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와 요한의 편지”
사랑하는 어머니!,
오늘은 말씀묵상을 통해서 섬기는 삶이 왜 중요한지 또 왜 우리는 섬기는 삶을 택해야만 하고 그 길을 갈수 밖에 없는지를, 다시 한번 더 묵상을 통해 배우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섬기기 보다는 섬김을 받는 것을 좋아하고 예수님을 닮기 보다는 예수님으로부터 영광을 누리기를 원하는 마음이 더 큰 것을 보게 됩니다. 또 높은 자리에 올라야만 꼭 섬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 더 높은 권세의 자리를 탐내기도 하고 섬기는 삶 자체가 그리스도 인의 삶 그 자체임에도 그 본질은 까맣게 잊은 채 겉치레만 중요시하며 남들이 대접하는 모습 속에 모두가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허나 예수님의 삶 자체가 섬김의 삶이셨는데, 이 세상에 오셔서 치유로 섬기시고 십자가로 섬기시고 지금도 우리를 계속해서 섬기는 삶을 실천하고 계시는데, 어느새 예수님과 같이 새끼나귀를 타는 겸손을 잊은 채 우리 모두는 이를 까맣게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다시 한번 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디서나 섬기는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였음을 저는 항상 모든 말씀을 골고로 찾아볼 수 있었고 또 배우게 되었습니다.
섬기며 사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임을 배우며, 섬기는 사람에게는 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축복하심을 모두가 믿고 깨닫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엄마,
오랜만에 김밥을 만들어서 동료들과 나누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형제들과의 대화는 물론 음식물을 나누어 먹는 것이 많이 어려워진 요즘이지만 가능한 시간에 형제들과의 나눔을 갖곤 합니다. 예전엔, 어떤 형제든지 옆에서 거들어 주려는 형제들이 있었는데 요즘은 음식물을 만들 때 저 혼자 재료를 준비하여 방이나 노역장의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등을 만들어 보니까 수고보다는 만만치 않은 시간을 투자(?) 해야 하기에 조금은 부담스러움이 들기는 하지만 형제들의 맛있게 먹어주는 환한 표정을 볼 때면 작은 부담스러움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언제쯤 또 다시 음식 나눔을 준비할까를 고민(?) 하게 됩니다. 행복한 고민(?) 이지요 ^-^
김밥 서너 줄은 기본으로 먹을 것 같은 덩치가 큰 형제가 있기에 김밥 한줄을 더 주었더니 사양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때의 식욕을 비교하면 의아한 일인지라 왜 그러느냐고, 어디 아프냐고 물었더니 몸무게를 줄여 보려고 먹는 량을 줄이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바깥 세상에서도 다이어트 하는 이들이 많다지만 이곳에서도 몸무게에 신경 쓰는 사람들이 간혹 보이곤 합니다. 운동장 입구에는 체중계가 준비되어 있는데, 어떤 형제들은 “오늘은 얼마나 줄었을까?” 하면서 불안스런 눈으로 저울의 눈금을 쳐다보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만일, 사람됨을 달아보는 저울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다니엘 서에 보면 하늘 아버지께서 벨사살 왕의 사람됨을 달아보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를 저울에 달아 부족함이 드러나자 왕의 생명을 마치게 하심을 보았습니다. 벨사살 왕의 아버지나 아들인 벨사살왕이나 결국은 교만함으로 폐망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면서 모든 죄는 교만함에서 비롯되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고, 저의 교만함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우며, 하늘 아버지의 저울에 달면 저는 얼마나 부족함이 드러날까를 염려하게 됩니다. 죄의 무게를 떨어뜨려야 함에도 오직 하늘 아버지의 거룩함을 이룰 수 있는 무게만을 지녀야 함을 앎에도 하늘 아버지의 저울 앞에서 저울 위에 오를 바를 염려하며 뒷걸음질을 하고 있으니….
또한 교만의 무게를 떨어뜨리고서 사랑의 무게,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무게 감으로 제 영혼을 살찌워 하늘 아버지의 저울에 담아 보았을때 합격하는 아들이 되도록 힘껏 응원하여 주십시오. 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