동 학대나 성매매 같은 끔찍한 조건에서 사는 아이가 850 만명이고 에이즈게 걸린 아이가 230 만 명이다. 모두 합치면 고통 중에 신음하는 아이가 1 억 6480만 명이다. 어마어마한 숫자가 아닌가? 하지만 이 지구의 그리스도인 숫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고.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사람이 자그마치 21 억이다. 이 그리스도인들 중 8 퍼센트만 한 아이씩 책임진다면 위의 통계는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