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만큼 사랑한다~~내가 아픈만큼 남을 더 사랑하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아픈 만큼 사랑했으며, 아플수록 더 사랑하게 하소서"라는 박누가선교사님의 신념 때문이었답니다. 이 고백이 너무나 가슴 깊이 와 닿았습니다. 이런 고백을 배우기를 소원하는 마음으로 참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아픔으로 오히려 더 남을 이해하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간다는 말씀을 배우기를 소원하면서 정말 의사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니고 필리핀 현지인들과 같은 모습의 “낮은대로 임하소서” 주님을 닮은 그분의 사연을 같이 공유하며 은혜 받기를 소원합니다.
고통이 더할수록 더욱 겸손해졌다는 내용도 너무나 깊게 와서 닿았습니다. 가장 배우기 힘든 과목이 “겸손”인데 고통이 겸손하게 만들어지는 것을 진심으로 고백합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고도 의료 봉사를 멈추지 않았던 고 박누가 선교사의 한국 이름은 박삼철이랍니다. 병든 몸을 이끌고 필리핀으로 돌아간 그는 적은 돈이 생기면 빵을 사 빈민가에게 나누어 주고, 큰 돈이 생기면 진료 버스에 약품을 가득 채워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환자를 찾아 오지로 떠났답니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99845
동남아 오지의 슈바이처로 불렸던 박누가(본명 박병출) 선교사가 2018 년
8 월 26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58세. 유족으로는
김정옥 사모와 2남이 있다. 길지는 않았지만 불꽃같은 삶이었다. 외과 전문의로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모르는 걸 가장 큰 병으로 여겼다.
그는 의사였지만 치료는 하나님의 몫이라고 확신했던 신앙인이었다. 2004년 3월 카자흐스탄에서 위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울부짖으며 이렇게 기도했다. “의학은 사람이 만든 학문이고 치료는 하나님이 만든 작품 아닙니꺼. 맞지예. 살려 주이소. 이대로 데려가시면 안 됩니데이. 마 지금은 안 됩니더. 아직도 할 일이 많습니데이.”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에 응답하셨다. 이후 무려 14년
동안 하나님의 일을 할 기회를 주셨고 마침내 데려가셨다.
박 선교사가 필리핀에서 의료선교를 시작한 건 1989년이었다. 그는 루손섬 바기오 북부의 산악지대를 사역지로 택했다. 바기오에서 12시간 동안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닿는 오지였다. 누구도 오지 않는
곳이라는 사실이 박 선교사를 붙잡았다. 이후 필리핀을 거점으로 동남아시아 오지만 찾아다녔다. 죽어가는 수많은 이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었다. 대형버스를 이동병원으로
개조해 의료 사각지대에서 주술에 기대 사는 이들에게 인술을 베풀었다.
의사인데도 그는 병을 달고 살았다. 워낙 오지를 다니다 보니 장티푸스 콜레라 이질 뎅기열
간염 등이 끈질기게 그를 괴롭혔다. 급기야 1992년 췌장암에
걸렸지만 다행히 초기여서 수술을 받고 완치됐다. 2004년에는 위암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낙심하지는 않았다. ‘치료는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소신대로 수술을
받았고 다시 선교지로 돌아갔다. 하지만 몸을 혹사하니 제대로 된 회복도 기대할 수 없었다. 2009년엔 간경화에 당뇨까지 더해졌다. 2016년 5월 위암은 결국 재발했다. 고통이 더해질수록 그는 더욱 겸손해졌다. “아파 보니 환자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며 오히려 고마워했다.
박 선교사를 만나지 못했다면 닭 피를 치료제 삼아 죽어갔을 생명이 수천 명이었다. 그는
아플수록 더 큰 사랑을 나눴던 성자였다. 그와 이별한 슬픔 때문인지 장례가 진행된 대구엔 3일 동안 굵은 빗줄기가 쉬지 않고 내렸다.